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이야기
OUTSIGHT Newsletter #1.3
✉  목차
  • Editor's Note
  • Insight 우리 모두는 기록하는 인간, 호모 아키비스트
  • Outsight 펀자이씨툰 엄유진 작가 인터뷰
  • Curation 특별 큐레이션! 에디터가 직접 해봤다

 ✏ EDITOR'S NOTE

잠깐의 휴식 시간에 가볍게 읽어내린 인스타툰 하나로 마음이 찌르르해진 적이 있으신가요? 짧은 컷 안에 담긴 대화, 그 속에 발견하게 되는 재치와 따듯함은 내 일상을 위로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정신없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나를 향한 위로, 그리고 나의 하루도 특별하다는 것을 누가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했는지 모릅니다. 지친 하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를 위로해 준, 웃게 해준 것들이 있잖아요. OUTSIGHT와 처음 만난 주제, [이야기의 힘]의 마지막 시선입니다. 우리 각자의 일상은 특별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삶에 반짝이는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사소한 것도 좋아요! 😉 

익숙한 주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우리 모두는 기록하는 인간, 호모 아키비스트 
우리를 설명하는 많은 용어들이 있어요. 본능적으로 이야기하는 존재라는 뜻의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호모 아키비스트(Homo Archivist)'. 일기를 열심히 써서 티비에 나왔다는 한 배우의 말도 기억납니다. 단지 내가 좋아서 한 기록인데, 하다 보니 남들이 먼저 찾아 준다고요. 맞아요. 우리는 나에 대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이야기하고 기록하길 좋아하는 존재랍니다. 

나의 일상을 처음 기록했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아마 그림 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방학 일기였겠죠? 어릴 땐 그렇게 일기 쓰는 것이 싫더니, 크고 나서는 내가 나서서 일기장을 사고 그날 하루 있었던 일, 나의 기분, 내 생각들을 적었어요. 일기를 안쓰면 안될 것 같은 기분도 괜히 들고요. 그리고 하나 더! 청소하다가 발견한 나의 옛 일기장을 펼치는 순간 그날 청소는 물 건너 가버리게 된다는 것. 

인류의 역사는 곧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입니다. 오늘 ''님의 하루, 그 이야기는 어떤 기록으로 채우고 싶나요? 
(출처: 기록자가 된 보통 사람들, 호모 아키비스트의 시대, 기록인 (2018) / 호모 아키비스트(Homo Archivist) 기록하는 인간, M이코노미뉴스 (2016) / 타인이라는 가능성, 윌 버킹엄 지음/어크로스)
당신의 일상에 새로운 영감이 되어줄 외부의 시선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는, 펀자이씨툰 엄유진 작가

OUTSIGHT의 첫 번째 뉴스레터인 “이야기의 힘”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펀자이씨툰’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하는 엄유진 작가님의 시선을 전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발견’하는 반짝이는 ‘순간’들. 나의 일상에 환경적인, 혹은 물리적인 변화도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내지만, 그것(나의 일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나의 시선은 어떤가요? 평범한 일상의 특별한 주인이 되어 흘러가는 시간 속 소중한 순간들을 담아내는 펀자이씨툰과 엄유진 작가님의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우리 모두의 일상은 특별하고 소중하다고요! ✨

  
Q. 안녕하세요! 먼저 펀자이씨툰과 엄유진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일상을 기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반갑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엄유진입니다. 지금은 출판 작업 일들과 병행하며 인스타그램에 일상툰인 ‘펀자이씨툰’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열두 살 무렵,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떠나 일 년간 생활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친구를 사귀는 것도, 책이나 티비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죠. 하루는 아버지께서 줄이 그어진 빈 노트 위에 매직펜으로 반듯하게 일기장이라고 적어 건네주셨습니다. 보지 않을 것이니 자유롭게 글을 써보라고 하셨지요. 그 어느 때보다 따분했던 시기에 시작된 이 일상의 기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저의 취미생활이 되었어요.

