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경기자 #읽는당신 #북클럽

[주말에 뭐 읽지]  2021-02-18 #44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가난을 모욕하는 이들에게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창비 펴냄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일에 더 이상 윤리도 도덕도 들이대지 못하게 된 시대에 〈몽실 언니〉를 다시 읽었다. 나와 남을 구별 짓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정책과 집단에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거지’라는 말을 여러 가지 단어에 조합해보는 일이 무슨 놀이나 유행처럼 돼버린 나라에서 〈몽실 언니〉는 여전히 너무 슬프고 비참한 책이다.
 
주인공인 몽실이는 진정한 사전적 의미의 ‘거지’ 아이다. 전쟁통에 부모도 집도 잃었다. 동냥으로 얻은 쌀 한 줌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암죽을 만들어 갓난아기인 이복동생을 먹여 살렸다. 먹을 것과 몸 누일 곳을 찾아 30리 길을 절뚝절뚝 동생을 업고 왕복했다. 집이라 불리기 힘든 흙벽 더미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해 새우잠을 잤다.

몽실이의 가난과 불행은 몽실이의 잘못이 아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느냐 하겠지만, 소설 속 몽실이는 불쌍하다 여기면서 실제 주변의 빈자와 약자에게는 혐오의 눈길을 떳떳이 보내는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언제가 더 나쁜지 모르겠다. 밥 한 덩이 주지 않고 내쫓을망정 측은지심은 지녔던, 전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 나은 건지, 기초 수급 아동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내 세금을 축내는 것은 용인하지만 감히 내 동네에 함께 살고 내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는 일은 마치 구정물이 옷에 스미는 것처럼 기겁하는 지금이 더 나은 건지.

저자 권정생은 1984년 〈몽실 언니〉 초판본 서문에서 말했다. “몽실은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 아주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그것의 기원을 생각해보는 몽실이와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진 세상에서야 〈몽실 언니〉는 조금 덜 슬픈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아이 괴물 희생자
주원규 지음, 해리북스 펴냄

“우리는 거리의 아이들을 괴물인 양 바라다본다.”

어느 날 소설가인 저자는 검찰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마약 관련 혐의로 붙잡힌 열일곱살 소녀가 성매매 당사자로 지목했다. 8시간 조사 끝에 근거 없는 무고로 밝혀졌다. 소녀는 거리에서 만난 아이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저자는 2011년부터 쉼터와 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강간당한 재희, 학대받은 강이, 일어났더니 홀로 남겨진 푸른, 동반 자살을 당할 뻔한 혜주, ‘대치동 프로그램’으로 조련받다 가출한 우등생 나영, 방치된 건혁. 가해자가 모두 부모라는 게 공통점이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도움을 주고 싶었다. 오히려 도움을 받는 쪽은 자신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섯 아이 이야기를 아이, 괴물, 희생자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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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몸
박선영·유지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씹으면서 괴로워진다.”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에는 진행자가 따로 없다. 매회 한 여성이 등장해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록산 게이의 〈헝거〉에서 영감을 받았다. ‘커다란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은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는 몸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SNS에 낭독을 해보고싶다는 글을 남겼고, 박선영 CBS PD가 오디오북을 제안했다. 100명 넘는 여성들이 〈헝거〉의 일부를 낭독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하는 오디오 다큐멘터리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중 88명의 기록을 책 두 권으로 묶었다. 마이크 앞에 선 여성들이 질병·우울·출산·성폭력· 다이어트·탈코르셋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째서 몸이 지독히 개인적이며 사회적인지 각각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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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기원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과학과 인문학은 창의성을 낳는 동일한 뇌 과정에서 기원한 것.”

저자는 인간의 창의성을 키메라(그리스 신화에서 머리가 셋 달리고 불을 토하는 괴물)적 특성으로 파악한다. 수십만 년 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뇌와 신체,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감정, 중세에 형성된 관습을 모두 갖춘 존재가 현재 인간의 모습이자 창의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창의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이해이다. 우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역사적 궤적을 결정할지 이해하는 것. 따라서 인문학과 과학이야말로 창의성의 쌍두마차로 본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게 과학이라면, 인문학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창의성을 계발하고 확장하려면 인문학과 과학이 손잡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
야마구치 슈·구스노키 겐 지음, 김윤경 옮김, 리더스북 펴냄

“일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걸까?”

