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 다들 좋으나 싫으나 수개월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주제이니 궁금한 것이나 의견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ㄴ)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표 결과가 곧 한국민이 만들어내는 '공통의 현실'이 아닐까? 하고요. 여론에 영향을 받든, 자신의 추구하는 방향이 그러해서이든 혹은 국민의 힘, 윤석열이 하는 말, 혹은 여론에 사람들이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민의 평균은 실체를 파악하고 있을까? 그것이 투표 결과가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임시적이나마 한국민의 커먼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 투표 결과가 "한국민의 커먼"의 상태를 반영할 것이라는 의견인데 다른 의견은 없을까요?
ㄱ) 광장에 투표하자, 양당제를 넘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경향신문] 당신의 광장에 투표하시라↗
한편 오늘 안철수-윤석열의 단일화 발표에 대한 심상정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용혜인 대변인(기본소득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심상정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짓말》
오늘 아침, 안철수 윤석열 후보가 돌고돌아 결국 단일화를 발표한 이후 정국이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단일화는 없다면서 뒤로는 권력 나눠먹기 단일화를 발표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그럼 그렇지"라는 국민의 냉소만 강화하는 뻔하디 뻔한 정치를 보여줬습니다.
이를 두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남은건 심상정과 국민뿐이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심상정 후보님, 후보님의 말씀은 사실이 아닙니다.
안철수 후보는 사라졌지만,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를 비롯해 여전히 여러 후보들이 대안정치를 하겠다며 대선레이스를 뛰고있습니다. 심상정 후보님께서 20년동안 지켜온 진보정치의 꿈을 꾸는 후보만 해도 심상정, 오준호, 이백윤, 김재연 후보가 있습니다.
원내 의석수가 적은 소수정당의 대표 정치인으로서 심상정 후보가 지금까지 겪었을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정의당보다 작은 정당의 존재를 지우고, 이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은 진보정당의 대표정치인이 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티비토론하는 것은 두고볼 수 없지만, 심상정 뒤의 후보들이 티비토론에 끼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 "다당제 정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초청외 후보 토론회에 불참하며 "차라리 충청에 가는게 유리하다"고 했던 김동연 전 후보와 같은 모습이 '다당제로의 변화'를 꿈꾸는 대안정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기후대선운동본부에서 제안했던 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대선후보 토론회가 최종 무산된 것은 정의당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심상정의 소득보장정책과 기본소득당 오준호의 기본소득을 두고 토론하자는 오준호 후보의 제안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민주노총의 토론 초청이 있었지만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정당들과의 토론으로부터는 도망다니는 대신, 선거 시작부터 진보정당, 대안정당이 아닌 안철수후보를 찾아 제3지대 정치를 이야기한 결과가 바로 오늘입니다.
심상정 후보님.
"심상정만 남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심상정 후보님의 뒤에는 오준호도 있고, 김재연도 있습니다.
'정의당까지만'은 다당제가 아닙니다.
'정의당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정의당 밑으로 모이자' 역시 다당제 정치가 아닙니다.
거대양당의 사표론을 비판하면서, 오로지 나만이 대안이고 제3지대라고 다른 소수정당들의 존재를 지우는 내로남불역시 다당제로의 변화를 꿈꾸는 깃발이 될 수 없습니다.
기본소득당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 처럼, 진영과 이해득실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대안을 만들고 미래를 열어가는 정치를 해나가겠습니다.
기본소득 대한민국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이어가겠습니다.
2022.03.03
기본소득당 오준호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국회의원 용 혜 인
ㄴ) 그러게요. 애초에 TV 토론에 유력 후보만 토론할 일은 아니었다 싶습니다. 그것은 양당정치의 다이내믹을 도와주는 셈이네요
ㄱ) 네. 말씀하신 대로 티비토론만 보아도 그렇지만 수많은 제약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극도로 제한적인 의사표시인 만큼 투표는 커먼의 아주 일부, 왜곡된 일부만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오히려 커먼의 다양성을 일그러트리고 청색과 붉은색으로 억지로 녹여내는 폭력적인 장치 같습니다.
ㅎ) 당신의 광장에 투표한다는 것이 어떤 투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ㄴ) 대중매체가 커먼을 반영해내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데…. 자신의 광장에 투표하자는…. 우리의 경우 열린세미나가 우리의 광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의 광장을 반영하자 아닐까요? 우리의 광장을 반영해 그러한 신념을 기반으로 투표하자?
ㅎ) 심상정 발언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ㄱ) 거대 양당을 찍지 말자는 것일까요?
