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 자유, 안정 함께 고민하는 정책이 필요해

김민아
공인노무사·노동교육센터 늘봄
노동교육센터를 운영하기 전, 저는 여러 노동조합에서 상근 간부로 일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노조 법규 차장으로 일할 때에는 법전을 들여다볼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비정규직에게 노동법이 참 먼 이야기였거든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 노동법이 제대로 적용되나 싶었는데,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에서 규직부장으로 일할 때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정규직이라도 노동법이 각자 상황에 알맞은 보호를 해 주지 못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지금의 노동법이 수많은 일하는 사람을 모두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터 중심, 조직 중심, 관리 중심으로 작성된 법제여서 일하는 사람의 다양성을 살피고 노동자의 생애주기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유연함'도 있다
'유연한 일'이라고 하면 흔히들 '일자리'에 대한 유연함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하고, 일자리 안에서 직무의 내용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유연함' 하면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는 자유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죠.
저는 노동자 쪽에 필요한 '유연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유연함'은 무엇일까요? 저는 일하는 사람이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누리도록 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안정을 포함하는 유연함은 정책 속에서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유연함+자유=일하는 사람의 자유
'일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흔히들 임금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인지 '안정된 직장'을 이야기할 때에 평생직장이 언급되고요. 그런데 일의 기준에는 임금만 있는 게 아닙니다. 노동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휴가를 잘 쓸 수 있는지, 사업장이 안전한지, 어떤 커리어패스를 가질 수 있는지, 일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등등 다양한 기준이 있죠. 이토록 다양한 노동 조건이 있음에도 노동법이 임금과 정년 보장만을 기준 삼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마다 어떤 조건을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지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에도 공고에 다양한 기준을 활용하여 조직의 모습을 표현하도록 해야 하고요. 구체적인 내용의 채용 공고를 통해 고용이 이루어진다면 더 세부적인 노동 조건에 대해 의견을 합치할 수 있으니까요.
근로 계약을 체결할 때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노동 조건을 따르는 관행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노동 조건을 정할 때에 일하는 사람의 자유를 조금 더 보장할 수 있도록 정책과 노동법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노동 시간의 단축에 대해 논의할 때에도, 비용 절감의 차원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개선하여 일하는 사람의 자유를 늘려준다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겸직이나 이직이 활발해진 이 시대에 평생직장 개념만 고수한다면 겸직과 이직 시에 생기는 문제를 이해하고 거기에 올바르게 대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이드잡, N잡 등의 새로운 개념이 많이 대두되었는데도 조직들이 아직 경직되어 있다 보니 겸직이 징계나 퇴사의 사유가 되기도 하고요. 일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겸직과 이직은 평생의 커리어에 대한 일종의 탐색 과정이 됩니다. 이것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동 문화의 차원에서도, 법제 차원에서도 보완이 필요합니다.

유연+안정=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문제
취업 준비생이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사업장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선택해서는 안 될 선택지를 택하지 않도록 그 선택지를 없애야 합니다. 사람들이 죽는 일자리가 없어지도록 중대재해 처벌법을 제정하고, 갑질 없는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갑질 금지법을 강화하는 식으로 법이 작동해야 합니다. 임금 체불하는 사업장 역시 마찬가지죠.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임금 체불이 많은 편임에도 처벌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데, 법의 관점에서 임금 체불하는 사업장이 줄어들도록 살펴야 합니다.
직장에서의 차별도 철폐해야 할 것입니다. 고용 형태, 성, 나이 등에 따른 차별이 여전하더군요. 이런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일하는 사람의 진정한 자유도 없을 것입니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을 더욱 더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고용보험이 전국민 단위로 확대되면 어떨까요? 당장 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도록, 일자리 탐색 과정에도 고용보험이 작동한다면 든든할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자유와 안정은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양립할 수 있다
자유와 안정, 이 두 가지는 보통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터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충분히 양립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조직 내에서 여러가지 기제가 작동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제도 같은 장치가 있겠습니다. 
근로자 개인이 조직을 바꾸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실시간 질문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은 삶을 지속할 때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평생직장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더라도, 적은 돈이라도 지속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는 보장이 있어야 미래를 기획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의 안정성,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요?
발제자 답변   '안정'은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비슷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직장이 안정적이라 느껴질 테고요. 하나의 직장에서 평생 일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직장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 직장에서 나가더라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갑작스레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와 정책이 보호해야 합니다. 저는 고용보험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 일하든 여러 방면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이 무궁무진하게 개발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