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한 달이 넘도록 길어지면서, 세계 곳곳에 ‘먹고사는’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어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유럽의 빵 바구니’라고 불릴 만큼 세계 주요 곡창지대이기 때문인데요. 한국에서는 국수·만두·빵 등에 밀가루를 많이 쓰는 자영업자들이 밀가루 사 모으기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사무총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재앙 위에 재앙을 더했을 뿐"이라며 전쟁 전부터 이미 세계가 직면한 기후 위기는 심각한 수준으로, “현재 수준의 식량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어요.

사실 이번 전쟁 이전에도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흉작,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지구인의 주식인 곡물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더욱 많은 이들이 실감하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전 세계는 지금 얼마나 심각한 식량 재난 상황에 처해 있는 걸까요? 오늘 <지구엽서>와 함께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요🧐

미사일이 쏘아 올린 곡물 가격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곡물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에요. 특히나 밀은 전 세계 밀 3분의 1 이상인 약 35%가 이 지역에서 생산될 정도이죠🌾

세계 밀 수출 국가 순위

또한 보리는 약 25%, 해바라기유는 약 70%, 옥수수는 약 15%의 점유율 가지고 있는 등 세계 다양한 곡물의 생산과 수출을 담당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쟁 이후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곡물 운송도 전부 중단됐어요.

국제 곡물가격을 진단할 수 있는 기관인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지난 25일 기준 밀 선물의 가격은 t 당 405달러로 지난해 말(283.2달러)보다 43%나 올랐어요.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지난 14일 밀·호밀·보리·옥수수 수출을 6월 30일까지 금지하고, 백설탕과 원당 수출은 8월 31일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했어요. 당분간 러시아로 인한 곡물가격 변동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요.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세계적인 비료 수출 국가이기도 해요. 지난해 러시아는 비료 시장의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했는데요.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료 수출 또한 제한하고 있어요. 이는 결국 세계적으로 농업 생산량이 줄어들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죠.

실제로 지금 비료 가격이 크게 올라서 전 세계 농가들이 해결책을 수소문하고 있어요. 수입 비료 의존도가 큰 브라질은 농부들이 옥수수 경작량을 줄였고, 비료도 덜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거기다 세계 주요 곡물 수출 국가들이 하나둘 곡물 수출을 중단하기 시작했어요.

• 이집트🇪🇬 : 밀, 밀가루, 렌틸콩, 대두 등 곡물 수출 금지. 자국 내 비축
• 헝가리🇭🇺 : 모든 곡물 수출 중단
• 터키🇹🇷 : 곡물 수출에 대한 통제 강화
• 몰도바🇲🇩 : 3월부터 밀, 옥수수, 설탕 수출 일시적 중단

이외에도 아르헨티나·이집트·세르비아·불가리아 등 국가들이 자국민을 먹이는 게 먼저라는 판단으로 한시적인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죠.

더 큰 문제는 침공 사태로 우크라이나가 올해 봄 파종 시기를 놓치는 거예요.

레셴코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은 '올해 봄 작물 파종 면적이 지난해(1500만 ha)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든 700만 ha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어요. 또한 전쟁의 영향으로 지난겨울에 파종한 밀 수확 면적도 650만 ha에서 400만 ha로 줄었고요. 

우크라이나 국경 쪽 논밭에 세워진 장갑차

세계 1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의 농민들도 국제 사회로부터 금융 제재를 받으면서 타격을 받고 있어요.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고립돼 있기 때문에 곡물을 배송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식량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요.

또한 곡물은 인간이 가장 많이 접하는 밀가루 음식뿐만 아니라 가축을 기르는 곡물사료, 식물성 오일 등의 재료가 돼요. 따라서 곡물 가격은 생활물가와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지죠. 이로 인한 애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애그플레이션 : 곡물과 농산물 가격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야기하는 현상

재난은 더 가난한 곳으로 흘러

특히 러시아와 우르라이나 산 밀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들이 큰 타격을 입어요. 이들 지역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에 곡물 수입의 8~90%를 의존하고 있죠. 만성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선 기아가 심해질 것으로 예상돼요.

이미 이들 지역에서 주식으로 하는 빵 가격이 크게 올랐어요. 게다가 국제사회의 관심이 러시아의 침공에 쏠리면 취약 국가와 저소득층의 위기 상황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 수 있어 더욱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한편 2008년 밀가루 값 폭등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2010년 ‘아랍의 봄’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아랍 주요국 장기 독재자들이 줄줄이 축출된 ‘아랍의 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유례없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곡물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자 러시아 정부가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촉발됐었는데요. 식량난을 호소하던 민중 봉기가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졌었죠.

