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독립언론' <시사IN>의 자존심입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변진경입니다



이 편지를 쓰기 바로 직전 저는 한 시상식장에 갔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주최하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장이었는데요. 저희 시사IN이 ‘2월의 좋은 보도상’ 수상팀 중 하나였습니다. 수상자는 저와 함께 경제팀에서 일하는 전혜원 기자, 그리고 사진팀 신선영 기자입니다. 지난 1월에 저희 커버스토리로 실린 ‘2001 아카시 유족이 2022 이태원 유족에게’ 기억나시나요? 일본 아카시시(市) 육교 사건의 유족들을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무려 22년 전 일어난 일이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와 참 슬프게도, 무섭게도 닮은 점이 많아 저도 옆에서 취재 과정을 지켜보고 기사를 데스킹하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는데요. 그 기사가 좋은 평가를 얻어 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후배들이 기사를 잘 써서 어디 가서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받을 때보다 사실 더 신이 나요. 제가 상 받고 칭찬받으려면 엄청 열심히 제가 고생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후배들의 수상은 고생은 후배들이 하고 기쁨은 공짜로 함께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걸까요? :) 예쁜 튤립 꽃다발을 하나씩 사서 후배에게 건넸습니다. 학사모 쓰고 눈물짓는 졸업식장 부모님처럼, 수상자도 아닌데 수상자 사이에 끼어서 사진도 한 방 박았고요. ‘이 기사들이 왜 상을 받게 되었는지’ 주최 측의 선정 사유를 듣고, 상장과 기념패의 문구가 낭독되고, 꽃다발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시상식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님 생각이 났어요. 이 기쁜 소식을 독자님께도 빨리 전하고 싶다! 나만큼 좋아하시겠지! 마침 독자님께 편지를 쓸 차례가 됐는데 잘 되었다! 자랑해야지!!!

하나의 기사를 둘러싸고 저희 기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3단계를 거치는 것 같습니다. 1단계는 취재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입니다. 원하는 취재원을 만나 ‘머리에 박하향이 퍼지는 듯한(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 이거구나’ ‘바로 이 말을 듣기 위해 내가 이 사람을 만난거지!’ 할 때요.) 인터뷰가 이뤄질 때 기쁨을 느낍니다. 기자들은 취재 후 편집국으로 복귀하는 동료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알아차리죠. “오늘 취재가 잘 됐나 봐?” 반대로 꽉 막힌 토요일 오전 경부고속도로 목천 나들목처럼 취재가 좀체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도 많죠. 취재원들이 모두 연락이 잘 안 되고, 겨우 연락이 닿아 만나도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취재를 해도 해도 이야기가 하나의 덩어리로 잘 뭉쳐지지 않는 느낌이 들 때. 얼굴이 죽상입니다. 저희 매체는 보통 수요일 오후~목요일 오전까지는 취재를 마무리하고 기사 작성에 들어가야 하는데요. 그래서 수요일 오후쯤 편집국에 와서 저희 기자들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아마 다음 주 <시사IN> 기사들의 ‘와꾸’가 좀 그려질지도 모릅니다. 어느 얼굴에 기쁨과 자신감, 어느 얼굴에 불안과 공포(!!맞습니다. 바로 공포입니다)가 드리워있는지 파악이 되니까요. 