ㅎ) (참여, 기권 등의) 투표 행동은 현행의 대의정치의 선거제도, 선거장치의 일부이되 개인이 국민의 자격으로 참여/기권하는 결정적인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선거제도는 대선의 경우 후보-선대위-당-당원; 제도언론, 비제도언론 등의 언론기관과 기자들; 여론조사기관들; 선거운동들; 선거관리위원회; 선거평론가들; 이제는 법원과 검찰, 경찰; 각 후보 지지자들과 국민 등으로 구성되는 복잡한 기계장치의 동작 한가운데에 마치 부품처럼 투표행동이 부착되어 돌아가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ㅂ) '소신투표'의 다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문맥상 '미래'를 의미하는 것 같고요, '당신이 바라는 미래에 투표하시라' 이렇게 읽힙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가 "광장"으로 표현되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ㅈ) 우리나라가 규모 면에서 집단적으로 투표가 이뤄지는 것 같은데 애초에 기반이 다른 곳에서 출발하려 한 운동들은 각각의 개인적인 면으로, 침잠시키는 에너지들로 투표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ㅎ) 투표와 개표 및 당선자 발표에 이르는 이 선거장치의 동작(function) 방식이 다중의 의지에 대한 재현/반영의 진실성을 규정하는데, 재현/반영의 측면에서는 일그러진 거울 혹은 환상등(phantasmagoria)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순수반영은 아닌 어떤 투영이 재현/반영/대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재의 선거제도라고 생각합니다.
ㅂ) 네. 현 선거제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광장"이라는 표현을 붙이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ㄴ) 왜요? 광장은 좀 의미를 어느 한쪽으로 제약하나요? 예를 들어 패거리 같은 거요?
ㅂ) 아무래도 '광장'은 직접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생각되어서요.
ㅈ) 광장보다는 광야가 어울릴까요?
ㅂ) 일그러진 환영이 떠다니는 모습이니 (광장보다는) 막막한 느낌을 주는 광야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ㅎ) 그런 의미라면 (‘당신의 광장에 투표하라’라는 말이 ‘소신 투표하라’라는 말이라면) 하나 마나 한 말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그러할 테니까요. 설령 한 개인이 민주당보다 정의당이나 기본소득당이 더 마음에 들지만, 국민의 힘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에 투표하더라도 그 역시 소신투표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ㅂ)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 필자는 '차악을 선택하는 투표'와 '소신 선택'을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견제를 목적으로 한 투표행위'는 '소신투표'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 국면에서 이와 같은 논리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ㄴ) 소신투표란 저자에게 자신이 속한 광장(집단)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래를 위해 투표하자는 이야기인데 지적하신 대로 광장을 저마다의 광장으로 전제하고 글을 썼을 때 드러나는 저자의 다원주의적 입장은 직접민주주의를 포괄하지 못하는가 보다 합니다.
ㅎ)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의 선거제도, 특히 대선의 경우는 1) 각 개인의 (투표를 통해 표현된) "소신"을 측정하는 측면과 2) 누가 권력을 장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대선은) 승.자.독.식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1)보다는 2)가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1)이 무의미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2)에 종속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총선과 지자체선거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ㄱ) 소신과 미래와 광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2번을 비중 있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요?
ㅈ) 사회를 끌어가는 기본적인 투표행위마저도 광야로 끌어내리면 더 나은 사회로 바뀔 수 있다는 소신일까요?
그래서 줄에 휘감기는 사람들만 속출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ㅎ) 현재의 선거제도 아래에서 민주당/국민의 힘 외의 정당 후보가 대권을 장악하는 이변이 벌어지리라고 보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양당 외에 투표하자고 제안하는 "소신투표론"은 2)의 문제에서는 기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용주의투표론"(편의적 이름입니다)은 1)의 문제에서 기권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ㅂ) 저는 1)의 문제(소신)를 표현할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의 문제를 소홀히 하거나 기권하였을 때는 만회할 길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합니다.
ㄱ) 2)의 문제에서 두 양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ㅎ) 권력의 성격 구성에서 국힘과 민주당이 보여줄 차이가 "크지 않다"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민주당과 정의당의 차이는 정말로 "크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의당과 기본소득당의 차이는 또 어떨까요? 이백윤 후보의 노동당은 또 이들 소수정당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요?
