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독립언론' <시사IN>의 자존심입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사회팀 주하은입니다



사회팀 막내 기자의 제1 업무는 그 어디든 ‘사건 현장’에 가는 것입니다. 별다른 취재 계획이 서지 않더라도 사건이 벌어지면 일단 현장에 가서 상황을 살핍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대개는 공치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막내의 특권으로 꾸준히 현장에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건’은 누군가의 사망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가 유명을 달리한 현장에, 그 희생자의 가족들이 있는 빈소에 찾아가곤 합니다. 독자님께 쓰는 편지를 준비하며 올해 제가 찾아간 사망사고 현장의 수를 세어봤습니다. 총 아홉군데 현장을 찾아갔더군요. 사망자 수를 합치면 172분이나 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 수의 큰 부분은 158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태원 참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10월29일 이후 이태원 참사를 취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저의 ‘현장’은 유족들이 계신 모든 장소입니다. 유족들이 가시는 기자회견에, 국정조사 현장조사에, 그리고 녹사평역 인근 합동분향소에 매일같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참사 직후에는 유족들께서 서로를 만나기 어려웠던 만큼 저 또한 유족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마땅히 방법이 없어 이태원 1번출구 옆 참사가 벌어진 골목에 며칠이고 서 있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유족께서 그곳에 오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다 실제로 유족을 우연히 만나 뵙기도 했습니다.  

‘울부짖다’라는 단어를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살면서 글로도, 말로도 써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그렇게 평생 써본 적 없던 단어가, 유족을 뵙는 순간 제 머리 속을 관통했습니다. 11월21일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해밀톤 호텔 골목에 도착한 중년 남성은 누군가가 붙여 놓은 딸의 사진을 보고 그대로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울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소리였습니다. 마치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인간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어색해지는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동물에게 쓰는 ‘짖다’라는 말이 붙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울부짖다’라는 단어가 아니고선 표현 불가능한 소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저 사람은 유족이다’ 확신했습니다. 며칠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죠. 그런데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말이라도 꺼내는 것 자체가 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좁은 골목, 무릎 꿇고 울부짖는 남성의 뒤에 오래도록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 울부짖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명함을 쥐었다 놓았다 반복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보면 악플이 자주 보입니다. 세월호 때 달렸던 악플들을 학습하기나 한 듯 그때와 똑같이 “이제 그만하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날 제가 들었던 울부짖음을 직접 들었다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아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 그 울부짖음을 충실히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플을 쉽게 달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든 유족이 이태원 골목에서 마주친 중년 남성처럼 울부짖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찌 슬픔의 크기가 작기 때문일까요. 두 달가량이 지난 현재, 울다 지쳐 더 이상 큰 소리로 울부짖을 기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일은 들리지 않는 그 울부짖음까지 충실히 독자들께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제가 겪었던 침묵의 순간이 여러분께도 찾아오겠지요. 그리고 알게 될 것입니다. 동료 시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의 뒤에 서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오직 겸허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듣는 것뿐이란 것을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태원 참사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시사IN> 독자들은 위와 같은 악플을 현재 달고 계시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도 언젠가 지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공유하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그 자체로도 힘드니까요. 그러나 여러분들께 인내심을 가져주시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제 부족한 기사 뒤에 있을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장일호 기자의 책 <슬픔의 방문>을 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사수는 단독 기사의 의미를 몇 번이고 다시 짚어 줬다. 제일 처음 쓰는 것도 의미있지만, 마지막까지 쓰는 것도 단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저 또한 여러 번, 여러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실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계속 취재해보고자 합니다. 함부로 내뱉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다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가치를 잘 알고 격려해주시는 선배와 동료들이 있기에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 오래 이어질 길을 2023년 새해에도 독자님이 함께 걸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2년 12월
주하은 드림



🗞️ 주하은 기자의 기사들

  • "죽은 아이는 변명도 못 하는데..." 이태원 참사는 모든 시민에게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 상흔이 가장 깊고 오래 남은 이들은 유족과 생존자들이겠죠. 참사 당일, 그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고 이주영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 모두가 잘못 알고 있던 두 청년의 죽음 올해 8월경 광주광역시에서 홀로서기 중이던 청년 두 명이 연달아 삶을 저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그들의 사망 원인을 쉽게 '가난'으로 단정지었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면밀히 살펴본 그들의 흔적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 복지 시스템이 받아든 성적표이기도 합니다. 

  • 홀로 전신주에 올라 감전되고 떨어지고 전신주는 어디에나 있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쉬이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그 전신주를 매일같이 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6m의 아찔한 높이는 누군가의 생과 사를 가르기도 합니다. 마치 전신주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들의 노동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변진경, 전혜원, 이명익 기자가 함께 쓴 '화물차를 쉬게 하라' 기사가 제387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자님의 후원과 애정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기사입니다.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정치왜그래 지난 6개월 부족함 많은 방송을 애정어린 눈길로 함께 봐주셔서 큰 격려와 응원이 되었습니다. 2023년 1월 첫 주는 쉬고, 1월10일(화) 저녁 7시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 

청소년에게 2023 행동도구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사회문제는 개인이 극복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막막합니다.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일상 속에서 ‘내가 행동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일은 모두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시사IN〉이 청소년 독자 및 동아리, 모임 등에 '오늘의행동 2023 행동 도구'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지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모임 소개) 및 연락처를 기재해 1월20일(금)까지 book@sisain.kr로 보내주세요. 별도의 양식은 없으며, 선정된 분에게는 1월27일(금) 개별 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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