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딜리버리 vol.1 
'나의 몸'과 '우리의 몸'
 2023. 3. 31. 

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몸'을 떠올립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버스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이동 중일 수도 있겠죠. 스마트폰 또는 컴퓨터의 화면으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눈을 깜빡 감았다 떠보세요. 저는 방금 시공간을 뛰어넘어 당신을 만났습니다. 먼 곳에 있는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우리가 모두 다른 몸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쉽게 그 몸의 외연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정치학을 연구한 철학자, 정화열은 인간 사회의 진정한 윤리적 기반이 "나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앞서 쉽게 떠올린 '우리의 몸'이 윤리적 기반이 되기에 충분한가요? '우리'의 경계는 어디까지이며, '몸'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해 *c-lab 7.0은 몸의 경계를 확장하는 탐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인간 자아의 근간이 되는 주체-신체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 안에 있음을 깨닫는 몸, 도구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기능을 나누는 몸. 2023년 *c-lab 7.0은 모든 영역의 매체와 동등하게 결합하며 유기적 몸의 경계를 여는 매체-신체의 가능성을 찾고자 합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c-lab 7.0 리서치 딜리버리는 매체-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개념과 서적, 학술 자료, 프로젝트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c-lab 7.0의 시간 동안 '우리의 몸'이 무엇인지 충분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리아나미술관 *c-lab 7.0에 참여하는 아티스트&연구자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c-lab과 함께 매체와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고 오는 7월, 워크숍, 퍼포먼스, 리서치 등 다양한 형식의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권태현은 예술계에서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고 활동해왔다. 예술 바깥의 것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을 연구하고 있다. *c-lab 7.0에서는 인터페이스와 신체 사이의 '번역'을 가상환경과 게임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전보경영상 및 설치 작업을 통해 인간의 신체가 도구와 기술에 의해 변화되는 모습을 기록해왔다. 인간과 기술이 서로가 접합되고 어긋나는 지점을 찾아 이종 결합함으로써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질적인 존재인 인간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감각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c-lab 7.0에서는 인공지능의 문장이 신체에 기입되고 발화될 때의 변화, 신체의 떨림, 소리에 집중한 워크숍과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후니다 킴은 인간 생태계에 깊게 침투한 기술과 기술이 촉발하는 생태계의 변화에 주목해왔다.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환경 인지 장치'를 제작해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c-lab 7.0에서는 카메라 비전을 활용한 새로운 디바이스를 제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인터페이스와의 필연적 결합을 인식하고 변화하는 지각 방식과 감수성을 다루고자 한다.

신체의 기관, 장기를 뜻하는 단어 오르간Organ은 고대 그리스어 오르가논Organon에서 유래합니다. 이는 감각 기관, 도구, 장치뿐만 아니라 철학적 분석 도구라는 뜻을 가집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을 통칭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오르가논이 내포하는 것처럼 신체의 도구성은 동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동양 철학에서는 신체가 세계를 지각하기 위한 근본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몸을 수양의 대상이자 철학의 기초로 보았지만 서구 철학에서는 신체를 정신의 종속적인 도구, 즉 신체를 영혼의 하인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로써 몸과 정신을 구분하는 이분법이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 이분법을 넘어 몸의 올바른 특성을 이해하려는 논의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몸의 물질성과 사회적 의미를 짚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르가논은 우리의 신체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외부와 맞닿는 유일한 매체임을 상기합니다.