특정 정당이 선거를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정도는 "상대적인 차이", 즉 정도 차이를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시민사회-정당-국가로 조직된 근본 뼈대를 전혀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고 운영방식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거를 통해 추구할 수 있는 노력은 작은 차이들을 놓고 다투는 것이지 근본적 차이를 놓고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ㄱ) 소신투표, 특히 정의당을 지지하는 분들은 거대양당과 심상정 후보 사이에 결정적인 문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티비 토론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차별금지법 같은 이슈에서 권력과 자본 눈치 보는 느낌 없이 거침없이 발언하는 것은 심후보가 유일했습니다. 그런 점은 큰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 네 나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심상정은 소신을 말할 수 있었고 이재명은 소신보다 현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당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소신을 말하고 당선 가능성을 놓고 현실을 재야 하는 사람은 소신 이상의 것을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심과 이의 소신에 질적 차이가 전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난 것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정도로 말하는 것입니다.)
ㄴ) 심상정 후보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애국보수를 구성하는 국민과 기득권층의 권리를 배제하는 것으로 보일만 한 일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ㅎ) 권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권력이 자본의 권력이라는 것을 훨씬 더 예민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은 현행의 권력이 국민-다중의 권력인 것 같은 외양/관념을 부단히 유포-유지하면서 그것이 자본 자신의 권력으로 행사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압력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지요.
ㄴ) 말씀하신 대로 자본이 권력으로 행사되도록 가하는 압력으로 여력이 없게 될지도요.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그 차이를 구별하려 들기는 어렵겠다 싶습니다.
ㄱ) 비판적 지지라는 표현이 불편하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비판할 부분이 너무 결정적이면 비판적 지지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투표=지지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곧 그 후보에 대한 지지일까요?
ㅎ) 투표와 지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지는 다양한 후보들에게, 그리고 다양한 공약들에 대해 행사될 수 있습니다. 이백윤, 김재연, 오준호의 정책들에는 지지할 만한 것이 아주 많고 심상정의 정책들에도 지지할 만한 것이 많으며, 이재명의 정책 중에도 앞의 후보들의 정책들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지지할 만한 것이 많으며, 국힘의 윤의 정책들에도 지지할 만한 것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투표는 단 한 후보에게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투표"를 통해서는 "지지"를 표현해낼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소신도 표현되지 않습니다.
ㄱ) 소신, 광장, 미래가 아니라 차악, 최선(예를 들어서 불꽃 박지현 님)을 말하면 배반을 하는 것처럼 비난하기도 합니다. 소신, 광장, 미래는 순수한데 최선을 말하면 불순한 것처럼 이요. 위에 말씀해주신 것처럼 모든 사람의 소신, 광장, 미래가 존중되어야 한다면 차악과 최선도 그 사람에게 소신이고 미래이고 광장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미래와 광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ㅎ) "투표"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number)를 모아서 정치적 효과를 거두려는 전술적 행동으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복잡한 선거장치의) 엄청난 제약들에 연결=포위된 채로 말이지요.
ㅁ) 다중의 대의정치체제 내에서의 투표행위는, 승자독식구조 속에서의 최선의 선택은 결국 2)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를 결정하는 선택, 즉 차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ㅎ) 물론 대선이 아니라 총선/지자체 선거의 경우는 후보와 정당에 각 1표씩 한 개인이 두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위의 1)과 2)가 비대립적이게 즉 소신과 실리가 각각 표현될 여지가 조금 커집니다.
이러한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갈등은 현재의 선거제도가 로또식 승자독식주의에 따라 조직되어 있어서 시민들에게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것입니다.
ㄱ) 광장이 계속되는 것이라면 누가 되든 운동은 계속될 것이고 그 관점에서 전술을 택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ㅎ) 이 갈등은 누구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를 놓고 결판을 벌임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중의 의지가 최대한 충실하게 재현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구축과 선거장치의 조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ㅂ) 거대 양당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그 해법도 정당정치의 테두리 내에서 사고되는 것 같습니다. 정권 획득이라는 중간과정(?) 없이 정책들이 그 자체로 서로 경쟁하는 정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ㄴ) 내각제가 이를 보완하는 것이기나 한지 궁금합니다.
ㅎ) 현재의 정치개혁 대안으로 제안되는 다당제는 승자독식의 억압성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각제는 그 장점만큼 다중의 정치적 개입 여지를 줄이는 역효과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ㄱ) 다당제 실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ㅎ)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가 현행의 대선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선거장치들(정당, 신문, 방송, 정치평론, SNS, 이웃 등등)의 효과로 인해 양당은 완전히 동일하고 어떤 차이도 없으며 형제 범죄자들의 다툼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 이른바 "소신투표"는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신을 표현하는 것이나 어떤 당이 권력을 장악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중들 사이의 연합 조건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정당이나 각료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낮추고 다중 자신이 삶과 정치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를 부단히 자기조직화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ㅁ) 어떤 선택이 다중이 더욱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연합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줄까요? 내일부터 부재자투표가 시작되니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