이라크에서는 이미 시위가 벌어졌어요. 남부 도시 나시리야와 중부 바빌 주에서 밀가루 등 식품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였죠.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제난이 더욱 심해진 스리랑카에서는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졌고요.

이미 많이 진행된 식량 위기

최근 들어 지구는 ‘아랍의 봄’과 같은 사태를 일으켰던 이상기상 현상을 더 많이 겪어왔어요. 예상치 못한 산불, 가뭄, 폭우, 태풍 등 세계 곳곳에서 이례적인 기상현상이 관측되고 있죠.

특히 2021년, 극단적인 이상 기후는 전 세계에서 여러 기록을 갈아치웠어요. 수백 명이 폭풍과 폭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농부들은 가뭄과 메뚜기 떼로 인해 피해를 입었죠. 지난 8월에는 잦은 산불로 인해 최대 탄소 배출량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요.

이상기상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식량 부문이에요.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며, 기아 인구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직접적 영향을 미쳐요.

거기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 공급망이 축소됐어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에서 국경을 폐쇄했고 이로 인해 외부 계절노동자들의 유입이 차단되면서 파종과 수확에도 차질을 빚었죠.

또한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 항만의 물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운송료가 상승한 것도 영향을 미쳤어요. 세계 대두 수출 1위국인 브라질은 항구 운영의 차질로 병목현상*까지 발생했었고요.

이로써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한 해 동안 밀은 69%, 옥수수는 36%, 보리는 82% 상승한 바 있죠.

그리고 ‘식량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이거나 절박하게 식량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진 사람이 42개국 1억 6천 100만 명으로 연초보다 19%나 늘어났다고 해요.

*병목현상 : 과부하로 인해 효율의 저하를 초래하는 현상

농부의 곡물을 탐내는 메뚜기떼🦗

최근 늘어난 이상기상 현상이 불러온 문제 중 하나인 ‘메뚜기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해요. 비정상적인 폭우 후 폭염으로 메뚜기떼가 좋아하는 고온다습한 환경이 조성돼 대규모 메뚜기떼가 출몰했죠.

특히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와 인도, 파키스탄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 재앙'이 발생해 농작물과 방목지가 파괴됐어요.

폭우와 폭염이 지나면 가뭄이 찾아와요. 이들 국가는 2년째 극심한 가뭄도 겪고 있죠. 식량·목초지를 찾아 고향을 등진 이주민이 1천300만 명에 달해요.

지난해 9월 케냐는 곡물 수확량이 70% 감소해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한 상태예요.

2016년 이후 최악의 식량 위기를 겪는 에티오피아에서는 긴급 인도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940만 명이고요.

또한 국토의 90%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소말리아에서는 350만 명이 식수·식량 부족 사태에 빠져 있어요. 식량을 찾아 자국을 떠난 국민은 67만 1천 명이라고.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2019년 기준 식량자급률이 45.8%, 사료를 포함한 곡물의 자급률은 21.0%에 불과해요. 한국은 세계 5위의 식량 수입국이죠.

이런 낮은 식량자급률로 인해 먹거리를 절대적으로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예요. 특히 곡물 중 밀의 자급률은 0.8%에 불과해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죠.

한국에 수입되는 밀가루 대부분은 미국, 호주산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이에요. 따라서 당장에 큰 영향은 없을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소비 이전 효과가 나타나면서 밀가루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요. 

이미 밀 가격이 많이 올라, 소상공인들은 가격이 많이 오른 밀가루를 이용해 음식을 판매했지만 쉽게 가격을 올릴 수 없어 마진 없이 팔기도 하는 상황이에요.

식품 대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미리 3개월 분의 밀을 대량 구매해두면서 가격 방어에 나섰지만, 장기적으론 국제 곡물가격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류 가격도 줄줄이 오르며 ‘소맥 1만 원 시대’가 끝이 났죠. 오비맥주 카스, 하이트진로의 테라, 하이트, 참이슬·진로 등 소주와 맥주 제품들의 가격이 올랐어요. 1병에 4000원이던 소주 가격은 5000원으로, 맥주는 5000원에서 6000원으로 오를 전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