1단계의 공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2단계, 마감 단계의 지옥도 때문이죠. 기사로 인한 희노애락은 정말이지 기사를 작성할 때 온갖 부피와 모양으로 기자들의 마음속에 찾아옵니다. 저는 올해로 16년차 기자인데요, 아직도 매주 기사를 마감할 때마다 손에 진땀이 납니다. 원래 땀이 굉장히 적은 체질인데 말이죠. 맞춤한 문장과 단어를 생각해내고 타타탁 자판을 두드릴 땐 너무 흥이 나서 혼자 어깨를 흔들기도 하고요. 기사가 너무너무 막히면 혼자 욕도 내뱉어 봅니다. 마감할 땐 모든 기자들이 신경질쟁이가 돼서 서로들 섣불리 말도 잘 안 겁니다. 이 단계 자체가 주는 성취감과 좌절감이 엄청나요.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미발표’ 원고를 마감한 직후, 내가 최초의 독자가 되어 읽어내려가다가 ‘호오, 재밌는데?’ 느낄 때의 그 희열감이란! 반대로 나의 이 원고가 ‘정말 똥같다’고 느껴질 때의 좌절감이란!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전의 이 과정 자체에서 스스로 만족하거나 실망하는 감정이 우리 기자들에게는 매우 강렬한 경험입니다. 1단계 취재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2단계에서 반전 만족을 얻는 경우도 있고, 1단계 취재가 아주 잘 되었어도 2단계 마감 단계에서 극한의 고통과 자기혐오를 느끼는 때도 있습니다. 

3단계는 이제 이 기사가 ‘나만의 기사’가 아닐 때 맛보게 되는 감정입니다. 1·2단계의 희노애락을 뒤로 하고 기사를 이제 품에서 떠나보낼 때가 옵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일단 인쇄되어 지면에 박히고, 인터넷에 송출되어 독자들에게 가닿고 나면 또 새로운 기쁨과 슬픔과 성취감과 좌절감이 찾아옵니다. 이때는 기자 개인의 능력과 노력 정도에 상관없는 변수들도 많이 작용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어떻게 급변했는지, 어떤 독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이걸 읽었는지, 온라인에서 이 기사가 얼마나 흥하거나 망했는지 등에 따라 기자들이 겪는 감정이 달라집니다. 취재하고 마감할 땐 ‘우리 엄마만 읽어주겠네’ 지레 포기했던 기사가 의외로 대박(!)이 터져 온갖 곳에서 회자되면 기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일단 기분이 좋습니다. 반대로 잔뜩 기대를 하고 내보낸 기사가 아무 반향도 피드백도 없이 조용히 묻히면 기자들도 땅으로 꺼진 기분을 느끼고요. 

꼭 ‘많이 읽히고 회자되는 것’만이 기쁨을 주는 건 아닙니다. 소수의 독자라도 내가 의도했던 바대로 읽어주고 작은 목소리로나마 응원과 감사의 인사를 건넬 때, 이 기사가 계기가 되어 타매체나 기관 등에서 더 좋은 보도나 캠페인 등을 시작했을 때, 기사를 통해 어떤 네트워크나 연대가 이어졌을 때 기자들은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저도 일을 하며 가장 기뻤던 경험 중 하나가, 제 기사를 읽고 누군가와 누군가가 연결이 될 때입니다. 같은 문제에 대해 절박하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저희 기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닿게 될 때 말입니다. 

이렇게, 매주 숨차고 경이로운 3단계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저희 시사IN 기자들은 성장하고 단련해나가고 있습니다. 가끔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취재와 기사 마감과 이후 반응들에 의해 냉탕과 온탕,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가며 맛보는 일은 매우 황홀하면서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그 고통마저 지나고 나면 알차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해요. 고통을 통해 스스로 좀 더 단단해졌을 테고, 독자님께도 기억에 남을 기사 하나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좀 더 많은 독자님이 구독을 해주시고, 후원도 해주시고, 구독을 또 연장하고, 후원을 또 해주시고...(흐흐 솔직한 내심입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쓰다 보니 엄청나게 말이 길어졌네요. 제가 이렇게 한번 입을 열면 잘 닫지를 못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 너무 감사드리고요. 매주 저희 기사를 읽으시면서 이 기자가 어떤 3단계 롤러코스터를 탔을지 한번씩 상상해보시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 이만 편지를 마칠게요. 늘 건강하시길요. 저희 기자들도 건강히, 용감히, 재밌게, 멋지게 기사 써내고 있겠습니다!


             2023년 2월
변진경 드림
시사IN editor@sisain.co.kr
04506 서울시 중구 중림로 27
가톨릭출판사빌딩 3층 (주)참언론
TEL : 02-3700-3200 / FAX : 02-3700-3299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