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겪는 문제를 직접 행동하여 바꾸자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오늘은 《한편》 1호 ‘세대’의 두 번째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합니다.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 대표인 이민경은 2019년 화제의 단행본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을 집필하며 새로운 세대의 목격자가 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 자세히 들어 볼까요?

2015년 무렵부터 한국 사회에서 일반 여성들로부터 확산된 직접행동주의의 기조란 간단하다. 몸으로 겪는 문제를 직접 행동하여 바꾸자는 것이다. 탈코르셋 운동을 1년간 관찰한 결과, 나는 그들이 여성적인 꾸밈이라는 행위와 자기 자신 사이의 연결을 끊어내는 시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이 그동안 어디에 고정되어 있었는지를, 어떻게 인정을 거머쥐고자 했는지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상 우리는 일상에서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를 일절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을 통해 여성이 저마다의 이유로 꾸밈을 통한 긍정적인 자아상을 실현하던 시대로부터 일상에서 외모가 아무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여성이 출현한 시대로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을 주도하고 참여하는 이들의 연령대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라는 사실은 그 운동의 특수한 방향과 열기를 만들어 냈다. 어리다는 수식어는 비교할 집단이 있어야 성립 가능하다. 이들은 사회에서 발화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에 비해 어렸다. 상황에 따라 어리다는 단어에는 그를 수식하는 대상을 미숙한 것으로 바라보는 평가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어린애들이 만들어 내는 운동은 그 의미를 충분히 청취하지 않고 효과를 부각하지 않아도 좋을 것으로 만들었다.

탈코르셋 운동이 의미화되지 않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발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운동에서 터져 나오는 서사로부터 자기 자신의 경험을 곧장 환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또래 문화에서 배제되는 일이 민감한 문제임을 이해하고, 주된 압력에 저항하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일수록 꾸밈을 금지당했던 자신들의 교실 속에서 꾸밈은 곧 자유를 상징하고, 꾸민 이들이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떠올렸다.

꾸밈을 저항으로 대했던 이들은 성인이 되어 꾸밈 행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개인적 시공간을 어느 정도 확보한 채 살아왔다. 발화 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은 거리에서 화장한 학생들을 보며 여전히 자신이 누리지 못하던 자유로움을, 그리하여 진보를 읽어 낸다. 그렇기에 탈코르셋 운동을 제대로 청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결코 이 운동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경험을 소환하며 ‘화장하는 것을 가지고 왜 굳이 운동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이들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도 한다. ‘그런데 왜 요즘은 전부 헤어롤에 마스크를 끼고 등교하는 겁니까?’

선생과 학생이라는 위계질서 하에서 선생의 금지에 반해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고 저항하기 위한 의미로서의 ‘꾸밈’이라는 행위의 의미가 대폭 바뀐 기점은 대략 2010년대 무렵이다. ‘저항’의 탈을 쓴 뷰티 산업은 그 아래 세대를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주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유독 특정 세대에게 꾸밈이란 그저 ‘하지 않으면 될 일’을 넘어서는 문제가 되었다.

현재 교실은 여학생들이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수치로 여겨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장소로 바뀐 지 오래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그동안 선택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던 여성성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하고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몸소 실감한다. 내가 만난 이들은 저마다 끊임없이 거울을 보고, 거울을 놓고 나오면 불안하고,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고 느끼고, 살이 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짧은 거리를 외출하는데도 화장을 하고 옷을 코디해야만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공통적으로 이로부터 벗어났다고 술회했다. 사실상 탈코르셋 운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교실 풍경 대신 화장하지 않은 여성의 얼굴에만 쏟아지는 또래들의 ‘넌 왜 안 꾸며?’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젊은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뒤에 올 세대를 위해 연대하고자 한다. 뷰티 산업의 목표 대상 연령대가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탈코르셋 운동에서 각자의 경험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키즈 메이크업 산업은 여자 유아의 얼굴을 두고 ‘블루오션’ 운운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 산업이 화장하고자 하는 유아의 욕구를 ‘막을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전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슬로건을 만들어 내면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한’ 화장품은 유아의 욕망을 위하여 산업이 제시한 결과가 아니라 유아들의 욕망이 부풀게 된 근본 원인이다. ‘안전한 화장품’이라는 상품을 제시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름다워지기를 거부한다, 강요된 여성성을 벗어난다, 외모중심주의를 탈피한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세대는 이 표어를 자신의 몸을 통해 그대로 실천하고 전파한다. 여성성과 꾸밈과 아름다움과 욕망에 대해 논쟁을 벌이거나 담론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대신, 움직이기 위해 토론하고 토론한 대로 움직이며 움직인 깨달음을 토론에 더한다. 이들은 ‘여성성이 무엇인가?’, ‘아름다움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논리를 우선 가다듬기보다 개개인이 일상에서 반복하는 꾸밈이라는 행위를 일단 중지함으로써 대상화된 신체 이미지와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굳어져 버린 강박을 돌파한다.

꾸밈이 저항이라는 경험에 가로막혀 의미를 부여받기 어려웠던 탈코르셋 운동은 꾸밈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더 낮아지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성이 여성성을 수행해야 하며 이때 여성성은 아름다움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전제를 부순다. 오로지 여아에 한하여 꾸밈을 당연시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에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만들어지기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함이다.

💬 탈코르셋 운동을 오래 관찰한 저자 이민경 선생님은 인터뷰이의 아래와 같은 말이 기억이 남는다고 전했습니다. 

“제가 문제인지도 몰랐던 어떤 문제들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게 탈코르셋인 것 같아요. 선택지가 3번까지 있는데 4번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대체 왜 이 1, 2, 3번을 가지고 있었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거요.”(『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147쪽) 

이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몸에 대해 어떤 선택지를 갖고 있는지, 왜 그 선택지를 갖고 있는지를요.

이민경은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에서 페미니스트를 위한 언어를 짓고 옮기는 활동을 한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국제회의통역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지은 책으로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유럽낙태여행』(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임신중지』, 『어머니의 나라』,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나, 시몬 베유』, 『우리는 언제나 늑대였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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