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보내고 쉽게 받는 택배, 그 뒤에는

이번 심야편지에서 소개하는 책을, 지난 토요일에 끝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역시 만화책이 좋네요. 금세 주인공에게 몰입해서 함께 짐을 옮기느라 뻐근한 기분이 들었어요.
택배 기다릴 때의 간절함과 뜯을 때의 즐거움만 알았지, 누군가가 부단히 나르고 움직이고 있단 걸 자주 잊습니다. 작가가 불안정한 노동 조건 속에서 직접 몸으로 겪고 땀 흘리며 쓰고 그렸기 때문일까요. 대사 하나, 장면 하나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택배는 나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어릴 때부터 늘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고 나는 그 속에 만화를 그렸다."(101쪽)

- 🤓 에디터 H

쉽게 보내고 쉽게 받는 택배, 그 뒤에는 무엇이 있나?
— 보이지 않는 ‘택배 노동’을 다룬 이종철의 만화 <까대기>


성상민

<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 이종철 글, 그림 | 보리 
학교에서 역사 시간을 배울 때,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있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운송’의 발전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물건을 잘 만들어도,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세금을 아무리 징수해도, 그득히 모은 세금이 제대로 정부에게 도착하지 않는 이상 그 세금은 결코 국가의 것이 될 수 없다. 예로부터 ‘운송’은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동시에 택배는 사람들에게도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매우 소중한 도구이기도 하다. 옛날이었다면 일일이 양손에 들고 힘들게 옮기거나,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옮겼어야 할 무거운 짐들을 이젠 클릭이나 터치 한 번이면 보내고 받을 수 있다. 워낙 택배 업체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최근에는 무려 ‘반값택배’나 ‘당일배송’을 넘어선 ‘새벽배송’ 같은 택배 서비스가 출몰하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땀을 뻘뻘 흘리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내가 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땀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군가가 남이 흘려야 할 땀을 대신 흘리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보낸 물건을 수월하게 주고받기 위하여,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힘겹게 노동을 한다. 이종철 작가의 두 번째 장편 만화 <까대기>는 바로 그간 쉽게 눈으로 보이지 않았던 ‘택배 노동’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일종의 ‘르포 만화’이자, 택배 노동을 통해서 삶을 힘겹게 버텨나가는 사람들을 다룬 ‘리얼리즘 만화’이다.

<까대기>, 10쪽
작가가 몸소 경험한 ‘까대기’의 현장, 만화가 되다

이종철 작가는 경상북도 포항의 어촌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자라면서 서서히 만화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만화가가 되기 위하여 미술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포항은 아무리 큰 도시지만, 만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동네이다. 그렇다고 딱히 대학교에서 만화를 직접적으로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청년은 결국 무작정 만화가가 되기 위하여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에 살던 선배의 집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그리고 생계를 위하여 무려 6년간 만화 작업과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택배 노동을 하는 도중, 다행히도 작가는 그토록 원하던 만화가의 꿈을 달성했다. 보리출판사가 매월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작품을 연재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첫 장편 만화이자, 자신이 어렸을 적 보고 자란 바닷가의 풍광을 원없이 그린 <바다 아이 창대>를 선보였다. 비록 작품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작가는 그래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을 처음으로 그렸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넉넉지 않은 원고료만 받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는 데뷔를 한 이후로도 최근까지도 계속 택배 아르바이트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까대기>는 이렇게 작가가 몸으로 몸소 체험하고 느낀 노동과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만화로 담아낸 시도이다. 택배 노동을 경험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택배 노동의 현실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동시에 택배 노동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빚어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전달한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이 무작정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오고, 돈을 벌기 위해 택배 노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청년’ 예술가의 심정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기본적으로는 한국 택배 노동의 실상을 그리는 ‘르포’적인 성격의 만화이지만, 동시에 택배 노동 현장을 오고가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야기까지 함께 다루는 ‘에세이’로서의 만화가 된다.

쉴 틈 없이 오고 가는 택배, 그 현장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사람들

작가 자신을 형상화한 주인공 캐릭터 ‘이바다’는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큰 생각 없이 택배 아르바이트에 지원한다. 주 6일에 월급 80만원. 대학을 졸업한 이후 ‘만화가 지망생’에 불과했던 청년 주인공에게는 결코 적지 않는 돈이다. 월세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대학 등록금을 위해 빌린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남는 시간에는 만화를 그릴 수 있겠다는 막연한 다짐으로 무작정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다음 날, 주인공은 바로 본격적으로 고된 노동에 투입되었다. 온갖 무거운 짐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택배 트럭에 올리고, 다시 빠른 속도로 택배 트럭에 실린 짐들을 내리는 ‘상하차 아르바이트’의 서막이 올라간 것이다.

별다른 휴식 시간도 없이, 정신없는 속도로 택배가 오고 간다. 그리고 택배가 오가는 속도만큼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이 주인공을 그야말로 스쳐 지나간다.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오랜 시간 택배 노동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너무나도 고되고 힘든 노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금을 넉넉히 챙겨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오랜 시간 택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만화가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주인공처럼 저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택배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나 인연을 쌓게 된 ‘우 아저씨’가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을지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던 우 아저씨는 순식간에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며 졸지에 택배 노동자가 되었다. 젊은 나이에 택배 노동에 뛰어든 주인공이 안타까워 보였던 것일까. 우 아저씨는 큰 준비 없이 무작정 택배 노동을 경험하게 된 주인공을 위해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때로는 힘든 주인공을 위한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우 아저씨는 말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러나 주인공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 아저씨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이었다는 듯,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한다.

