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 기자 #전염병_역사 #동네책방

시사IN북 뉴스레터 #14

"팬데믹은 방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크게는 인류 문명의 기원, 성장, 멸망에 관한 대서사이다." 장대익 교수(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경향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누구나 이같은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중세 농노제도와 교회권력이 무너지고, 19세기 콜레라가 세계를 휩쓸면서 새로운 국제 협력 시스템이 등장했다고 하니까요.

이번 팬데믹 또한 인류 문명에 뭔가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올 것이라는 게 모두의 공통된 예감인 듯합니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한 우리가 미래를 적확하게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시사IN> 인기 연재물인 '주간 코로나' 마지막 대담에서 김승섭 교수(<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더군요. 
"코로나19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거나, 혹은 다른 전염병이 우리를 찾아와 그것과 함께 계속해서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까." 

포기할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개인에게도, 인류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들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데 소개해 드리는 책들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mage by Pixabay


 유발 하라리에 밀도와 깊이 더하면


윌리엄 맥닐 지음/김우영 옮김
이산 펴냄  

 
요즘은 대형 서점마다 바이러스와 감염병 코너가 따로 있다. 묻혀 있던 훌륭한 책들도 절판 위기를 넘기고 다시 읽힌다. 역사가 윌리엄 맥닐이 쓴 〈전염병의 세계사〉도 그런 책이다. 전염병은 역사학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배경이나 무대장치에 더 가까웠다. 무대장치에 탐닉하는 관객이란 아무래도 좀 낯설다. 맥닐은 아주 독특한 역사가다. 그는 하늘에 떠 있는 ‘새의 눈’으로 역사를 다룬다. 맥닐의 관심사는 인류사에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게 보여주는 인류사의 구조와 패턴이다.

맥닐이 보기에 인류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기생하려는 두 전략의 역사였다. 그는 이걸 ‘거시기생’‘미시기생’이라고 불렀다. 거시기생이란 세금을 걷어가고 노역을 시키고 때로는 약탈하는 힘, 그러니까 무력을 쥔 지배자들이다. 그리고 미시기생이란 인류를 배양처 삼는 기생충과 바이러스 같은 미시생물이다. 전염병은 역사의 무대장치가 아니라 역사를 결정하는 힘이다. 맥닐은 거시기생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전쟁의 세계사〉도 썼다.

이 간단한 개념 틀로 인류사 전체를 종횡무진하는 솜씨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우리 시대의 슈퍼스타가 떠오른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가이면서도 개별 역사보다 구조와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맥닐의 후계자다. 차이도 있다. 하라리의 책은 구조와 패턴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구체적인 역사는 잠깐씩 논거로만 등장한다. 맥닐은 자신이 지목하는 구조와 패턴이 정말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러 실제 역사로 뛰어든다. 

그래서 그의 책은 ‘새의 눈’으로 역사 전체를 조망하다가도,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급강하하여 현기증 나도록 세밀하게 역사를 파고든다. 유발 하라리에서 가독성과 비약을 덜어내고 밀도와 깊이를 더하면, 그게 윌리엄 맥닐이다.

천관율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서점의 말들 
윤성근 지음, 유유출판사 펴냄  

“서점은 지금 바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의 보물창고다.”  

그냥 책방도 망해가는 시기에 헌책방을, 그것도 14년째 운영해온 저자의 열한 번째 책이다. 서점이라는 기묘한 공간을 놓고 동서양 작가들이 남긴 문장 100편을 골라 주석을 달았다. 
〈시사IN〉이 요즘 동네책방과 함께하는 ‘책 읽는 독앤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느끼는 바이지만,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오토 A. 뵈머)’는 곳이면서 ‘주민들의 거실이나 서재 같은(우치다 요코)’ 곳. 저자 말마따나 ‘그곳만은 언제나 나를 위한 장소일 거라는 믿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작고 가볍지만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서점 예찬 에세이. 책방 손님으로 등장하는 G, N, K가 누구인지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 자세히 보기 >>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퇴거 통보 딱지는 노란색이었다. 쪽방촌 잿빛 건물들과는 상반되는 색깔이다. 저자는 “이 세계가 쫓겨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언급한다. 〈한겨레〉 이문영 기자는 5년간 강제퇴거 당한 주민 45명의 이주 경로를 추적했다. 이들 중 66%가 직선거리 100m 안에서 이사했다. 100m 밖으로 이사한 사람들 중에는 무연고 납골묘에 안치되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가난의 경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점점 더 고립되어간다. “가난의 뿌리는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이끈 길들과 그 길을 찌르는 뾰족한 돌멩이들 틈에 박혀 있다.” 강제퇴거 그 후를 쫓은 탐사보도를 통해 한국 사회 가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 지음, 어크로스 펴냄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장래희망은 나이 먹는다고 해소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되고 싶은 게 자꾸만 많아진다. 물론 어린 시절과는 결이 다르다. 그때 장래희망은 곧 직업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책 제목인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야말로 내 장래희망 중 하나다. 낯선 어른이 되고 싶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더라고, 말이 아니라 생으로 증명하는. 
책에 대한 책만큼 재밌는 ‘장르’가 또 있을까. 타인의 내밀한 서재를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저자의 감상에 내 생각을 겹쳐보기도 하고, 모르는 책 이야기가 나오면 샘도 낸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몰랐던 그림책 여럿을 새로 알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저자의 은근하고 다정한 ‘영업’에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동녘라이프 펴냄  
 
“당신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당신 정신이 하는 일이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닮았다. 두 증상 모두 공허하고, 아무 의욕이 없으며 고독감을 동반한다. 그러나 출발점은 다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계산된 비관주의가 영향을 미치는 반면 번아웃에 걸린 사람은 완벽주의 성향 때문일 수 있다. 
독일의 정신요법 의사인 저자는 환자를 직접 치료하며 알게 된 뇌과학에 관한 통찰과 치료법들을 공유한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원인이 다르니 해결 방법도 다르다. 인간관계, 생활습관부터 섭취하는 음식까지 정신건강과 어떻게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울증과 번아웃이, 몸이 보내는 일종의 ‘비상경보기’라고 이 책은 말한다. 삶에 깃든 무기력증을 쉽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동네책방에서  '불금' 맞기  

전국의 동네책방 70곳이 공동 진행하는 심야책방 시작일이 일주일 늦춰졌다는군요. 물리적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되면서인데요😢

인문학 특강, 책방 주인과의 북토크, 시 낭송, 웹툰 그리기 등 동네책방만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 조심스럽게 준비한 이들 프로그램이 이번엔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시대의 '불금'🌜을 책방에서 맞아보고 싶은 분들은 미리 가까운 동네책방을 찾아 참가를 신청해 보세요(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행사 일정이 다시 변동될 수 있으니 동네책방에 꼭 미리 확인하세요). 

심야책방 일정:6월19일 / 6월26일 / 7월10일 / 7월31일  

<시사IN>과 책 읽는 독앤독🐶(독립언론×독립서점)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친구책방🏡이 32곳으로 늘어났어요(드디어 제주에도 친구책방이 생겼답니다 😊)

다양한 독서모임과 북클럽을 운영중인 친구책방이 많으니 클릭해 확인해 보세요(위👆에 소개한 심야책방도요).  [주말에 뭐 읽지]에 소개된 책📚과 <시사IN>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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