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을 찾아-미세먼지 해외견문록](2)“연무법으로 누군가 처벌받는다면 그건 싱가포르 사람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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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04. 오후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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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앨런 기진 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싱가포르가 2014년 자국 영토 바깥에서 일어나는 화재 관련자들을 처벌하겠다며 ‘월경성 연무 오염법’(이하 연무법)을 제정했다. 싱가포르로서는 ‘강수’를 둔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법에 의한 기소는 단 한 건도 없다.

지난달 13일 만난 앨런 기진 탄 싱가포르국립대(NUS) 교수(법학)는 이 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심각한 연무 문제가 발생해 연무법으로 첫 번째 처벌받는 사람은 싱가포르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우리 상황에 빗댄다면 미세먼지 피해를 입었을 때 산둥성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사람부터 처벌되는 셈이다. 이 법은 ‘우리 손이 닿는 곳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다음은 탄 교수와의 일문일답.

- 공기가 무척 깨끗하다.

“지난해와 올해는 문제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불어 줬기 때문이다. 개간을 위해 불을 지르는 일은 인도네시아의 숲과 산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떤 해에는 우리가 운이 좋았고 어떤 해에는 안 좋았던 것이다.”

- 아시안게임을 위해 인도네시아가 적극적으로 대기질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20년 간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열심히 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이전보다 훨씬 강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크고 복잡한 나라다. 자카르타(수도)는 때때로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아세안이라는 틀 안에서 연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아세안은 기본적으로 대화와 토론을 위한 기구다.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와는 달리 어떤 나라에도 뭔가를 강제할 힘이 없다. 2002년에 ‘아세안 월경성 연무오염에 관한 협정’이 만들어졌지만 의무적 분쟁 해결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모니터링하고 협력하자는 내용은 있지만 법정에 가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문제를 풀되 갈등은 피하려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이다. 그 결과 연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대화를 위한 체계는 갖추었다.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 싱가포르는 자체적으로 연무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완전히 효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면 싱가포르 법으로 인도네시아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무법에 따라 만약 인도네시아에 있는 어떤 기업이 화재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우리는 그 기업의 관리자들을 기소할 수 있다. 단, 그들이 싱가포르에 온다면(웃음). 이것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다.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 결국 오늘까지도 이 법에 의한 단 한 건의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다. 냉소적으로 보면 그냥 대중을 행복하게 한 것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풀지 못했다.”

- 인도네시아 정부의 반발이 만만찮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산불 책임론도 언급됐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회사들이 플랜테이션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입장은 우리가 그들을 싱가포르 법원에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싱가포르 기업과 국적자)을 기소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인도네시아 기업인보다 조사가 훨씬 쉽다. 만약 우리가 (연무법을 근거로) 누군가를 기소하게 된다면 아마 그건 싱가포르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싱가포르 기업과 연결고리가 있는 어떤 기업이나, 싱가포르에 자회사를 둔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결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우리에게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책임소재가 명확한데 연무 문제를 정부 간 국제소송으로 가져가는 방안도 검토된 적이 있나.

“불가능한 방법이다. 분쟁 당사국이 동의했을 때만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도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갈등을 고조시키면 상대방의 협력은 끌어낼 수가 없다.”

- 이제 싱가포르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나.

“정부는 추가적인 입법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 다음에 또 연무가 심해지면 우리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증거 찾기를 도와 달라고 해야 한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와 계속 협력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단기적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기적 해결책이라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는 것밖에 없다. 긍정적인 점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산불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 협력이 관건이란 뜻인가.

“정확히 그렇다. 한국과 중국 상황도 같을 것이라고 본다. 만약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데려가려 한다면 중국이 응하겠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지정학적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산불 문제로 영향을 받는 곳은 싱가포르만이 아니다. 여러 나라가 논의의 장에 들어오면 응답을 끌어내기 더 쉬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근거다. (한국의 미세먼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중국과 계속 협력을 해야 한다. 두 나라 과학자들이 같이 일을 하도록 하고 신뢰를 쌓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통의 의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오염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결국 당사국이니까.”

싱가포르 | 글·사진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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