 

처음엔 두 줄, 그다음엔 다섯 줄, 별다른 사건 없는 내용들이 반복해서 채워졌습니다. 적당한 어휘를 찾기 어려우면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 넣거나 사진을 오려 붙였습니다. 주변에 한글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일기장을 종종 들춰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제가 일기장의 첫 번째 독자가 된 셈인데, 다시 읽어보면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기록을 다시 읽게 될 저에게 조금 더 재미있는 내용을 남겨주고 싶어졌어요.

Q. 일상 기록의 첫 시작은 일기였군요. 펀자이씨툰은 나만 보는 일기장에서 타인들에게 공유하는 일기장이 된 것 같아요!

네, 연출과 표현의 재미를 알아가면서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이 즐거워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웃었던 부분에서 함께 웃거나 피드백을 남겨주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어요.

 

시간이 흐른 후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면, 어둡고 불행했던 시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소하게 즐거웠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했고, 즐겁고 신났던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괴롭고 울적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반복해서 쓰고 읽으면서 인생은 초점 맞추기 Focusing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촬영은 별다른 노력 없이 도구의 힘으로 현실 그대로를 찍어내는 것 같지만, 사진 찍는 일이나 그림 그리는 일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풋이 들어오면 자기 방식대로 아웃풋을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과 배경을 나누고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지요. 간단한 예로, 인물을 세워놓고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정면에서 사진을 찍으면 우리가 잘 아는 인물 사진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나무 위나 바닥에 놓고 찍어보면 어떨까요? 피사체를 엄청나게 크게 확대하거나 작게 축소해서 찍어볼 수도 있겠죠. 그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같은 장면을 전혀 다른 시선과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생은 초점 맞추기의 연속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아요. 또 다르게는 내가 나의 인생의 어떤 점에 집중하고 있느냐는 말 같기도 해요. 나는 내 삶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확대하기도, 그 외의 것은 축소하고 있는지 생각해봐도 좋겠는데요?

Q. 펀자이씨툰에 대한 질문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한 에피소드를 선정하고, 짧은 한 컷에 담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고르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펀자이씨툰 에피소드의 선정 기준은, 재미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순간적으로 빛났던 상황들을 포착하여 리스트에 적어두고, 그 중 다시 읽기 즐거울 것 같은 소재들을 택해서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열 장이라는 장수 제한과 연필이라는 간소한 재료 도구는, 표현의 제약이 되기도 했지만 이야기 전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설명이 부족하고 그림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 늘 사과의 말과 함께 에피소드를 게시했었어요. 그런데 연재가 거듭되고 돌아오는 피드백들을 보면서, 문장이 간결할수록 전달력이 높아지기도 하고 그림이 단순해질수록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려다 보니 글만으로도 어렵고 그림만으로도 어렵지만, 글과 그림이 함께 할 때 표현이 풍부해지는 요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문장에 공을 들이고 그림을 열심히 그려도 공감대와 재미가 없다면 또 잘 읽히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독자들에게 전해질 이야기에 어떤 웃음과 메시지가 담길지 생각합니다. 주어진 분량 안에서 장면들을 어떻게 연결할지, 스토리 전개 속에서 어떤 반전을 줄지, 어떻게 펀자이씨툰만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표현할지 등도 고민합니다.

 

이야기가 복잡하게 느껴지면 열 개의 번호를 매긴 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 번호에 맞춰서 정리합니다. 머리에 떠올랐던 단어와 이미지들을 배치한 후 넣고 빼보면서 이야기를 한 호흡으로 읽어봅니다.


이야기는 유연합니다. 줄이고 늘리면서도 원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믿습니다.

