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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문화팀 김영화입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밤잠 설쳤던 주말이었습니다. 지인들의 안부를 급히 물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뜨는 헤드라인과 여과 없이 송출되는 이미지들을 의심했습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일상이 사실은 운이라는 허술한 재료로 지어올려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2022년 10월29일, 오랜만의 축제를 즐기러 나왔던 시민 154명이 목숨을 잃고 100명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저의 편지가 독자님께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갑니다.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분들과 생존자분들을 깊은 마음으로 위로합니다. 

비극에 말을 얹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앞에 책임 소재를 두고 여러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과 유언비어를 볼 때면 ‘지금은 애도만 할 때’라는 말을 붙잡고 싶어집니다. 이 비극은 우연한 사고였을까요, 예견된 참사였을까요. 핼러윈 데이에 1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 이태원에 왜 경찰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았는지, 지자체에 사전 통제를 요구했던 인근 상인들의 요청은 왜 반영되지 않았는지, 무엇보다 왜 축제가 사회적 참사로 끝나야 했는지, 서로의 안녕을 빌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질문들이 많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과 행정 당국은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듯 합니다. 10월27일 용산구청이 열었다는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에는 정작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한 안전관리 대책은 없었습니다.

원래는 독자님께 보내는 편지 내용을 최근 다녀온 영국 취재 후일담으로 쓰려 했습니다. ‘세계의 코로나 대응, 현장을 가다’ 기획의 일환이었는데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알게 된(그러나 뿔뿔이 흩어져있던) 교훈과 성찰을 한 데 모으자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정의를 위한 코로나19 유가족 단체(Covid-19 bereaved families for Justice UK)’를 만났습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템즈강 담벼락을 18만 개 하트 그림으로 채운 단체입니다.  

처음 이 단체에 섭외 메일을 보낼 때는, 그저 사람들을 위로하는 애도의 공간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막상 가보니 달랐습니다. 애도는 단순히 슬퍼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이 담벼락은 영국 의회인 웨스터민스터 궁을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코로나19로 남편을 잃은 린 존스 씨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슬픔을 넘어선 분노다. 그때 빠르게 대처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이 벽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유가족들은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면서요. 이 애도의 공간이 계기가 되어, 정부의 대응에 어떤 공백이 있었는지 밝히기 위한 사법부 차원의 공공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특정 누군가를 찾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공동체 차원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였습니다.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을 ‘어쩔 수 없었던 자연재해’로 보거나, ‘개인의 불운과 기저질환’ 때문으로 치부되던 시선도 점차 바뀌었습니다. 애도는 지난한 싸움이었습니다.  

사회적 참사 이후 무수한 언쟁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정쟁이고, 어디까지가 정치적 책임을 묻는 행위인지 불분명합니다. 한편에선 피해자를 탓하고, 다른 한 편에선 가해자 찾기와 낙인찍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담한 비극 앞에 무엇이 맞고 틀린지, 당장 어떤 말로 애도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저만은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지인들과 급히 주고받은 안부 연락마다 깊은 무기력함이 배여있었습니다. 다만 슬퍼하는 일만이 애도의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사고가 벌어졌는지 분노하고, 누가 어떤 의사결정을 거쳤는지(혹은 거치지 않았는지) 묻고, 무엇보다 섣불리 지치지 않는 것에서 애도가 시작되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11월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도요. 한국 사회는 8년 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서 고통이 깊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기록’은 언론으로서 하는 애도라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도하겠습니다. 

밤새 올라오는 뉴스를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독자님의 마음을 함께 위로하고 싶습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해가겠습니다. 

일상을 다시 잘 길어올릴 수 있기를. 모두 무탈하시기를. 
             2022년 10월
김영화 드림



🗞️ 김영화 기자의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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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스강 따라 500m 빨간 하트로 채워진 벽 영국 런던 한복판에는 코로나19 희생자 추모 벽이 있습니다. 유가족 단체 회원들은 금요일마다 이 담벼락 앞에 모입니다. 떠난 이들의 이름을 하트 안에 적으며 정치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입니다. 코로나19 유가족이 말하는 애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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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유튜브 시사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정치왜그래?〉였으면 좋겠다.“ 〈미디어오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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