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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10-07 #74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연합뉴스


모든 대선주자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조지프 피시킨 지음 / 유강은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공정과 능력주의를 둘러싼 담론에 피로감이 들 정도다. 이제는 좀, 앞으로 뭘 해야 할지를 두고 논쟁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 옳다’ 따위의 공정 담론에 진보 진영이 ‘지금의 기회도 평등하지 않다’라는 수세적인 방어만 반복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논의가 불가능하다. 일단은 저 ‘기회의 평등’이 어떤 의미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도돌이표 같은 한국 사회의 공정 담론에 ‘죽비’가 되어줄 책이 〈병목사회〉다. 미국 법철학자인 저자는 모든 사람의 발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는 이론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가족이 존재하고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방식을 획일적으로 규제할 수 없는 한, 그리고 개인이 태어나 맞닥뜨리는 모든 사건과 우연의 차이를 통제할 수 없는 한 그렇다. 그래도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있지 않으냐고? “우리의 출생 환경을 비롯한 세계가 우리에게 제공한 기회에 의해 중재되지 않은 ‘타고난’ 재능이나 노력 같은 것은 없다.”

저자는 “누가 사람들이 바라는 희소한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넘어서 애초에 왜 기회가 희소한가를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교적 자격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저마다 괜찮은 삶을 축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회구조의 다원화가 필요하다. 좁은 ‘병목’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생애 모든 단계에서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더 많아져야 한다. 나아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달라야 한다.

중소기업에 들어갔더라도 숙련을 인정받아 더 높은 단계로 ‘점프’할 수 있다면 어떨까?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트랙을 만들 수 없을까? 고졸 취업, 광주형 일자리, 직무급을 기회구조 측면에서 보면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모든 대선주자가 읽었으면 좋겠다. ㅣ전혜원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지음, 동아시아 펴냄
“남성 치료사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어렵게 털어놓았을 여자들을 생각한다.”

우울증을 겪는 20대 동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쩐지 부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리 아파 보이지 않는 이들이 쉽게 힘든 상황을 피하고 주위의 돌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유병률이 높은 질병이 현대 의학 안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받지 못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고통이 있다. 작가는 이 고통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책을 썼다. 이 정도는 다 겪는 일이라며 내 고통을 마주하지 못해 타인의 고통도 의심하는 것 아닐까?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책 자세히 보기 >>>

57번 버스
대슈카 슬레이터 지음, 김충선 옮김, 돌베개 펴냄
“사샤는 치마를 입었을 뿐이다.”




책의 첫 장에 작은 글씨로 쓰인 ‘일러두기’에 먼저 시선이 간다. “이 이야기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각종 인터뷰와 문서, 편지, 영상, 일기, 소셜미디어 게시물, 공적 기록물 등에서 하나둘 모아 취합했습니다. (중략) 사건의 중심인물인 리처드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에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철자를 자주 틀립니다. 우리말로 옮길 때도 리처드의 편지나 대화문에 나오는 오탈자 및 문법 오류를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2013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가로지르는 57번 버스에서 한 흑인 소년이 백인 에이젠더 학생이 입고 있는 치마에 불을 붙였다’는, 단순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을 3년 동안 취재했다. 책 자세히 보기 >>>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지음, 민음사 펴냄
“주식의 세계에서 개인투자자는 수익률의 꼬리표로서 존재한다.”



