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열아홉 번째 흄세레터
님은 흄세를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혹시 흄세의 ✨표지✨에 사로잡혀 책을 집어 들지는 않으셨나요? 아름답기로 소문난 흄세 표지! 시즌 2의 표지 이미지는 시즌 1에 비해 수월하게 정해진 편인데요, 특히 《도즈워스》의 표지는 작품을 찾은 디자이너도, 편집자 흄&세도 "이거 완전 《도즈워스》를 위해 그려진 것 같은데요?"라고 할 만큼 찰떡이었어요. 하지만 B안이 없었던 건 아닌데요, 지금 바로 B안을 공개합니다!
Aldo Balding의 〈Breeze〉라는 그림이에요. 자동차(도즈워스는 자동차 회사 사장이죠)+남녀+바닷가=《도즈워스》 그 자체죠?
(B안) 같은 작가의 다른 그림이에요. 어쩐지 쓸쓸하고 뒤숭숭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 주인공 '도즈워스'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도즈워스》는 분량이 꽤 되지만, 주말 드라마 뺨치는 줄거리 전개에 희화적인 문체 덕에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랍니다. 하지만 미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쉽고 재밌는 데서 그치지는 않았겠죠? 오늘 흄세레터에서는 정지돈 작가가 《도즈워스》를 먼저 읽고 쓴 리뷰를 보내드려요. 

여행은 미친 짓이다


주류 사회의 엘리트 백인 남성이 100년 전에 쓴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왜 읽어야 할까. ‘서울대 추천 세계문학 100선’ 같은 목록에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할 법하다. 볼 게 이렇게 많은 세상에, 매해 부커상, 전미도서상,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쏟아지고 새로운 젊은 작가들이 충격적인 데뷔작을 선보이는 와중에 싱클레어 루이스라니. 카프카, 프루스트면 또 몰라!


게다가 《도즈워스》는 전형적인 여성 혐오 구도에 기댄 중년 백인 남성의 넋두리로 비칠 수도 있지 않은가.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보자. 주인공인 샘 도즈워스는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다. 그의 아내 프랜은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여성이다. 프랜의 요구로 둘은 유럽 여행을 떠나지만 프랜은 유럽 남자들과 바람이 난다. 샘은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방황하고 이 과정에서 진실한 사랑인 사려 깊은 여성 이디스를 만난다.


《도즈워스》의 내용은 수없이 반복되고 변주된 문학사의 영원한 테마다. 변덕스러운 여성과 진중한 남성. 작가들은 시대나 취향, 이데올로기에 따라 여성을 허영심 많고 속물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진보적이고 독립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한쪽 편에 《위대한 개츠비》가 있으면 다른 쪽에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있는 셈이다. 어쩌면 리처드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나 존 치버의 단편소설 속 중산층 여성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여성 캐릭터의 폭이 큰 데 반해 남성 캐릭터는 대동소이하다. 그건 아마 위에서 예를 든 소설들이 모두 남자들이 쓴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즈워스》 역시 남성 작가의 작품이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남성이므로 논지를 계속 전개해보자. 이 구도에서 남자들은 용맹한 동시에 소심하다. 이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을 이루었고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 올랐으나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쩔쩔매는 순정파다. 게다가 본래의 영역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집 잃은 개처럼 꼬리를 만다. 자신이 이룬 성취가 한 줌 허상에 불과하며, 그 성취 없이는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즈워스》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싱클레어 루이스는 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 일상 세계에서 잠복해 있던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어떻게 가시화되고 역전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집요하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도즈워스》에서 여행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순례도 아니고 아늑한 시간을 위한 휴양도 아니며, 즐겁고 속된 관광도 아니다. 계급과 문화, 젠더가 뒤섞인 지정학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소설이 쓰인 100년 전보다 지금,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오늘날에 시사점을 던진다.


동양인 남성은 서구권에 가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데 반해, 동양인 여성은 인기가 많다는 속설을 생각해 보자. 이 속설은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이지만 동시에 한국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잘 포착한다. 샘은 백인이고 미국인이지만 어떤 면에서 지금의 한국 남성들과 동일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유럽과 미국의 가치를 비교하고 거칠고 투박하지만 성실한 신대륙의 남성성을 강조하며 유럽의 고상함에 반한 프랜을 비웃는다. 《도즈워스》는 표면적으로는 프랜에게 무시당하는 샘을 부각하는 듯 보이지만 프랜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건 오히려 샘이다. 프랜은 단지 샘의 취향을 문제 삼을 뿐이다. 반면 샘은 프랜을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지적이고 당당하지만, 자신의 재산에 기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애라고 말이다. 프랜이 독일의 귀족 쿠르트와 결혼을 결심한 건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백작부인이라는 칭호나 기분 좋은 사탕발림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도즈워스》를 면밀히 읽어보면 프랜과 샘의 캐릭터를 지금까지 알려진 성차별적인 전형성에서 뒤집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랜의 변덕과 욕망은 가부장제의 억압에 저항하는 진실의 색채를 띠고 있으며 샘의 성실함과 소심함은 지배욕과 속물성을 가리기 위한 위장에 불과하다. 익숙한 영토를 떠나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문화로 진입하는 일은 우리의 약점과 가능성, 어리석음과 용기, 이기심과 공포를 한꺼번에 드러낸다. 다시 말해, 진짜 여행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미친 짓이다. 싱클레어 루이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 소설을 읽는 우리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지돈 |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편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 장편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모든 것은 영원했다》, 《…스크롤!》, 산문집 《영화와 시》,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온 세상을 갖고 싶어!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되어 예쁘장한 모습으로 카드놀이나 하고 싶진 않아!
난 찬란한 걸 원해! 거대한 지평선들! 우리 함께 그런 걸 찾을 수 있을까?"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싱클레어 루이스의 숨은 명작이다. 국내 초역.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 도즈워스 부부의 여정을 생생하고 희화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끝없는 방황과 영원한 안착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인간의 두 가지 욕망을 동시에 실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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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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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이국의 사랑
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 김인순 옮김

007 그녀와 그

조르주 상드 | 조재룡 옮김

008 녹색의 장원

윌리엄 허드슨 | 김선형 옮김

009 폴과 비르지니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 김현준 옮김

010 도즈워스

싱클레어 루이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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