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커플은 빚을 내서 결혼합니다"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미래 세대'라는 표현을 들어 보셨나요? 환경 운동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 말은 아직 오지 않은 세대, 또는 앞으로를 이끌어 나갈 어린 세대를 의미합니다. 지금의 성장 중심 사회는 미래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진부하게 만든다는 탈성장 이론가 라투슈의 주장을 함께 검토해 보실래요?

얼마 전, 너무도 만족스럽게 사용해 오던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다시 작동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컴퓨터를 들고 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았던 판매 수리점을 찾았다. 기술자는 컴퓨터를 살펴보더니 하드 디스크 수명이 끝났다면서, 그 ‘기계’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라고 했다. 하드 디스크는 애초부터 3년 정도의 수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란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제품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내 안경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다행히 집 근처에 구식 안경점이 하나 있었다. 점원은 가게에서 비슷한 안경다리를 찾아서 수리해 주었고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다른 쪽이 부러졌다. 그 안경점에 다시 찾아가 비슷한 안경다리가 있는지 묻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셨어요? 이런 종류의 안경은 수명이 2년 정도밖에 안 돼요.”
 
그 대상이 세탁기든 텔레비전이든 모두들 비슷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모두 계획적 진부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성장에 중독된 우리의 생산 시스템이 계획적 진부화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무제한적 축적 위에 사회 조직을 구축하는 운명을 선택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끊임없이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강요받는다. 성장이 느려지거나 멈추면 곧바로 위기가 찾아오고 모두들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이 필연성 때문에, 막스 베버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면, 성장은 “철 코르셋”이 되어 버린다. 고용을 늘리고, 퇴직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공공 지출(교육, 안보, 사법, 문화, 교통, 보건 등)을 유지하려면 국내 총생산(GDP)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가 국내 총생산의 수준이 사회의 복지, 나아가 우리의 행복을 재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점점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은 당연히 점점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장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윤을 늘리려는 시도는 생산-소비의 확대와 비용 절감에 의해 실현 가능해진다. 코스트 킬러야말로 이 시대 새로운 영웅이다. 초국적 기업들은 엄청난 연봉, 두둑한 스톡옵션과 황금 낙하산을 제공하며 이들을 모셔 오느라 혈안이 돼 있다. 대부분 ‘경제 군사 학교’라고 불러야 마땅할 비즈니스 스쿨을 나온 이 전략가들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노동자, 하청업체, 남반구 국가, 고객, 정부와 공공 서비스, 미래 세대, 그리고 무엇보다 자원 공급원인 동시에 쓰레기장이 되어 가는 자연에 그 대가를 떠넘길 수 있을지를 고심한다. 2010년 영국 석유 회사인 BP사의 딥워터 호라이즌 시추선 폭발로 초래된 멕시코 만 석유 누출 사건에서 보듯, 자연은 부수적 피해자로서 대가를 지불한다. 한편 오늘날 모든 자본가, 금융가, 호모 에코노미쿠스(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는 평범한 것이 되어 버린 경제적 악에 공모하는 흔해 빠진 범죄자의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 한 명석한 은행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청소년들에게 신용 구매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마약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밴스 패커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문에서 현명한 약혼자들과 어리석은 약혼자들에 관한 우화를 읽었다. 어리석은 약혼자들은 빚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때까지 체계적으로 저축을 해 나갈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들처럼 함께 사는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는 어리석은 짓이란다. 더욱이 그들 때문에 국가 경제는 몇 년 분의 가족 소비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현명한 약혼자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정을 꾸리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그들은 곧바로 결혼한 후 신용 구매로 신혼여행을 떠나고, 자동차와 주택, 가구를 사들인다. 상업의 전쟁터에 나선 이 영웅들은 국가 산업 생산을 자극하고, 실업 감소에 기여하며, 구매력을 높이고, 삶의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이어서 밴스 패커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데, 1960년대에 나온 이 분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우화는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대금 결제가 밀려 파산 위험에 처한 부부들이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런 결말은 실제로 여러 조사 결과에 의해 확인되었다.”