어디 그뿐일까. 대학생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택배 노동에 뛰어든 사람,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함께 택배 노동에 뛰어든 부부, 바다 건너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 돈을 벌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중년 가장…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택배 노동 현장에 왔다가 다시 사라진다. 주인공 역시 그런 사라짐에 익숙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것

필자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에게 <까대기>에서 등장하는 택배 노동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경하다. 택배 노동자가 아닌 이들에게 택배의 모습은 ‘택배 배송 현황표’나 ‘택배 기사’를 넘지 못한다. 약속된 배송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초조해하거나 기분이 나빠진다. 때로는 택배가 정상적으로 도착하지 않는 것에 택배 기사에게 항의를 한다. 하지만 시민들 대다수는 택배 배송 현황 뒤편, 택배가 정상적으로 도착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많은 노동과 고통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까대기>는 택배 노동을 스쳐 지나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택배 노동의 열악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앞서 언급했던 ‘반값택배’ 같이, 수많은 택배 회사들은 최대한 고객을 늘리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택배 수수료는 외국에 비하면 지나치게 싼 상황에서, 수수료 인하 경쟁은 결국 택배 노동자들에게는 고스란히 저임금으로 되돌아온다. 노동 환경 개선에 지극히도 무관심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배송 속도 경쟁은 곧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업무 강도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렇듯 쉽게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 택배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면서도, 진솔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작업을 거쳐 철저히 베일 속 그늘에 가려진 택배 노동에는 서서히 빛이 드리워진다.

모든 편리함에는 결국 대가가 있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 플라스틱이 결국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처럼, 택배 역시 그렇다. 우리가 물건을 편하게 보내고 받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안전과 생계를 위협받으며 고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와 같은 청년을 비롯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한다. 이종철은 생계를 위해 택배 노동에 뛰어들었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자신의 만화로 이어내며 세상에 택배 노동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 작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다시 보이게, 들리지 않았던 것을 들리게 하는 작업. 그렇게 <까대기>는 무거운 노동 르포를 넘어, 개인의 삶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성상민 | 2006년부터 만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대한 평론과 리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ACT!, 한국독립영화협회,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에서 활동 중입니다. http://brunch.co.kr/@skyjet
오글리의 별책부록

📦 아침엔 까대기, 오후엔 만화가
만화를 그리기 위해 서울에 왔고, 생계를 잇기 위해 까대기를 시작한 이종철 작가. 그는 만화를 통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대요. 시스템이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하면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며, 불합리한 일에 용기를 내서 항의하라는 바람을 전합니다. (인터뷰 보러 가기)
🌘 그림자 같은 사람들
'모든 편리함에는 결국 대가가 있다.’는 말이 쓰게 읽히는 건,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편리함의 뒤편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그린 작품을 소개합니다. 
* 작품 제목을 클릭하면 네이버 영화 예고편 및 네이버 책 정보 링크로 연결됩니다.
<그림자들의 섬> | 부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이기도 합니다. 부푼 꿈을 안고 ‘조선소맨’이 되었지만 처절한 환경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그림자 같은 사람들. 그들이 목소리를 냈던 이유, 절망을 견뎌낸 세월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 돼지 농장, 비닐하우스, 편의점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한승태 작가의 책입니다. 조지 오웰이 5년 동안 노숙자, 부랑인 등으로 살며 쓴 책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해요. 2007년부터 전국 각지를 떠돌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워킹 푸어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 😉 별책지기 J
오늘의 리뷰어, 성상민 님의 취향문답
**** 리뷰어의 취향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

📚좋아하는 책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흥미롭고 매혹적인 구성, 진솔한 이야기, 흥미로운 소재가 담긴 책이면 가리지 않고 챙겨 봅니다.

📙책을 읽는 장소
침대에서 누워서 보기도 하고,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서, 아니면 사자마자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책이 손에 집히면 어디서나 읽습니다.

🛌 지금 내 침대 맡에 놓여있는 책
소영현 외 12인 공저의 문학 비평집 <#문학은_위험하다> (민음사), 류승희 작가의 만화 <그녀들의 방> (보리), 이현주 작가의 시애틀 동네서점 탐방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유유)

📎선호하는 영화 장르 혹은 느낌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액션, 호러 가리지 않고 챙겨봅니다. 조금은 뻔할 지라도 최대한 흥미롭게 전달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했던 소재를 발굴하여 재치있게 드러내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 이 감독 영화면 꼭 본다
극영화에서는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 코엔 형제, 홍상수, 다큐멘터리에서는 이강현과 김일란, 정윤석, 애니메이션에서는 장형윤과 안재훈, 유아사 마사아키.

🧠기억에 남는 영화
극영화에서는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다큐멘터리에서는 정윤석의 <논픽션 다이어리>, 애니메이션에서는 장형윤의 <무림일검의 사생활>.

💗 아끼는 뮤지션
최근 새 앨범이 나온 허클베리 핀과 브로콜리 너마저, '하찌와 애리'에서 시작해 솔로 앨범을 낸 애리, 그리고 자우림과 ADOY. 해외로 영역을 넓히면 Spitz나 쿠루리.

💡노래방 18번 
주주클럽 - 나는 나, 브로콜리 너마저 -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자우림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내 마음속 음원차트 1위 곡
브로콜리 너마저와 자우림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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