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둘러싼 PC 논쟁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Zoe입니다.


여러분 혹시 어렸을 때 ⟪디즈니 만화동산⟫ 다들 보셨나요? 주말 아침마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놓칠까봐 설레면서 일어났던 기억이 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어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 같은 클래식한 공주 시리즈부터, ⟪헤라클레스⟫나 ⟪정글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화영화들을 매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어쩌면 그 만화영화들이 조금씩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의 정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디즈니는 어째서인지 꿈과 희망 대신, 다양한 '논란'에 휩싸이는 이른바 트러블메이커로 더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인어공주⟫ 때문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영화 ⟪인어공주⟫를 둘러싸고 그동안 수없이 대두되었던 이슈들과 함께, 콘텐츠사업자로써 디즈니의 미래에 대해 다뤄봅니다. 

👋 오늘의 에디터 : Zoe
저는 사실... 에리얼보단 자스민 파👀
오늘의 이야기
1. 흑인 '인어공주', 정말 괜찮을까?
2.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불편한 이유
3. 다양성과 예술성은 독립 변수다? 

흑인 '인어공주', 정말 괜찮을까?

4년간 디즈니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이자, '아픈 손가락'이었던 영화 ⟪인어공주⟫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8일, 미국 LA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를 통해 일부 매체와 평론가들에게 작품이 공개되었습니다. 1989년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화한 이 작품은 최근 디즈니가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실사(live-action) 영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인어공주 공식 포스터 (출처: 디즈니)
놀라운 것은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 직후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언론에 따르면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평론가 중 다수가 여주인공 할리 베일리를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 펠리시아는 "할리 베일리는 에리얼 그 자체였다"고 말했고, 영화 평론가 케시아 우즈 역시 "⟪인어공주⟫는 큰 꿈을 꾸는 모든 어린 소녀들을 위한 찬사다, 할리 베일리는 마법 같다"고 칭찬하는 등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간의 평가가 놀랍게 느껴지는 건, 그동안 여주인공 할리 베일리와 영화 ⟪인어공주⟫를 둘러싸고 수없이 많은 논란이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1989년 개봉했던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 에리얼이 '빨간 머리에 흰 피부, 파란 눈'을 가진 백인으로 그려졌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가 실사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존의 팬들은 제일 먼저 '빨간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배우가 캐스팅되기를 원했죠. 그 결과는, 팬들의 예상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지난 2019년 흑인이자 신예 배우인 할리 베일리가 그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트위터는 '#notmyariel(내 아리엘이 아니야)' 해시태그로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죠. 그 이후 약 4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이 영화에 대한 비난과 우려가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해 9월 디즈니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인어공주 티저영상은 공개 2일 만에 100만 개가 넘는 ‘싫어요’가 달리기도 했습니다. 
(왼쪽) 할리 베일리 (오른쪽) 원작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출처: The Express Tribune)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기존 캐릭터의 설정을 바꾸는 건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화팬들에게 사랑받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DC 유니버스에서도 흔하게 생겨나고 있는 일들인데요. 마블의 경우 헤임달, 발키리, 에인션트 원, 닉 퓨리, 정복자 캉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별, 인종, 종족 등을 기존 원작 설정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있죠.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들어 디즈니 시리즈에서도 이런 원작 설정을 비트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개봉 첫 주 월드와이드 2억 1,400만 불을 벌어들이며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둔 ⟪알라딘⟫ 역시 영화 속 캐릭터를 변주했다가 개봉 전 역풍을 맞았습니다. 실사영화 제작 당시 지니 캐스팅이 문제가 되었던 건데요. 백인인 로빈 윌리엄스에서 흑인 배우 윌 스미스로 캐스팅이 바뀌면서, 원작과 다른 이미지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막상 개봉 이후에는 윌 스미스의 지니가 혼자서 영화를 '하드캐리'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여론이 180도 바뀌기도 했죠. 

그런데 유독, ⟪인어공주⟫에게만 이렇게 오랫동안, 박한 평가가 이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 기저에는 굉장히 다양한 원인이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이유로만 말할 수 없는, 굉장히 복합적인 원인 말이죠. 
LA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 참석한 할리 베일리. (출처: 연합/APF)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불편한 이유

디즈니의 이런 캐스팅이 불편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이유는 '원작에 대한 훼손'일 겁니다.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 그려지는 ⟪인어공주⟫ 속 주인공과의 괴리감에 대한 호소가 가장 크게 들리고 있죠. 


한편 어떤 사람들은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PC'라는 약어로 쉽게 불리기도 하는 'PC 운동'은 인종과 성별, 종교, 성적지향, 장애, 직업 등과 관련해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특정 단어 또는 특정 표현이 인종, 성별, 종교 등 어떤 계층에게 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면 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거죠.


최초에는 특정 계층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PC라는 말이 인종·성·장애·종교·직업에서의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동을 풍자할 때 사용되는 경우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단어 자체의 최초 뜻과는 달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용례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최근 온라인상에서 사용될 때 더욱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죠. 

포스터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의 80%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바로 그 영화죠. (출처: 영화 "블랙 팬서")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주인공 캐스팅을 둘러싸고 인종차별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어 왔다는 사실은 여러분 모두 이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화이트 워싱'에 대해 살짝 다루었던 지난 레터에서도 언급했듯, 원작에서 유색인종이었던 캐릭터들이 실사화되는 과정에서 백인으로 둔갑하는 경우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건 할리우드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티베트인인 에인션트 원 역할을 굳이 백인인 틸다 스윈튼이 연기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했죠.


