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수풀집에서 쓰고 보냅니다. (vol. 14)
오늘 편지는 수풀집에 찾아온 딱새 가족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딱새 가족을 발견한 건 제가 아니라 소망이예요. 소망이가 발견하고는 채터링을 했거든요. 채터링이 뭐냐면요. 고양이들이 사냥감을 보고 집중할 때 내는 울음소리예요. 보통 콧잔등을 파르르 떨며 울어요. 수풀집은 창문 여러 개가 마당과 처마를 향해 있어 소망이가 채터링할 일이 많아요. 그런데 지난 주는 유독 심하게 채터링을 하는 거예요. 저는 소망이를 끌어 안고 위로했어요. "소망아, 유리창이 있어서 너는 사냥을 할 수가 없어. 대신 누나가 낚시대 흔들어줄게." 하면서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안절부절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유난해서 소망이의 시선을 따라가봤죠.

창 밖에서는 참새만한 작은 새가 계속 마당과 처마를 오가고 있었어요. 입에 작은 벌레를 물고서요. 소망이의 심기가 불편할 만도 하죠. 그런데 그 새가 수풀집 처마 밑 둥지에 날아와 앉더라고요. 그 둥지에서는 노랗고 작은 부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아기 새였습니다. 수풀집 처마 밑에서 아기 새가 태어난 거예요. 다섯 마리나요.
사진 속 둥지는 제가 수풀집에 자리잡기 전부터 있었어요. 집을 고치기 시작했을 때, 주인 없는 둥지를 치울까 하다 '혹시'하며 그냥 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둥지에 진짜 새가 날아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있네요. 아기 새들은 어미 새가 물어온 벌레를 보고 일제히 입을 벌렸어요. 어미 새는 이번엔 누구 입에 넣어줘야할지 고민하다, 한 녀석의 입에 넣어주고는 푸드득 날아갔어요. 그리고 다시 벌레를 물고 돌아오기를 수 없이 반복했어요. 고된 육추의 세계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아기 새들이 얼마나 자랐을지 궁금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수풀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둥지가 텅 비어있네요. 딱새의 육추 기간은 2주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새 아기 새들이 자라 둥지를 떠났나봅니다. 건강히 자라 너른 자연 속으로 훌쩍 날아가기를 바랬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떠나간 딱새 가족을 생각하며 편지를 부칩니다.
계란꽃  
시골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뭘까요. 저는 망설임 없이 개망초라고 답할 것 같아요. 얼마나 흔하면 '개'자가 붙었겠어요. 빈 땅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자라나 꽃을 피웁니다. 잠시 한 눈을 팔았다하면 1미터가 넘게 쑥쑥 자라나고요. 땅 주인과 농부가 싫어하는 식물 랭킹을 만든다면, 부동의 상위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한참 시골집을 찾으러 다닐 때, 빈 집 마당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이 개망초거든요.

이렇게 시골에서는 미움을 받는 개망초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사랑스러운 꽃이자 풀입니다. 작은 얼굴이 계란후라이의 모양을 닮아 계란꽃이라고 불리는데요. 잔잔한 꽃이 얼마나 소박하고 예쁜지 몰라요. 게다가 이 꽃은 잘 말리면 차로 마실 수도 있고, 튀겨서 튀김으로도 먹을 수 있어요. 봄철에 여린 순은 나물로도 무쳐 먹을 수 있대요. 맛도 좋지만 항산화 효과, 진통 효과도 있고요. 이제 보니 앞에 '개'자를 붙이는게 미안할 정도로 엄청난 식물이네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개망초의 꽃말입니다. 자그마한 얼굴을 보려면 가까이 다가서야 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말간 얼굴로 행복을 주는 개망초. 제 모습을 딱 닮은 꽃말 아닌가요?
수풀집밥상 #오이냉국
지난 편지에 담아 보냈던 새끼손가락만한 오이, 기억하시나요? 너무 작아서 어디가 오인지 한참을 찾았다는 독자님의 답장을 받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정말 팔뚝만한 크기로 자랐습니다. 이 오이를 수확해서 오이냉국을 만들었어요. 수풀집 밥상 코너에 데려오긴 했지만, 사실 만드는 법이라고 소개할 만한 것도 없어요. 뚝딱 만들 수 있고, 불도 필요 없거든요.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 딱 좋은 메뉴라 소개해보아요. (이번 오이 사진에도 숨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미역을 불려 함께 넣으면 미역오이냉국으로도 즐길 수 있어요. 소면을 삶아 넣어 먹어도 좋고요. 너무 더워서 국을 끓이긴 싫은데 국물은 먹고픈 날, 추천합니다. 여름의 맛이예요.
  • 재료 : 오이 반개, 양파와 당근 조금(오이 양의 3분의 1 정도), 청양고추 1개, 마늘, 식초, 설탕, 국 간장, 얼음
  1. 오이, 양파, 당근은 채 썰어 준비해주세요. 오이를 너무 두껍게 썰면 간이 배지 않고, 너무 얇게 썰면 식감이 좋지 않으니 적당한 두께로요.
  2. 청양고추 1개를 작게 썰고, 마늘도 다져 반 숟가락 정도 준비합니다.
  3. 그릇에 물 2컵(400ml 정도)을 부은 후 식초 반 컵(50ml 정도)을 넣습니다. 그리고 간을 해요. 밥 숟가락 기준으로 설탕 2, 다진 마늘 0.5, 국간장 2 정도 넣으면 제 입맛에는 적당하더라고요. 취향에 따라 액젓을 조금 넣으셔도 좋아요. 저는 깔끔한 맛이 좋아 액젓은 생략했어요.
  4. 마지막으로 준비한 오이, 양파, 당근을 넣고 얼음을 동동 띄우면- 끝입니다. 
취미는 사랑  
무얼 하자고 하면 버릇처럼 '다음에, 다음에'라고 말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딱히 없지만, '별로'인 게 너무 많은 사람.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를 물으면 우물쭈물하는 사람. 예전의 저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주말마다 시골에 산 지 이제 3년 차가 되었습니다. 이 곳을 오가며 알게 된 것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다음이,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요. 그게 자연스러운 자연의 순리라는 것이요. 어느 날 저희 집 처마에 찾아왔다, 때가 되어 훌쩍 날아간 딱새 가족처럼요. 그래서 이제는 제 곁에 머무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하고 사랑해요. 다음이 없더라도 아쉽지 않도록요. 가장 좋아하는 게 무어냐는 질문에도 이제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습니다. 깊이 애정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진 덕분입니다. 

내내 비가 쏟아지더니 갑자기 한 쪽 하늘에서 햇빛이 비춥니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계절, 여름입니다.
벌써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여름가을 수풀집편지 제목은 좋아하는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 지난 주는 '여름 안에서', 이번 주는 '취미는 사랑'이예요. 다음 주는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며 편지를 보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풀집 편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편히 답장을 보내주세요.

2022년 7월, 비 갠 뒤 풀냄새를 맡으며
수풀사이로
suful41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