뇌와 컴퓨터의 결합이라면, 흔히 <공각기동대> 속 '전뇌화'를 떠올립니다. 이제 현실에서 만나볼 날도 머지않은 것 같은데요. 일론 머스크가 창립한 '뉴럴링크Neuralink'는 전뇌 칩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공개하며 전뇌의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AI를 가동할 슈퍼컴퓨터는 인간의 뇌보다 수만 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즉, 효율성에 있어서 슈퍼컴퓨터는 뉴런 다발로 가득 찬 뇌를 이길 수 없는 것이죠.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컴퓨터와 뇌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지난 달,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중심이 된 국제공동연구진들은 '뇌 오가노이드brain organoid'와 컴퓨터 시스템을 결합한 새로운 바이오 컴퓨터 개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오가노이드란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3차원적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유사 장기를 의미합니다. 오가노이드 인텔리전스Organoid Intelligence(이하 OI)라고 불리는 연구팀의 개발이 성공한다면, OI는 뇌의 계산 능력이나 컴퓨팅 속도, 효율적인 데이터 저장 기능 등을 활용해 적은 에너지로 작동할 수 있는 차세대 바이오 컴퓨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인간의 뇌와 유사해지기 위해서는 현재 5만 개에 불과한 OI의 뇌세포를 1,000만 개 이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생명 윤리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뇌 오가노이드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장기임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발달 단계에 맞춰 성장한다고 합니다. 개발된 OI에 의식이 있는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의 신체를 '진짜' 도구화하는 것일 텐데요. 이에 대한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실험실에서 탄생한 뇌-컴퓨터도 새로운 신체로 인정할 수 있나요?


* 토머스 하퉁Thomas Hartung 박사의 실험실에서 제작한 뇌 오가노이드, 분홍색은 뉴런, 초록색은 성상교세포, 파란색은 세포핵이다.

Q. *c-lab 7.0의 주제처럼 신체와 기술 매체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데요. 그런데 기술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릅니다. 최근 인공지능의 연구는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죠. 동시대 예술도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세 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후니다 킴: 그런 이유로 한동안 굉장히 우울했어요.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내가 하는 작업이 나중에도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매트릭스The Matrix> 같은 영화에서 묘사된 미래 기술이 작년까지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올해 들어선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트랜스 휴먼'이라는 개념도 이론적인 접근에서 그치지 않고 진짜 전뇌화된 '트랜스 휴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거죠.


권태현: 뉴럴링크의 연구를 보면 이제 정말 뇌에 칩을 이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져요. 이를 활용한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기도 하고, "너 전뇌화 안 하고 어떻게 살아?"라는 질문을 듣는 날이 분명히 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Q. 정말 머지않은 미래에 전뇌화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물질적인 신체의 의미란 무엇인지, 예술의 범주 안에서 새로운 몸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데요.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여러분은 '전뇌화'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전보경: 저는 안 할 것 같은데요.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매트릭스>를 보면 어떤 사람이 배신의 대가로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자기가 원래 먹었던 그 스테이크 맛이 아니라 뇌에서 그 기억 혹은 감각을 다시 불러일으킨 거잖아요. 그것처럼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내가 실제로 느끼는 것과 100% 똑같은 감각을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의문이에요. 저는 "지금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그 미래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어요. 이러한 생각이 제가 기존에 해왔던 '기술이 신체를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기술을 통해 본연의 신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등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후니다 킴: 이미 기술은 막을 수 없이 진보하고 있어요. 새로운 기술이 좋은지 나쁜지 따지려는 게 아니라 "공존할 방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만일 전뇌화해서 오감을 구현하려면 감각이 전자화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면서 학습된 파라미터가 작동할 텐데요. 하지만 신체가 실제로 경험하면서 얻는 정보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거든요. 그건 확신합니다. 그래서 전뇌화된 감각과 실제 감각이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다만 그러한 감각이 얼마나 트랜스되고 실제 감각과 섞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권태현: 저는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인터페이스가 HMD처럼 눈 앞을 가리는 것이나 스크린과 스크린, 손가락이 표면과 맞닿는 방식이 아니라 뇌와 직접 연결되는 감각적 차원으로 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신체와 인터페이스 그리고 그사이 번역에 대한 치밀한 이해가 필요해질 거라고 봐요. 그런 지점에서 저는 이번 *c-lab 7.0에서는 인터페이스를 물리적으로 해부해보거나 자신이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보고 싶어요.


*c-lab 7.0 참여 아티스트&연구자와의 대화는 아래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읽기 자료 👀 

리처드 슈스터만, 『몸의 미학: 신체미학-솜에스테틱스』 (북코리아, 2010), 37-40.

Smirnova, L, et al. Organoid intelligence (OI): the new frontier in biocomputing and intelligence in a dish, Front Sci, 2023년 2월 28일 (링크)


 이미지 출처 👀 
① Jesse Plotkin, 뇌 오가노이드 확대 이미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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