이런 인종차별 이슈를 완화하기 위해, 최근 넷플릭스나 디즈니 등 대형 프랜차이즈 미디어 회사들이 앞다퉈 '다양성 확보'에 뛰어들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꽤 오랫동안 찬사를 받기도 했죠. 흑인 캐릭터들이 메인 주인공부터 빌런까지 모든 주요 캐릭터를 독점한 ⟪블랙 팬서⟫, 주체적인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알라딘⟫ 등의 시도들은 분명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으니까요. 그리고 그 영화들이 작품성까지 훌륭한 영화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왔던 게 사실입니다.

80~90년대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6명의 오리지널 프린세스. (출처: 디즈니)

그동안 디즈니는 이른바 '오리지널 프린세스'라고 불리는 주요 공주들(백설공주, 신데렐라, 오로라, 에리얼, 벨, 자스민)을 중심으로,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성격까지 착한 미녀가 왕자와의 진정한 사랑을 통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디즈니 세계관'을 계속 고수해 왔습니다. 아름답고 착하지만, 그들을 위기로부터 구출해 줄 '왕자'를 기다리는 전통적인 미녀를 그려내는 디즈니의 세계관은 변화된 시대적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계속해서 받아왔죠.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디즈니가 선택한 게 바로 '정치적 올바름'을 작품 속에서 추구하는 방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거대 자본인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시장 트렌드'임을 캐치했던 거죠. 다만 이들의 최근 행보가 이슈가 되고 있다는 건, 다양성을 추구하는 디즈니의 행보가 정말 순수한 목적에서인지, 혹은 기존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대한 비판을 면피하고자 하는 기계적인 적용인지에 대해 검토해볼 때가 왔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디즈니의 PC주의가 질타를 받기 시작한 건 아마 이때부터가 아니었을까요? (출처: 영화 "뮬란")

⟪인어공주⟫에 대한 역풍이 유독 거센 건 어쩌면 대중이 원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단순히 여주인공의 인종을 바꾸는 게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혐오'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하는데요(정제호, 콘텐츠문화학회, 2021). 작품 속의 맥락과 무관하게 캐릭터의 특정 요소를 바꿀 때 대중은 차별에 대한 반대를 읽은 것이 아니라, 상업주의에 영합하는 콘텐츠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만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주인공의 인종을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디즈니가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고, 여전히 '백마 탄 왕자' 역할은 백인 남성이 맡았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이번 캐스팅이 맥락 속에서 충분한 설득력이 있는 캐스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또한 ⟪인어공주⟫ 속에서 에리얼은 인간이 된 이후 인간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글자와 언어를 배우고 식사예절을 배우는 등의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지금 캐스팅된 배우들이 이 장면을 연기한다면, 흑인(인어공주)이 백인 사회(백인 왕자의 왕국)를 동경한 나머지 기존의 자기 집단을 버리고 백인(왕자)에게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장면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위험 역시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했던 선택이 너무나도 선택적으로 적용된 나머지,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상황에 봉착한 거죠. 

다양성과 예술성은 독립 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나마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노력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나마 다양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기존의 잘못된 '화이트 워싱'과 같은 관습을 타파하기 어렵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콘텐츠의 작품성과 퀄리티를 가져가면서, 작품 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한편 오락성까지 가져갈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찰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문화콘텐츠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다룬 한송희, 이효민의 논문에서는 '다양성'과 '예술성'은 양립해야 할 요소이지, '예술성'이 그 우위에 있는 요소가 아니라고 언급했습니다(언론과 사회, 2020). 다양성을 추구했다고 해서 미학적으로 뛰어난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윤리적 감수성을 소거하는 대신 미학적 성취를 달성한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 역시 의미가 없는 행위라는 겁니다. 대중 담론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때로 영화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주된 요인으로 치부되지만, 사실 이들은 종속 변수가 아니라 독립 변수로 존재한다는 거죠.

그래서 과연, 이 영화, 어떨까요? (출처: 디즈니)

다시 말해, 영화가 추구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의 방향성에 대해 동의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영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에 대한 논의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이후가 되어야 우리는 이 작품이 정말로 원작을 훼손했는지, 아니면 원작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는지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영화관으로 가서 이 영화를 보고 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뚜껑을 열고 실체를 본 사람들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CG 기술의 미흡함에 대한 불편함에 대해 불만을 더 많이 토로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던 건 아닐까?' 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올 정도로, 북미 평단의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누누이 말한 대로, 그야말로 예상치 못했던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할리 베일리의 목소리를 조금 엿볼 수 있는 캐릭터 클립. (출처: 월트디즈니픽쳐스 유튜브)
혹자는 에리얼의 정체성은 '목소리'에 있는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배우라면 피부색이나 종교를 떠나 누구나 '에리얼'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배우가 캐스팅된 이유가 단순히 '노래를 잘 하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짧은 클립 속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 할리 베일리의 목소리는 일단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역할은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오는 5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영화가 과연 대중에게도 찬사를 받을 수 있을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사랑한 만큼 대중도 이 영화를 사랑해 줄지, 저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귀추를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지켜봐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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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Zoe>의 코멘트

앞서 말씀드린 여주인공 캐스팅 논란과 별개로, 국내 개봉작 중 더빙판에 뉴진스 멤버인 다니엘이 참여해서 또 다른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연기력 논란도 물론 있습니다만) 티저 영상 속 다니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다시듣기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일단 OST는 확실히 성공할 각이네요. 이쯤되면 디즈니는 그냥, 노이즈 마케팅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거 아닐까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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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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