20대 여성인 저자의 인류학 석사논문을 책으로 재가공했다. 연구자인 저자는 2018년 가을, 50대 남성 전업 투자자들이 모여 있는 ‘주식매매방’에 들어가 이들의 삶을 참여관찰했다. 주식매매방이란 개인투자자가 모이는 일종의 공유 오피스다. 이곳에서 만난 중년 남성 개인투자자의 생애와 주식거래 경험, 이들의 반복적인 일상을 관찰·연구하며 우리가 흔히 ‘개미’라고 부르는 개인투자자의 모습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개인투자자의 실패를 분석하는 초반부도 재미있지만, 매매방이라는 공간이 중년 남성들에게 어떤 사회적 매개체가 되는지 분석한 후반부가 특히 흥미롭다. 책 자세히 보기 >>>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블랙피쉬 펴냄
“헌법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거 배제된 사람들에게 권리와 보호를 부여한 과정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이 책은 지난해 사망한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주요 판결문과 의견서를 모았다.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으로 분류한 재판 13개를 다뤘다. 특히 임신과 관련된 판결이 눈에 띈다. 1972년 ‘스트럭 대 국방부’ 사건에서 그는 “임신은 여성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의료적 상황과 유사하므로, 그와 같이 취급하지 않을 합리적 근거가 없다”라고 적었다. 촘촘하고 합리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의견을 개진해 나간다. 웬만한 한국 법원 판결문보다 더 가독성이 높아 읽기 어렵지 않다. 긴즈버그 ‘사상’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 책 자세히 보기 >>>

책 만드는 사람들

책방 문을 열면 누군가가 와서 책을 사는데 그 당연한 일이 책방의 환희이다. 가끔 레벨 2의 환희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날도 있다. 햇수로 6년 가까이 책방을 운영했는데 그런 날이 아주 드물게 있어서 일기장에 적어둔다

ex. 2021년 1월20일. 손님 0명. 판매 제로. 재수 없는 날이네.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기를.
'내가 지금 이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조바심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는 '짤'이 있습니다. 최강창민씨가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나왔을 때 장면입니다. 그는 일본어 공부를 위해 책상에 앉으며 혼잣말처럼 "많이 하지 말고 조금만 하자"라고 말합니다. '유사짤(?)'로는 김연아씨의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가 있습니다. '연습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죠. 도쿄 올림픽 이후에는 농구 대표팀 전주원 감독이 작전타임 시간에 선수들에게 해주던 이야기도 종종 찾아봅니다. "저 10점 아무 것도 아니야. 5분 안에 5점 따라가고, 그다음에 따라붙으면 돼. 그렇게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나와야 되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최근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엠넷의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인데요, 여성 백업 댄서들이 나와 경연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공감성 수치'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좀체 못 보는 저는, 어쩐지 이 프로그램은 줄줄 울면서 보고 있답니다. 한 번도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는 이들이지만, 제 삶에 있어서는 분명한 주인공인 '멋진 언니(멋있으면 다 언니)'들이 무더기로 나오거든요. 각 크루를 이끌고 있는 다양한 여성 리더십을 볼 수 있는 건 이 프로그램의 또다른 묘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고, 그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면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또 어떤가요. 끼니를 든든히 챙겨먹고, 다정한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구름과 바람이 만드는 계절의 표정을 살피는 일을 그 어떤 목표보다 앞 순위에 두고 싶습니다. 정치가 할 일은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어야 하겠지요. 좋은 삶을 위해서라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 없는 요즘입니다. 

  •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는 자료와 데이터, 다각도에서 이뤄지는 분석을 통해 문제제기와 인식 전환의 필요성까지 역설해내는 멋진 기획 기사." 
  • "아이들이 '민식이법 놀이'를 한다는둥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애들 탓하는 '어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 "시사IN 기획기사 눌렀다. 돈부리 혼자 먹다가 별안간 우는 사람 됨." 
  • "민식이법 놀이가 유행해서 운전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뉴스가 나올 때, 시사인에서는 전국의 스쿨존을 다니면서 도로사정과 어린이들의 동선을 파악했다. 둘 다 뉴스가 하는 일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기꺼이 돈을 내고 보고 싶은 뉴스, 세상의 변화에 좀 더 기여하는 뉴스는 아무래도 후자다." 

<시사IN>이 4개월간 준비한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에 호평이 이어집니다. 믿을 만한 언론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시사IN>의 독자가 되어주세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저널리즘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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