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스시장 각축전... 손 놓은 한국 '연료 확보' 위기 온다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가스텍 2018' 가보니
미국은 수출국 변신… 中, 최대 LNG수입국 부상

한국, 뒤처진 에너지 전환 정책에 구매력 제자리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스텍 2018'의 전시장 메인 통로에 쉘, 엑슨모빌 등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업체들이 대형 부스를 차려놓고 있다. 김용식 기자


#. 세계 천연가스 산업의 최대 행사인 ‘가스텍(GASTECH) 2018’이 열린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시 남중부의 피라 그란 비아(Fira Gran Via) 전시장 메인 통로에는 쉘, BP, 엑슨모빌 등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사들이 90개국 700개 에너지기업에서 찾아온 3만명의 고객에게 눈길을 끌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자릿값만 수억원을 호가하는 알짜 목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 건 급변하는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서 미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세계 2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 한국의 KOGAS(한국가스공사)도 메인 통로 초입에 국내 14개사와 공동으로 대형 부스를 설치하고 업계 관계자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천연가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연료지만, 어디서 어떻게 들여오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LNG 수입국이다. 세 나라가 국제 LNG 시장의 큰 손인 이유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싼,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PNG)’를 들여올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다. 파이프라인은 바다(일본)나 위험지역(북한)을 거치기 어렵고, 인프라를 까는 데 장기간(중국)이 소요된다.

비싼 가격에도 한중일 3국이 막대한 LNG 수입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바람 때문이다. 전통 연료 중 상대적으로 오염원 배출, 위험성이 적은 덕에 천연가스는 인류가 궁극적인 신재생에너지 체제로 가기까지 중간 단계 에너지원 역할을 맡길 이른바 ‘브리지(bridge) 연료’로 불린다.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스텍 2018'에 차려진 한국가스공사의 부스. 현대차는 천연가스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소차 넥쏘를 함께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용식 기자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스텍 2018'에 차려진 중소 가스업체들의 공동 코리아 부스. 김용식 기자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040년까지 가스의 연평균 발전량 증가율(2.1%)이 신재생에너지(2.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을 전망이다. 이는 원자력(1.5%)과 석탄(0.4%)을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2015년 40.2%에 달하던 석탄 발전량 비중이 2040년 30.5%로 떨어지는 것을 신재생에너지(23.0→31.4%)가 대체하면서 그 과정에서 부족한 공간을 천연가스 발전이 채우는 식이다. LNG건, PNG건 각국의 천연가스 확보 경쟁이 앞으로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국제 천연가스 시장엔 공급과 수요 측면 모두에서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선 공급 쪽에선 전통적인 가스 수입국이던 미국이 이른바 ‘셰일 혁명’에 힘입어 천연가스 생산량을 급속히 늘리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저유가 시기에 혹독한 체질개선까지 거친 미국 셰일 업체들은 손익분기점 유가 수준을 기존 배럴당 70~80달러에서 40달러로 낮추며 ‘셰일 2.0 시대’라 부를 만큼 경쟁력도 키웠다.

미국은 조만간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ㆍ수출국으로 탈바꿈할 기세다. 이는 기존 천연가스 시장을 지배하던 견고한 룰까지 흔들고 있다. 수입한 가스가 남아도 다른 나라엔 되팔 수 없고(도착지 제한 규정), 한번 계약한 물량은 중간에 사정이 변해도 무조건 사가야 하는 의무(의무인수 규정) 등 공급자 쪽에서 그간 ‘아시아 프리미엄’이라 부르던 규정을 미국 수출업체들은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같은 수입국으로선 새로운 LNG 구매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스텍 2018'에 차려진 미국 천연가스 액화 터미널 운영업체 '프리포트'의 부스 모습.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가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탈바꿈하면서 이 회사도 이제 수출용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김용식 기자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스텍 2018' 컨퍼런스에서 미국 셰일가스의 영향에 대한 주제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김용식 기자

수요 측면에선 중국, 인도 등 거대 신흥국이 천연가스를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올 들어 1~5월 LNG 수입량(3,490만톤)이 일본(3,450만톤)을 제친 중국은 2019년엔 세계 최대 LNG 수입국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중국은 환경규제와 대기환경 개선 정책 등으로 가정ㆍ산업용 연료를 모두 석탄에서 가스 중심으로 변경하고 있다.

결국 이런 공급ㆍ수요 측면의 변화들은 우리 같은 수입 의존국에게 향후 안정적인 가스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피터 클라크 엑슨모빌 가스&파워 마케팅컴퍼니 회장은 지난 18일 가스텍 첫날 컨퍼런스에서 “20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천연가스 수급전쟁이 발발하고 2030년 전후엔 상당기간 공급자에게 유리한 시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일본은 이런 위기감을 인식하고 2016년 G7에너지장관회의 등을 통해 ‘일본에 국제 LNG허브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이미 자국에 유리한 구매 여건 조성을 위해 발벗고 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칫 이런 변화에서 소외될 위기다. 정부가 장기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세계 추세에 비하면 현저히 속도가 느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에도 한국의 석탄 및 원자력발전량 비중(66%)이 세계 평균(41.2%)을 크게 웃돌 걸로 전망했다. 신재생에너지가 자리잡기까지 석탄과 원자력이 줄어드는 공간을 메울 LNG의 구매력이 한동안은 커지기 어려운 구조다.

주요 발전원별 발전량 비중 전망=그래픽 김경진기자


지나치게 경직된 LNG 도입 구조도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가스공사의 전량 독점수입 체제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민간업체에게 발전ㆍ산업 용도의 ‘자가 소비용’에 한해 수입을 허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달 LNG 수입 열량 기준을 가스공사가 정하는 ‘기준열량’의 ±1%로 좁게 한정해 민간 수입업체로선 시장에 싸게 나온 물량조차도 열량이 맞지 않아 구입을 포기하는 등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가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구매 환경이 급변하는 사이 손을 놓고 있다간 자칫 미래에 가스를 구하려 해도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르셀로나=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개편 이벤트] 한국일보 홈페이지가 확! 새로워졌어요!
네이버 채널에서 한국일보를 구독하세요!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