🍋: 이건 팬심인데요.. 펀자이씨툰을 읽으면, 내가 직접 겪은 일상은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나의 삶의 경험에 빗대어 보게 되면서 나아가 위로를 받게 되요. 
Q. 그렇다면, 펀자이씨툰을 통해 작가님께서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그리는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는다면 제목은 ‘(가족끼리) 사이가 좋아도 괜찮아가 아닐까요? (웃음) 물론 건너편 베스트셀러 매대에 ‘(가족끼리) 사이가 나빠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책이 놓여있겠지만요. 어쩌면 사이가 나빠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이가 좋아지는 길의 첫걸음일지도 모르지요.

삶에는 균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특히 가족의 이름으로 묶인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특정한 역할과 이름으로 엮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애초 당위를 생각하면 좋아하기보다 미워하기가 더 쉬운 것이 관계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매인 관점에 익숙해서, 용서가 어려워서, 마음에 차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서로 힘들어하면서 한 세월을 보내는 관계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관계 맺음에도 익히고 발달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생각을 전제로 해서 조심스럽게나마 저의 방식대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함께 있는 사람과 사이가 나쁘면 좋은 환경 속에서도 지옥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었고, 좋은 관계가 하나라도 있다면 악몽 같은 상황 속에서도 버텨낼 힘이 생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사이가 좋은 것은 상대방이 완벽해서, 내 생활이 완벽해서, 또는 모든 조건이 ‘정상적’이고 어려움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부족한 서로가 기꺼이 어느 부분을 내어주고 어려움을 감안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길 위에서 소소한 행복들이 기회만 있으면 잡초처럼 생겨나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어요.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것이 이야기 속에서, 저도 알지 못했던 좋은 관계 맺기의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야기의 힘은 무엇인가요? 개인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이야기’라고 하면 어린 시절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아놓고 큰고모부가 들려주던 귀신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자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닌데도 몰입하면서 일희일비하던 아이들의 홀린 듯한 눈동자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 사이에 전해지는 무수한 정보 중에 이야기가 아닌 것이 있을까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들도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쉴 새 없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가지는 보편성 속에서, 한 개인의 이야기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가보지 못한 길을 바라보고 그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고 믿습니다.

🍋: 맞아요. 이야기의 힘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그리고 나아가 실제로 해보겠다라고 결심도 하게 만드는 것인거 같아요. 물론 생각과 시선을 확장시켜준다는 점도 빼놓을 순 없죠! 

Q.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남는다면, 어떤 이야기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단 하나의 이야기를 꼽으라면 서른 즈음에 영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를 꼽고 싶어요.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에 쥔 것들을 놓고 용기를 냈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틀기 시작한 후엔 선택과 변화가 주체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자유롭게 여행하며 자연과 가까워졌던 기억도 좋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개성있는 사람들과 만났던 이야기들에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또 저 자신에게 즉흥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해요. 제가 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들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해보려는 용기도 생겼어요. 저에게 주어졌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지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가치관들이 지금의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안정된 일상을 두고 멀리 떠나는 이야기, 그리고 변화한 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의 특별한 주인이 되는 이야기로 남고 싶습니다. 

🍋 EDITOR 하영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일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소중한 순간들을 글이든, 사진이든 계속 남겨뒀다가 꺼내봐야겠어요. 
💎EDITOR 화진 '시작을 선택한다는 것'의 중요성에 크게 공감했어요. 아름다운 끝과 멋진 시작으로 내 삶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EDITOR 승영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부분을 내어주고 있는가, 어려움을 감안해줄 준비와 표현을 하고 있는가 다시 되짚어 봐야 할 것 같아요.
OUTSIGHT의 특별 큐레이션! 에디터가 직접 해봤다.

에디터가 직접 펀자이씨툰 작가님처럼 하루를 그려보았어요. 
(아니 적어봤어요. 그림은 못 그립니다..)
나만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복돋아주는 1호 <이야기의 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OUTSIGHT의 뉴스레터가 어떠셨나요? 소중한 피드백을 남겨주시면, 앞으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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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새로운 주제의 뉴스레터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켜주는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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