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계절을 속수무책으로 인정하는 게 어쩐지 분한 요즘입니다. 늦봄의 초록이 짙어지는 동안 계절은 여름으로 성큼 발을 집어넣고 무성해집니다. 저는 여름을 힘들어합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여름이 보여주는 성장은 어딘가 징그러운 데가 있지 않은지, 님에게 묻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싶네요. 

지난 연휴에는 동네 책방에 들러 전욱진 시인의 첫 시집 〈여름의 사실〉(창비, 2022)을 구매했습니다. 계절 이름이 들어간 책을 사서 모으는 일은 철마다 치르는 저의 작은 의식입니다. 아직 북 커버 버전이 있는 걸 보니 ‘1쇄를 다 털지 못했구나’ 짐작해 봅니다. 창비에서는 첫 시집을 내는 시인에 한정해 1쇄에 북 커버를 만들어 준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시사IN북, 2021)를 기획·편집하면서 1쇄에 북 커버를 씌워 한정판으로 만들었던 적 있습니다. 좋은 책을 어떻게든 독자에게 가닿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때 저는 책이라는 건 확신과 애정없이는 만들 수 없는 물건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아무튼, 〈여름의 사실〉이라는 좋은 시집을 혼자만 읽는 것이 아쉬워 님에게도 권해봅니다. ‘사람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일은 그만하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 하는지 다 아시죠’(‘회복기’  일부)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다가 조금 울었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네요.

얼마 전 저와 김진주·최한솔 PD가 맡고 있는 시사IN 유튜브 구독자 수가 7만 명이 넘었습니다. 7월12일 첫 방송을 시작해 생방송 67번을 했습니다. 5만 명쯤에서 계정을 넘겨받았으니 ‘작고 귀여운’ 성취를 맛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십몇백만 조회수를 찍는 유튜브 세상이지만 저는 조회수가 1000회만 넘어도 호들갑을 떨며 기뻐합니다. 큰 목표도 좋지만 눈앞의 작은 목표를 자주 달성하면서 귀여운 승리들을 양손에 쥐고 씩씩하게 걷고 싶습니다. 그래야, 덜 지칠 것 같아서요. 조회수라는 성적표를 바로바로 받아보는 일은 사실 자존감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방송(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정치왜그래?〉)을 하다가 지난겨울, 추가 편성을 했습니다(매주 금요일 오후 5시30분 〈금요시사회〉). 그리고 이번에는 3차 개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방송 시간을 약간 조정하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프로그램도 편성할 예정입니다. 주3회 방송이 될 것 같아요. 앗, 그러고 보니 아직 말하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후원 독자인 님께는 어쩐지 ‘스포’를 하고 싶습니다. 빨리 실험하고 빨리 망하고, 망한 것에서 배워서 나아지겠습니다. 시사IN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방송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유튜브 계정 있으시면 구독·좋아요·알림 설정해주시고 주변에 한 사람씩에게만 이야기 해주세요(물론 더 많이 알려주셔도 됩니다). 유튜브에도 볼 만한 시사·정치 콘텐츠가 있다고요. 일단 저희끼리는 굉장히 즐겁게 만들고 있는데,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일을 ‘재밌게’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저는 시사IN을 소개하는 자리가 생기면 “한국 사회에 이런 독립언론이 있다는 걸 당신이 자랑스러워해도 된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광고주의 존재보다 구독자의 존재가 압도적인 매체에서 일한다는 것이 저만의 자랑일 수 없겠지요. 포털 사이트에서, SNS에서 우리는 ‘무료’로 기사를 본다고 착각합니다. 광고주들이 언론 노동에 대신 값을 쳐주고 있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요. 삶에서, 일상에서 멀어지는 기사는 그렇게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때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님이 시사IN이라는 매체를 지켜주시는 것은 ‘좋은 언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이 보내주시는 그 바람과 믿음은 저희의 직업윤리가 됩니다. 

“세계는 한 번에 바뀌지 않아. 그러니 한 번씩 바꾸면 돼.” 〈마이너리티 디자인〉(다다서재, 2022)을 읽다가 굵게 밑줄을 그은 문장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렵지만, 나 한 사람을 바꾸는 일은 그것보다는 조금 쉬운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꿈꾸는 좋은 세상이 이미 온 것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미래는 사실 멀리 있지 않고, 지금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요. 저는 안온과 무해라는 말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안온할 수도 없고, 우리의 존재는 절대 무해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간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니 정치를 외면하는 대신 함께 노려봐 주세요. 시사IN 유튜브가 그 통로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전욱진 시인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 그래도 한 번은 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팩트 체크’ 일부)라고 저 역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