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문의는 반갑지만 계약서는 괴롭다. 


자세히 말하면 계약서는 검토해야할 예정 된 시간들이 괴롭다. 손쉽게 해결하고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서 일을 하고싶지만 계약서는 무시하기엔 너무 중요한 존재이다.  어쩔때는 프리랜서들의 작업진행 전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경건하게 하려고 한다. 


실제로 계약서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확정된 안을 받아서 사인을 하기까지는 경건하지 않다. 가볍게 말하면 좀 지저분하다. 지저분해진다. 


의뢰업체가 전달해준 기존 계약서를 검토할 때면 신경이 곤두선다. 몇십년넘게 수정한적 없는 양도계약서를 줄때가 많고 그것을 21세기에 맞춰, 내가 피해를 보지 않을 선에서 법적인 용어 처럼 보이도록 덜어내고 덧붙여야한다. 양도계약서의 경우 ‘양도’라는 말보다는 ‘구매자가 제 3자에게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판매할 수 있다’는 말로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활자를 읽다보면 이 부분을 놓치는 부분이 분명히 생긴다. 


어떤 계약서는 제3자 판매라는 단어가 없고 관련 조항이 전혀 없는데도, 모든 ‘작업물 인도’가 ‘양도’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긴세월 여러사람들을 거치면서 변화된 조항이 있는가 하면 단어에 큰 문제를 두지 않아 계속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업체가 제시한 표준 계약서를 사용하지만 몇가지 빼먹지 않고 넣는 조항이 있다.


  1. 정산 날짜
  2. 지체보상규정
  3. 제 3자 판매 금지 (양도금지)
  4. 계약서에 없는 부분은 합의 후에 진행 할 것
  5. 수정 횟수 제한 

등등을 넣는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은 마치 오래된 벽돌을 가져와 다시 쌓는 듯하다. 이미 좀 낡은 벽돌 하나를 넣었다가 조화롭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으면 빼고 다시 다른 것을 넣는 일 같다. 그럼에도 이 과정이 중요한 것은 의뢰인과 작업자가 단단하게 신뢰를 쌓아가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작업자가 언제까지 작업물을 넘기면 의뢰자가 인도 후 정산을 언제 줄 것인지 알고 시작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순서이기도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일의 크기에 상관없이 늘 계약서를 작성하고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유명하지 않았을 때 한 업체 사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유명하지도 않은 어린게  계약서 타령부터한다. 너보다 유명하고 나이든 작가들도 계약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계약서를 쓰지 않아 후배들에게 폐를 끼치는 기성 작가들의 문제였다. 내 잘못이 아니었기에 말했다.


“네. 사인하세요”


그림 의뢰보다 조금 가볍게 들어오는 원고 요청에도 꼭 계약서를 쓴다.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내가 일정에 맞춰 결과물을 넘기듯이 그들도 나에게 일정에 맞춰 정산을 해줘야할 것 아닌가. 서로의 일정을 확정한 계약서를, 나는 

세미계약서라고 부른다. 사실 해외 출판사의 경우 출판 계약서가 하나의 책이라고 할정도로 방대하고 상세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국의 실정에 맞추면 그렇게는 아무도 일할 수 없기에 견적서같은 느낌으로 만들어 놓은 계약서가 있다.


  1. 의뢰업체 정보
  2. 작업자 정보
  3. 의뢰 내용
  4. 작업물 인도 기한
  5. 정산 기한
  6. 추후 법적인 문제는 상호 합의를 하도록한다. 

이정도의 양식으로 진행한다. 물론 법 지식에 해박한 사람이 보면 불안한 계약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을 절약하고 1차적 불안을 잠재울 역할로는 아직 대체할 것을 찾지 못했다. 이후 작업이 확정 되면 제대로 된 계약서로 진행하는 경우 도 있다. 


나이가 어리고 유명하지 않아도 일을 받아 진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계약서를 써야한다. 꼼꼼하게 읽어보고 교묘하게 비틀어 적지않아 서로가 피해보지 않을 합의된 계약서를 말이다. 법적인 보호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요즘 세상이 마치 법 없이도 살 사람들 때문에 법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여도 일단 양식을 갖춰 서면으로 만들어진 모든 계약서는 강력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나와 내 작업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법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틈틈히 저작권법 강의도 찾아 듣고 공부하고 있다. 


예술청에서는 다양한 법적인 도움이 되는 강의와 상담을 진행한다.

https://sap.sfac.or.kr/counseling/


서울시 공정거래종합상담센터에서도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일주일 소요, 전문 변호사 상담. 예술청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

https://sftc.seoul.go.kr/fe/main/NR_index.do


이런 강의들을 찾아 들으면 나중에라도 도움이 많이 되니 시간이 될때 자주 찾아 듣는 것이 좋다. 저작권부터 세금 계산까지 폭 넓게 원데이클래스라도 들어 놓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리랜서들도 세금 문제가 골치 아프다.  원천징수로 진행한 건들은 종합소득세를 내야할 때 골치가 아팠고 사업자가 있는 지금은 일반사업자로 진행해야는 부가세 계산이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부가세는 세무서를 통해서 내고 있다. 일을 받을 때도 원천징수와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일을 고려해가며 받고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큰규모의 일은 사업자 처리를 하고, 작은 규모의 일은 원천징수 처리를 한다. 최근데 내가 준비한 계약서 없이 진행한 일이 불안하여 정산처리를 사업자로 진행했는데 원천징수 처리보다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거래로 인지해서 좀 더 정산이 정확하게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긴하다. 


최근에는 양도계약과 그로인해 촉발 된 안좋은 일들로 검정고무신의 이우영작가님이 돌아가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번 레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