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마려울 때는 언제인가요?

인간 강혁진의 세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인간 강혁진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금 더 필요하지만 그래도 코로나 확산세가 꺾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 주말입니다. 

이번 주에 만나 식사를 함께한 후배 A에게서 응원해주고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년 간 고민하던 퇴사를 조만간 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A가 퇴사 후 요식업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A는 저에게, 월간서른이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몇년 간 퇴사를 고민하던 중 월간서른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중에서 퇴사 시점에 대해 제가 했던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합니다. 

‘마려울 때가 있을거에요'

이 이야기는 제가 퇴사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절, 책 ‘한 글자'를 쓰신 정철 카피라이터님과 식사를 하며 들었던 이야기였습니다. 퇴사를 하고 싶다던 저에게 카피라이터 답게 딱 한 문장으로 저에게 전해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나니 내공이 깊은 사람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했더랬죠.

‘이따 오후 4시쯤에 화장실에 가야지'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자신의 의지로 화장실을 갈 타이밍을 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마려울 때'가 오면 화장실을 가야 합니다. 마려울 때가 바로 화장실을 가야 할 때인거죠. 

퇴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퇴사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받아 이직을 한다면 자신의 의지로 퇴사 시기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직을 위한 퇴사 시기는 ‘머리’로 정할 수 있는거죠. 하지만 A나 저의 경우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직을 위한 퇴사가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퇴사의 시기는 머리가 아닌 몸이 정해주었습니다.

A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직이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A와 저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굉장히 차분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홧김에 퇴사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 이제 퇴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가 아닌 온 몸에서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회사를 다니던 저는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과 내용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편이었습니다. 내가 담당하는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부당하게 일을 시키는 직장 상사를 마주하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동료를 만나면 화가 났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조직의 모습을 볼 때도 화가 났죠.

그런데 삶의 방식을 바꿀 시기가 되니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나 동요가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또렷 해지고 명확해 졌습니다. 그 누구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거죠. 아마도 그 이유는 나에게 화를 낼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그 에너지를 내가 성장하는데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라는 특정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고군분투하던 내가, 이제는 더 넓은 세상에서 오롯이 ‘나'로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 이외의 것에 에너지를 쓸 필요도 이유도 없어지는 거죠. ‘회사’로 향해 있던 제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려울 때가 되니 시선이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인지,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니 마려울 때가 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이 두 순간은 아주 짧은 시차를 두고 거의 동시에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나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 오롯이 가둘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려움을 느낀다는 건 꽤나 행복하고 건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명상에서도 결국 ‘스스로를 목도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래서 내가 언제 마음의 마려움이 오는지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A에게 섣불리 ‘잘될거다’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요식업이라는 것이 워낙 힘든 영역이기도 하거니와 제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확실히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축하한다. 응원한다’라는 말입니다. 축하와 응원의 대상이 꼭 A의 퇴사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A가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마려움을 알아챈 것에 대한 축하와 응원입니다. 

퇴사가 정답은 아니라고 굳게 믿습니다. 퇴사가 정답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열렬하게 주장하는 바로 그 ‘마려운 때'가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임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합니다. 

마려운 때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다들 어릴 적에 한번쯤 경험해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오늘도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인간 강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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