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같은 남의 집 이야기
스물다섯 번째

Vol 25. 너와 나의 흔적이 깃든 집

[포장 이사 견적 알아보기]

[이삿짐센터 비용]

[용달 부르는 법]


그러니까, 이게 지난 며칠간의 내 검색 기록이다.


2년은 무참히도 돌아온다. 아주 길고 아주 짧은 기간. 2년이라는 기간은 그런 세월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그 세월 동안 매우 많은 걸 바꾸고 누군가는 그동안 많은 것을 바꾸지 않는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지만, 집을 바꾸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집은 바뀌는 것에 속하고 물가도 바뀌는 것에 속한다. 아마 집주인의 마음도 바뀌는 것에 속할 것이다. 치솟는 물가만큼 집주인이 원하는 바도 치솟았다. 요즘 임대료 5% 내로 올리면 착한 임대인이라고, 양도세 혜택도 주던데요? 내 작은 설득은 임대인의 귀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자기는 착한 임대인 하기 싫단다. 역시 있는 사람들은 대단해.


하긴 내가 들어올 때 이 집은 굉장히 저평가된 편에 속했다. 임대인이 그 진가를 알아버렸으니 제대로 받고 싶은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저평가된 가격에 익숙해진 나는 어떡하냐는 거지. 당장 줄일 수 있는 건 이사 비용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포장 이사는 안 되겠다. 그래도 너는 예쁘게 데려갈게.”


얘는 내 말 듣는 거 맞나. 식물에 물 주면서 혼잣말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오늘따라 더 혼자같이 느껴진다. 버려야 할 것도 버리지 않아야 할 것도 산더미다. 이사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땐 어떻게 왔더라?


어…,


김진수. 김진수의 도움으로 왔었다. 2년간 바뀐 것 중에는 그것도 있었다. 동거인의 존재.

그는 약 1년간 월세는커녕 전기세 한번 내질 않았다. 떡진 머리에 추리닝. 겨울에는 하나뿐인 패딩을 걸치고 집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던 김진수. 나의 엑스.


이사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친구의 다마스를 빌려 온 김진수는 거기에 몇 안 되는 자기 짐을 실어 내 월세방을 우리 월세방으로 만들었다. 아. 나만 월세를 냈으니 여전히 내 월세방이라 해야 하긴 할지도. 어쨌든 그는 넉살 좋은 웃음으로 나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취업 준비 때문에 힘들다는 자기의 처지를 볼모로 삼았다.


그는 빈곤한 취준생이었지만, 나는 그를 좋아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천 원 한 장 받지 않고 그를 재워주고 먹여준 것은.


김진수와의 동거와 이별을 떠올리며 짐을 싸는 동안 나는 이런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건 하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존 레논이 총에 맞았잖아. 근데 총을 쏜 범인이 그 직전까지 책을 읽고 있었대. 내가 그 말을 하자 박소현은 이렇게 물었다. “무슨 책?” 나는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궁금한 건 그것뿐이란 듯이 말간 박소현의 얼굴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매일 보던 얼굴인데 낯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내가 말했다. “오, 나 그 책 좋아하는데.” 박소현이 말했다. 나도 좋아해. 그리고 내가 말했다. 책 말고 박소현. 이건 못 말했다.]


몰랐네. 그 좋아해가 이 좋아해인지. 아무래도 김진수한테 이 책을 버려야겠다. 그 방법이 아니면 난 이 책을 영원히 싫어하게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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