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안전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 권리입니다. 우리는 장애 유무와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제품과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장애 당사자와 장애아동 부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의 실내 낙상, 시각장애인의 화재 시 대피 등 이들의 에피소드는 비장애인이 생각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전에 취약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도시에서 살 수 있는 디자인의 교두보가 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 노화로 시력이 저하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 될 수 있고,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보행로가 영유아 동반자와 아이들을 위한 보행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도시와 관련된 인사이트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본 내용은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활 안전부터 재난까지, 안전을 위한 디자인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글/편집 강성혜, 김병수
일러스트 임수영

포용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안전>
SAFETY IN THE CITY
01
보행로는 모든 보행자들에게 안전할까?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40%를 차지했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 통행을 우선시하는 보행자우선도로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차량뿐 아니라 오토바이, 보도로 통행하는 자전거, 전동 보드 역시 교통약자의 보행에 위협적인 요소이다. 후방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확인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이나, 순간적으로 보행 경로 변경이 어려운 시각장애인을 고려하여 보행권이 완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활동지원사가 있지만 그분들만 의지해서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보행을 가장 많이 도와주시는데, 도움을 받으면 좋지만 자립심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분이 매일매일 저와 같이 있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저 혼자 다니지 못하는 게 답답하죠. 그리고 혼자 외출하는 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런 분들이 있건 없건 나는 혼자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누가 있는 것과 없는 게 너무 차이가 크더라고요.”

김은비 비영리재단 간사, 시각장애인
02
보행환경에서 시각적,
촉각적 요소는 중요한 사인
오감 중 시각은 외부 환경을 인지하는 데 가장 많은 정보를 획득하는 감각 기관이다. 특히 시각 정보 중 형태와 색채는 사물의 속성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동그라미 세 개와 빨강, 초록, 노랑 색상을 통해 현재 보고 있는 사물이 신호등이고 운전 중 지켜야 할 신호임을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시각적 요소와 촉각적 요소 역할을 동시에 하는 보행로의 노란색 유도블록은 전맹 시각장애인이 흰 지팡이나 발바닥으로 촉감을 느끼며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또한 시력이 저하된 어르신이나 색깔 구분이 가능한 저시력 시각장애인도 색상으로 보행로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행로 앞에 항상 노란색 점자블록이 있잖아요. 휠체어가 건널 수 있게 경사로가 있고요. 저는 눈이 안 좋아서 턱이 잘 안 보이는데 횡단보도 앞이 노란색으로 되어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믿고 건너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경사로가 없었어요. 턱이 20 센티미터 정도였던 거죠. 전동 휠체어를 탄 채로 앞으로 넘어져버렸습니다.”

조수정 비영리재단 간사, 뇌병변장애인
“요즘 보도와 자전거 길이 구분돼 있나요? 아니면 자전거들은 보통 보도 가장자리로 다니나요? 저는 사람 다니는 길과 자전거 다니는 길은 아예 구분이 안 되더라고요. 저희 집 지하철역 가는 길에 노란 보도블록 사이로 왼쪽은 사람 다니는 길, 오른쪽은 자전거 다니는 길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모르는 시각장애인도 많잖아요. 가끔 ‘자전거 다니는 길인데 왜 사람이 있어’ 하고 자전거 벨을 울리면 마음이 불편하죠.”

김은비 비영리재단 간사, 시각장애인
03
아동친화적인 보행로 설계가
도시를 살린다
《유년기를 다시 생각하다Rethinking Childhood》의 저자이자 도심형 놀이공간 연구자인 팀 길Tim Gill은 “아동 친화적인 설계가 도시를 살린다”라고 말하였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도시는 아이들의 이동이 자유로운 곳이다. 또한 보행 동선에 차량 진입 염려가 없고, 개방감이 충분히 확보된 안전한 곳이다. 만약 일곱 살 아이가 혼자 “나 놀이터 갔다 올게”라고 말해도 부모가 안심할 수 있다면 아이도, 장애인도, 어르신도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동하기에 안전한 도시가 된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신호등이나 선풍기처럼 특정하게 좋아하는 자극이 있다면 그것만 쫓아가기도 해요. 제가 교사 생활 중에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산책하다 아이를 잠깐 놓쳤는데 아이가 건너편 화장실 환풍기를 보려고 도로로 그냥 뛰어든 거예요. 다행히도 드라마처럼 차가 끽 하고 섰어요. 특수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밤새 잠이 안 오더라고요. 공원 옆 도로가 잘 정비되면 좋겠어요.”

정혜림 특수교사, 발달장애 아동 부모
04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국내 언어장애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2만 명이나, 뇌병변장애인 또는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언어 장애가 중복으로 있는 경우를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초기에 음성합성TTS(Text To Speech) 기능은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향상을 위해 글을 음성 단위로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나 언어장애가 있거나 발음이 불명확한 경우 목소리의 대체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대체할 문장을 등록해 놓는다면 위급 상황 시에 직접 텍스트를 입력하지 않더라도 터치 한 번으로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위험할 때 소리를 지를 수 있는데, 언어장애가 있는 분이나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은 말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죠. 이건 제 생각이지만 만약에 정말 위험할 때는 버튼을 누르면 사람 말소리를 대신 내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어요. 긴급할 때 그 버튼을 누르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거잖아요. 뇌성마비 가진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분들은 목소리는 낼 수 있는데 발음을 알아듣기는 어렵잖아요.”

한종문 모니터링 요원, 지체 장애인
05
심리적 안정을 높이는 정보 디자인
안전이란 심적으로 평온한 상태라는 주관적 요건과, 위험요소가 없는 온전한 환경이라는 객관적 요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 이 두 요건은 서로 연결돼 있다. 어떤 공간이 위험요소가 없는 환경임을 내가 시지각적으로 인지하는 동시에, 사고 상황에서 대피해야 할 때 내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확신에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크다. 에어비엔비Airbnb에서는 2020년 3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봉사와 의무감 사이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의료진들을 위해 트라우마 이해 기반 케어Trauma-Informed Care를 제공했는데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을 존중합니다’ 등의 문구를 정보 디자인에 활용하였다. 말을 통한 세심한 배려가 심리적 안정은 물론 인간 존엄성의 토대가 된다.
“몇 년 전에 제가 호주에서 비행기를 탔어요. 시니어 스튜어디스가 제게 오더니 만약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마지막에 본인이 직접 데리러 올 테니 안심하고 앉아있으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비행기를 수십 번은 타봤지만 그런 얘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어요. 실질적인 안전도 중요하지만 앞의 예시처럼 안전체감도가 굉장히 중요해요. 안전의 범주가 어디까지 인지 따져보면 끝이 없죠. 안전하다는 느낌을 어떻게 들게 할 것인가, 그런 고민이 필요하죠.”

정영석 컨설턴트, 지체 장애인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정식으로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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