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화행정을 혁신하고 관료주의를 개혁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필요한 때
문화연대 2019년 3월 14일자 주간이슈논평ㅣ
문재인 정부, 지금은 문화행정을 혁신하고 관료주의를 개혁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필요한 때


"새로운 문화부 장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문화행정의 혁신을 위해 문화부 관료주의 조직문화를 본질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부 관료 출신의 인사를 지명할때가 아니라 문화부 관료주의와 이해관계가 없는, 강력한 개혁 인사가 필요한 때다."

지난 8일, 시민사회와 문화예술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양우 중앙대 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문화연대는 박양우 후보의 CJ 사외이사 전력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문재인정부의 문화행정 개혁이 관료주의의 집단적 저항 앞에서 무력화된 채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 문화부 관료 출신의 인사를 문화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문재인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태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번 인사 실패는 그 동안 문재인정부가 보여준 문화정책에 대한 무기력함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문재인정부가 주장해 온 적폐 청산과 문화행정 혁신을 강력하게 실천할 개혁적 인사가 필요한 때다. 
  
문재인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문화행정의 파행 운영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 문화생태계를 다시 일으키고 문화행정의 혁신을 이끌어 내야하는, 촛불시민의 염원과 함께 출발한 정부였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행보는 이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많은 현장 예술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 사태는 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도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무관심과 미온적 접근은 문화행정을 둘러 싼 관료주의 체계의 자기 방어적 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주장과는 정반대의, 문화행정에 대한 개혁을 스스로 무력화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은 집권 초기부터 약속했던 문화예술 현장과의 협치는 부실했고, ‘셀프면책’과 같은 권위적이며 관료주의적인 행정 태도로 일관하며 현장 문화예술인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산적해있는 문화예술계의 현안이나 문화정책의 새로운 대안보다는 평창동계올림픽, 남북교류 등과 같은 대형 이벤트에만 집중하며 문화행정의 혁신과 조직 개혁보다 전시 행정을 주도하느라 분주했다.

블랙리스트라는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 정권과 비교했을 때, 현재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과 행정은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했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도 못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문화부 장관 후보자 지명은 실망감을 넘어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문화행정의 혁신과 개혁을 이끌어 내야하는 과제를 가지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에게 지금 시기는, 지난 2년간의 한계를 만회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개혁의지와 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진 문화부 장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비롯하여 최근 문화행정의 구조적 문제들의 핵심에는 견고한 관료주의 체계와 조직문화가 존재한다. 따라서 새로운 문화부 장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문화행정의 혁신을 위해 문화부 관료주의 조직문화를 본질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부 관료 출신의 인사를 지명할때가 아니라 문화부 관료주의와 이해관계가 없는, 강력한 개혁 인사가 필요한 때다.


문화연대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문화부 장관 임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을 당부한다.
 
첫째, 새로운 문화부 장관은 문화행정을 둘러 싼 관료주의 체계를 적극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동안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과 문화행정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것은 문화행정의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조직문화였다.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행정 관료들은 방어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혁신과 개혁의 기회를 방해해왔다. 최근 있었던 문화부 한민호 전 국장의 문화예술단체 협박 및 소송건은 관료주의의 본질과 뿌리 깊은 폐해를 보여준 단적인 사건이다. 현재 문화부 관료주의 체계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과 행정 혁신의 실패를 확신하고 있다. 문화행정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문화부 내 관료주의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새로운 문화부 장관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
 
둘째, 새로운 문화부 장관은 문화예술 현장에 기초한 강력한 협치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새로운 의제들은 과거의 낡고 비민주적인 관료주의 체계로는 진행될 수 없다. 이미 국내외 행정 혁신의 흐름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문화행정의 혁신은 자율적인 시민성과 실질적인 협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형식화된 협치가 아닌 정보의 능동적인 공개제도에서부터 개방적 프로세스, 숙의 민주주의에 기반한 논의와 의사결정, 실질적인 평가와 피드백이 가능한 평가환류 체계 등이 문화예술 현장, 시민사회의 주도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

셋째, 새로운 문화부 장관은 문화부 소속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블랙리스트 사건과 국정농단 사태가 오랜시간 동안 광범위하게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문화부 소속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블랙리스트 사태 만이 아니라 모든 지원정책의 작동 구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문화예술 현장과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현장 주도의 협치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적극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넷째, 문화산업 생태계의 공공성과 공정성, 문화다양성 확보를 위한 장관 인사와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 현장은 과도한 경제논리와 대자본 중심의 성과주의에 의해 불평등 경쟁과 독과점이 구조화된 상태다. 대자본들의 독과점으로 문화다양성은 파괴됐고,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생존권과 인권은 심각한 상황이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동력으로써 문화산업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과 문화산업 생태계에 대한 균형감 있는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때다. 문화산업 생태계를 둘러 싼 공공성과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는 장관 인사와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다섯째, 새로운 문화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및 체육계 성폭력 근절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노력으로 문화예술계와 체육계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나고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권력의 구조는 견고하고, 문화예술계 성폭력 가해자들은 조용해진 분위기를 틈타 현장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적극적이며 동시에 지속적인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지금까지의 성과조차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새로운 문화부 장관은 여성주의적 감수성, 성평등 정책의 제도화 등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인사로 고려돼야 한다.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앞서 말한 과제들을 반드시 이뤄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료주의 행정 조직의 개혁과 혁신을 이뤄낼 일관된 태도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신임 장관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문화부 장관 후보 지명은 명백한 인사 실패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번 새로운 문화부 장관 임명 과정이 그 개혁과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3월 14일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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