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끝, 이제 거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타이밍에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으시겠죠. 하지만 정확히 올해가 71일 남았으니까, 매일 새로운 단어를 외우기로 한다고 해도 70개의 새로운 단어를 배울 수 있고, 매일 책 한권을 읽겠다고 하면 71권을 읽을 수 있는, 생각보다 긴 시간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사실 지금은 좀 춥죠...그래도 아직 영하는 아니니까...) 햇살이 길게 기울어 황금빛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마는 이 계절만큼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금빛 덕분이라도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고야 마는 계절이니까요. 

예전에는 무언가를 배울 때 단순히 지식을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결국 어떤 마음가짐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꽃을 바라보고 다루는 마음가짐. 꽃 하나하나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배우므로서 실제로 꽃을 다루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무를 사려고 마트에 갔더니, 실한 무들이 많았어요. 상처도 없고 매끈하네~ 하면서 무를 하나 골라 신나게 계산대로 가는데, 할인코너에 가니까 990원짜리 작고 오래된 무가 있지 않겠어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지난 늙은 호박을 아직도 먹고 있는 가련한 1인가구의 입장에서...) '바람이 들고* 좀 오래된 무지만, 작으니까 저걸 사면 두어번만에 다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중요한 고민처럼 두 무를 두고 계속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조직이 단단해야 무밥이 맛있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할인코너의 990원짜리 무를 내려두고 실하고 통통한 친구를 품에 안고 집으로 왔습니다. 가을 무~ 햇 무~하고 흥얼거리면서 돌아왔네요. 그리고 남은 무는...어떻게든 열심히 먹을 수 있겠죠....황태해장국 끓여야겠다...ㅎ

뜸을 잘 들여서 남은 밥이 차분히 내려앉으면, 드디어 밥을 먹을 시간이죠. 뜸이 드는 사이에 밥에 곁들일 양념장을 만들어두었어요. 지난 봄에 달래를 다져서 간장에 절여놓았는데, 그 달래를 꺼내고 들기름과 물을 섞어서 은은한 향의 양념장을 완성했고, 김치도 꺼내서 락앤락 통에 넣었어요. 상을 차리고 뚜껑을 열었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무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날 해가 너무 좋아서 부러 냄비 째 베란다로 들고 나가 사진을 찍었어요 😂 투명하게 익은 무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밥을 만나볼 시간. 주걱으로 밥을 잘 뒤섞으면서 보니 정말 쌀에 윤기가 윤기가 ✨✨✨ 누가 참기름이라도 발라놓은 양 알알이 윤기가 흐르고, 고소하고 달곰한 향이 났습니다. 빨리 먹고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밥을 떴어요. 

저는 사실 무를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서걱거리는 식감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었거든요. 무밥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몇 년 전 무밥을 집에서 해보고는 무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됐어요. 이 계절에 친구들이 집에 오면 잘 해주는 메뉴이기도 하고요. 실제로는 꽤 간단한데도 정성이 들어간 (것 같은) 티가 나는 음식이라 여러모로 참 좋은 가을 무 솥밥입니다.  

오늘은 앞 내용이 길었으니까! 술은 호다닥 소개해볼게요. 제가 올해의 쌀로 선택한 백진주쌀로 만든 막걸리가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한아양조의 탁주, 일곱쌀, 아홉쌀, 그리고 열두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