엄청난 빚에 허덕이는 가정들 중 상당수는 새로 대출을 받아 빚을 막는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2012년 페리구의 한 제2금융업체 사무소 앞을 지나다가 창문에 당당하게 나붙은 광고를 봤다.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대출 통합으로 당신의 욕구에 새로운 활력을”이라는 문구에 올라타 슈퍼마켓을 향해 날아가는 사진이었다. 이처럼 ‘회계 관리’의 전통적 지혜가 뒤집힌 것은 넓게 보면 시간의 압축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미래의 계획은 지체 없이 곧바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미래는 사라지거나 그 역시 진부한 것이 되어 버린다.

계획적 진부화야말로 성장 사회를 이끌어 가는 소비주의의 절대적 무기다. 우리는 광고를 거부하고 대출을 거절할 수는 있지만 제품의 기술적 결함 앞에서는 대부분 속수무책이 된다. 전기 램프에서부터 안경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의 필수적인 보조 수단이 된 기계나 기구는 특정 부품의 의도된 결함으로 인해 고장을 일으키는 시점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새 부품이나 수리가 가능한 곳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찾아낸다 하더라도 동남아시아의 수용소나 다름없는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생산된 신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그 결과 쓰레기통과 폐기장에 컴퓨터, 텔레비전, 냉장고, 식기세척기, DVD 플레이어, 휴대 전화 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각종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매년 제3세계 쓰레기 처리장으로 수출되는 컴퓨터가 1억 5000만 대에 달한다. (나이지리아와 가나로 매달 선박 500척 분량이 수출된다!) 이 쓰레기들 속에는 중금속과 수은, 니켈, 카드뮴, 비소, 납 등의 유독 물질이 포함되어 있지만 보건 기준은 무시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현대식 가전 기기들이 구식 아궁이와 굴뚝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진부화(obsolescence)’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1899)에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19세기에는 생산비를 줄이고 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양과 질을 속여서 파는 ‘제품의 위조’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언제나 판매를 더 늘리고 싶어 하는 생산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제품의 수명, 그중에서도 특히 설비의 수명과 소비, 재구매 주기를 단축하려는 욕심이 들기 마련이다. 유럽에서 성행한 제품의 ‘위조’는, 이를테면 미국의 계획적 진부화를 낳은 조상 격인 셈이다.
 
계획적 진부화는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작자가 상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특수한 장치 등을 이용해 미리 수명을 제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린터를 제작할 때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을 삽입한다든지,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나자마자 고장이 나도록 기계를 설계하는 식이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진부화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과거 산업계에서 ‘계획적 진부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 개념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뉴욕의 부동산업자 버나드 런던에 의해서였다. 이 표현은 좁은 의미로, 제품의 수명 단축을 위해 생산자나 설계자가 고의로 결함 있는 부품을 삽입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물건을 내다 버리게 만드는 방식을 지칭했다. 그러나 자일스 슬레이드의 정의는 이보다 넓은 의미까지 포함한다. “계획적 진부화는 인위적으로 공산품의 수명을 단축시켜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계획적 진부화라는 표현을 발명한 사람은 1950년대 유명 산업 디자이너 클리퍼드 브룩스 스티븐스로 (잘못) 알려져 있다. 스티븐스는 기술적 개선 없이 규칙적으로 새 모델들을 출시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이 아직 쓸 만하더라도 새 모델을 구입하도록 소비자들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방식을 진부화 계획이라고 명명했다. 그와 동시에 기업들은 경쟁의 무기를 얻기 위해서, 소비를 강요하는 수단으로서, 다양한 수준의 기술적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 광적으로 빠져들었다. 오늘날 전자, 마이크로컴퓨터 등의 분야에서 실제로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전자책 단말기, 휴대 전화, 태블릿 PC(아이패드, 아이팟 등)의 신모델 출시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세르주 라투슈는 대표적인 탈성장 이론가로, 발전 지상주의와 경제를 통한 세계 지배라는 관념을 통렬히 비판한다. 1940년 프랑스의 항구 도시 반에서 태어난 라투슈는 파리 11대학 경제학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메가머신(La Mégamachine)』(1995), 『발전에서 살아남기(Survivre au développement)』(2004), 『탈성장의 도박(Le Pari de la décroissance)』(2006),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Petit traité de la décroissance sereine)』(2007), 『탈성장사회(Sortir de la société de consommation)』(2010), 『검소한 풍요 사회를 향하여(Vers une société d’abondance frugale)』(2011), 『낭비 사회를 넘어서(Bon pour la casse)』(2012)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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