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십분의일'에는 10명의 사장이 있다

이현우
와인바 십분의일 대표
나답게 살기 위한 퇴사, 그 후
저는 원래 드라마회사에서 드라마 PD로 2년간 일하던 직장인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입사했는데, 막상 일해 보니 제가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이더라고요.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막상 취직하여 일해 볼 때까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몰랐던 거죠. 그러던 차에 현장에서 교통사고가 나 입원한 것을 계기로 퇴직했습니다.
막상 퇴사를 했더니 아쉬운점이 있었어요. 취향이 비슷한 직장 동료들과의 소통, 그들과의 일상, 소속감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일종의 외로움을 느꼈던 거죠. 그렇다고 해서 다시 회사에 돌아갈 수는 없으니, 우리만의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어요.

생계와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청년 아로파
이때 PD 지망생 스터디를 할 때 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습니다. 2012년 SBS에서 제작한 <최후의 제국>에는 남태평양의 '아누타' 섬이 나오는데, 한때 내전으로 인해 인구가 많이 줄었기에, 공존을 도모하기 위해 '아로파'라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로파'는 함께 잘 사는 것, 공생 등을 의미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우리가 비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팍팍하게 살고 있을지언정 우리끼리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 모임, 나아가 마을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만든 것이 '청년 아로파'입니다.

제2조 [목적]
   청년아로파는
   ①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생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한다.

저희가 상상한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회사생활에 지쳐서 퇴사하고 동네에서 빵집을 하고 싶을 때, 공동체의 모두가 SNS 마케팅, 사진 촬영 등 각자의 재능으로 돕고 돈도 같이 모으는 거죠. 다 같이 힘을 모아 그 사람의 꿈을 위해 함께 굴러가는 형태요. 요즘 얘기하는 '협동조합'과 비슷한 형태지만, 자기 소득의 10%, 정기적인 소득이 없다면 5~10만 원의 회비를 납부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창업하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공동체를 만든다고 생각했기에 규칙을 만들었고, 소득의 10%를 내는 것도 일종의 세금 형식으로 제도화한 것입니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당장 제대로 실현하기도 어렵고 먹고살 공간이 있어야 하니 가게를 운영하기로 했어요. 자본도, 기술도 없으니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캐주얼바가 괜찮겠더군요. 청년 아로파 멤버들 다 함께 1년 동안 장소를 찾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서, 우여곡절 끝에 을지로에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2016년 12월에 와인바 '십분의일'이 처음으로 오픈했는데,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어서 6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영업 이익이 났어요. 2018년 4월 바로 옆에 '빈집 비어있는 집'이라는 2호점을 만들고, 2019년 5월에는 시즌2와 노량진 와인바 '밑술'을, 같은해 9월에는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긴 여유로 2020년 5월에는 드디어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영상 작업을 시작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개인
조직은 자리 잘 잡고 뻗어나가고 있는데, 저 개인은 여전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미숙함과 어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10명이 동업하는 형태다 보니 실무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부정적인 감정들도 몰려왔고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책 출간으로도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내 경험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개인이' 주목받는 시대에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개인'이란 키워드가 주목받은 지는 꽤 되었고, 코로나19로 인한 거대한 전환점에서 더더욱 강조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결국 모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모여서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요.
청년 아로파 활동을 하는 모든 멤버가 결국 다 함께 잘 살고 싶어서 참여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가족, 학교, 직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데, 기왕이면 '잘 사는 법'을 배우면 좋지 않을까요? 제가 청년 아로파의 친구들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우리만의 울타리를 만든 것처럼, 여러분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울타리를 고민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실시간 댓글 질문 10명의 운영자분들이 이끌어가는 공동체, 이상적으로 와닿지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다 함께 지속하기'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과정을 자세히 듣고 싶어요.
발제자 답변     매번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별히 소개해 드릴 만한 해결책이 없네요. 무임승차 문제는 어느 조직에나 발생하는 일입니다. 일이 10개가 있을 때 한 사람에게 하나씩 정확히 배분하기도 어렵거니와, 저희처럼 갓 형성된 조직은 체계가 덜 잡혀 있다 보니 분업 과정에서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고요. 그 현상을 너무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되, 문제가 심각하다면 대화를 통해 풀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겠죠. 교과서 같은 이야기로 들리시겠지만요. 다행히 저희는 아직 10명이고, 시즌2까지 해 봐야 20명인 작은 조직이기에 아직까지는 이 방법이 가능한 듯합니다.
💬현장 추가 질문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를 때에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와인바인 만큼 접객 스타일이 달라서 서로 부딪힐 수도 있겠고요.
발제자 답변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달라서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것을 서로 통일하려 하기보다 서로의 취향으로 존중해 나가다 보면 그 갈등조차 나름의 추억이 됩니다. 업무 효율을 따졌을 때에는 좋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저마다 가진 방식에서 나름의 가치를 찾는 게 멀리 봤을 때 공동체를 위해 더 좋은 방식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