한 국내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업 절반이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출퇴근 대신 ‘줌’을 켰다 끄고 메신저로 소통하면서 업무 효율성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일을 능률적으로 하는 것과 업무의 질이 높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저자의 말이 가깝게 다가온다.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두 저자가 넷플릭스, 어도비, 레고 등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통해 일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한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다. 즉각 분석하고 싶어하는 사람, ‘할 일 목록’부터 만드는 사람이다. 반대로 ‘일잘러’의 특징은 큰 그림을 그릴 줄 안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건 기술(skill)이 아니라 감각(sen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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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찍는' 시대에 '읽고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시사IN>과 동네책방이 손잡고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전국 30곳 책방 가운데  당신만의 친구책방을 찾아보세요. 책을 통해 세상이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준비했습니다. 

  • ① 북클럽 시작 전 함께 읽을 책 3권(아래 사진)을 원하는 곳으로 배달받습니다.
  • ② ①의 책을 내가 선택한 동네책방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습니다.
  • ③ <시사IN>이 매월 주최하는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합니다.
  • ④ 북클럽을 완주하고 수료증을 받습니다(요청 시).

💥 천관율 기자의 오픈특강에서 저자 직강 북토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읽는 당신×북클럽 페이지를 참조하세요.


이번호 뉴스레터에 실린 <몽실 언니> 추천 기사를 쓴 변진경 기자는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동학대 문제[‘살아남은’ 아이들을 외면하는 사회]나 아이들이 제대로 밥을 못 먹는 문제[먹어도 먹는 게 아닌 ‘아동 흙밥 보고서’]에 그 누구보다 분노하면서도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촉구하는 기사를 꾸준히 써왔죠✍️.
 
팬데믹으로 인한 1년간의 교육 공백이 아이들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추적한 <시사IN> 700호 커버스토리[1년의 교육 공백, 100년의 빚]를 쓴 것도 변기자였습니다. 이 기사는 최근 무료로 공개됐으니 <시사IN> 독자가 아니라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TMI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기회에 잠깐 설명드리자면 <시사IN> 최신호 기사는 유료 독자에게만 공개됩니다. 유료 독자야말로 독립언론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기 때문이죠. 다만 최신호가 발행되고 1~3주가 지나면 이 기사들은 홈페이지, SNS, 포털 등에 무료로 순차 공개됩니다. 경제적 형편에 관계없이 <시사IN>이 다루는 뉴스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보접근권 또한 <시사IN>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니까요😊).
 
이 기사에 따르면, 현재 초중고 연령대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손실 때문에 평생 동안 3%가량 소득이 낮아질 것이라 하더군요(OECD 추정). 전쟁, 자연재난 등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 특히 그중에서도 취약계층 아이들은 어른이 된 뒤로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갈 가능성이 높았다는 건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문득 <시사IN>과 동네책방이 준비중인 읽는 당신×북클럽에서 읽게 될 책 <가난의 문법>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는 폐지 줍는 여성 노인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장기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45년생 윤영자’ 씨도 등장하죠(폐지 줍는 노인들의 평균값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물입니다). 아마도 ‘몽실 언니’가 2021년도에 살아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었던 거죠.
 
이번 북클럽에 참여하는 좋은 날의 책방(경기 성남) 박윤희 대표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책 모임에서 가난을 주제로 얘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런데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난에 대한 경험이나 감수성이 크게 달라서 놀랐다”라고요.  3월 시작되는 북클럽에서는 이런 얘기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가난뿐 아니라 공정, 불평등 같은 조금은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서도요. 세대나 성별, 사는 지역에 따라 감수성이 좀 다르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타인의 불행 앞에서 그것의 기원을 생각해보려는 노력일테니까요. 북클럽 참여가 어려운 독자들도 책 읽기📚로 함께 응원해주시길요.

"'읽음'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라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네요."
"코로나19로 고립감이 심했는데 북클럽을 알게 돼 정말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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