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At Apple, we believe accessibility is a human right. 몇주 전 유투브에 소개된 애플의 <The Greatest> 영상에서 위와 같은 코멘트가 적혀있었습니다.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애플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짧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접근성은 왜 중요할까요? 올해 봄, <Play>호를 내면서 '아이들에게 놀이는 숨쉬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요. 접근성이 보장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성을 생각할 때 정수기 버튼이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있거나, 금융거래를 하고 싶은데 대체 텍스트가 제대로 들어가있지 않아서 진행이 어려운 것과 같이 편의와 관련된 상황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재나 홍수 상황에서 자력으로 대피해야 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생명과 연결되는 상황도 있죠. 그리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면 개인의 자존감과도 연결됩니다. 자존감을 형성하는 요인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높은 접근성은 개인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을 도와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서 만난 카렌은 자신의 높이에 맞춰 주거공간을 리모델링했습니다. 특히 가족이 함께 요리하는 경험을 중시하여 효율적으로 주방 동선을 설계했고 그것이 행복한 삶의 일부라 말합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 Good Design is Accessible Design' 이라며 인상 깊게 마무리 했던  카렌과의 인터뷰 일부를 소개합니다. 



본 내용은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생활안전부터 재난까지 안전을 위한 디자인의

일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에디터 강성혜, 김병수
사진제공 Karen Braitmayer, Chibi Moku, Olson Kundig 

카렌 브렛마이어는 스튜디오 퍼시피카Studio Pacifica의 대표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축가이자 접근성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그는 2010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접근성 위원회US Access Board10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건축뿐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 장애 학생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 “카렌 브렛마이어 없이는 접근성 디자인을 논할 수 없다”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몇 년 전 시애틀을 대표하는 건물의 접근성 개선 프로젝트를 맡으셔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Seattle Space Needle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내부 전망대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고 외부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게 개조했죠. 언론에서는 이 리프트를 가장 많이 보도하긴 했지만 저는 외부 전망대에 새로 설치한 유리창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예전에는 외부 전망대 가장자리에 있던 레일이 시야를 가려서 키가 작으면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했어요. 이번에 레일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까지 이어지는 투명한 유리를 설치했죠. 물론 좀 무섭긴 해요. 하지만 접근성이 정말 좋아진 거죠. 휠체어를 탄 사람도 남들과 똑같이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제는 다 같이 ‘아악!’ 하고 소리 지를 수 있어요 (웃음).

건축가이자 오랜 기간 접근성 전문가로 활동하신 관점에서 안전과 접근성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안전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물론 접근성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독립성을 부여하기 위해 존재하는 개념이에요. 하지만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오히려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죠. 일상의 번거로운 일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빨리 해치워버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려는 거예요. 그런 경우라면 장애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분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안전까지 동시에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또 진행성 장애가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어요. 지금은 독립적인 일상이 가능하더라도 언젠가는 도움이 더 필요할 테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보호자가 가까이서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죠.

미국 정부 접근성 위원회 멤버이기도 하신데요. 미국 장애인법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접근성 가이드라인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접근성 분야에 큰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행정은 늘 느리게 움직이죠. 아직도 ADA에 추가됐으면 하는 내용이 많아요. 누락된 내용을 새로 추가하는 문제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조항을 수정, 보완하는 일도 아직 많이 남았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전문의 처방으로 보조기구를 받기 때문에 사람마다 사용하는 기구가 모두 달라요. 기능과 형태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죠. 하지만 ADA 가이드라인은 아직 그 다양성을 충분히 다루지 못해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도 이제야 조금 건드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청각장애인의 경우 데프스페이스라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따로 있어요. 읽어보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내용이 환상적이죠. 하지만 데프스페이스는 아직 ADA 가이드라인에 반영되지 못했어요. 규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 Chibi Moku
1)  싱크대 아래가 비어 있어 휠체어 이용자도 무릎 간섭 없이 사용할 수 있다.
2) 가전제품도 편의성을 고려해 구매했다. 오븐의 문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열리는 덕분에 마찬가지로 간섭 없이 사용할 수 있다.
3)  가로가 넓은 레이아웃의 가스레인지 덕분에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2선에 올린 냄비까지 잡을 수 있다.
4)  롤링 상판을 서랍처럼 당기면 알맞은 높이의 믹서기 전용 카운터가 생긴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집이 안전하고 독립적인 공간이 되려면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할까요?
집에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부터 생각해요. 일단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턱이 없어야 해요. 입구가 평평하거나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야 하죠. 또 출입구에서도 휠체어가 방향 전환이 가능하거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 만큼의 여유 공간이 필요해요. 재난상황도 물론 고려해야 합니다. 시애틀은 특히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에요. 그래서 침실은 1층에 짓고 외부와 바로 연결되는 문 앞에 침대를 놓는 방식을 추천하죠. 밤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어나서 바로 나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유리로 된 비상문을 추가로 설치하기도 해요. 평소에는 잠겨 있는 창문처럼 보이지만 비상시 열어서 빠르게 탈출할 수 있죠.

집에서 요리도 굉장히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방 환경의 경우는 어떠세요?
가사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중요해요. 우리 집 부엌의 경우 모든 가전제품이 손 닿는 곳에 있도록 개조했어요. 휠체어에 앉아서 가스 불 위로 손을 뻗으면 위험하니까요.물건을 집으려고 몸을 심하게 기울이지 않아도 될 방법도 고민했어요. 중요한 안전 이슈죠. 일단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해요. 싱크대 앞에 있다고 하면 한 쪽에는 음식물 쓰레기통, 다른 한 쪽에는 식기세척기를 두는 거죠. 저녁식사를 마치면 잔반처리와 설거지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요. 식기세척기 작동이 끝나면 바로 옆에 있는 수납장에 접시를 정리합니다. 부엌에서 돌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동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짰어요. 덕분에 힘도 아낄 수 있고요.

효율적인 동선 설정이 흥미롭네요. 아무래도 욕실은 낙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라 특히 염두에 두시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욕실은 전형적인 의미의 안전을 고민해야 하는 장소예요. 저는 욕실에서 미끄러질까 봐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 딱 맞는 바닥 타일을 한참 찾아다녔어요. 또 집을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휠체어에서 내려서 일어선 채로 샤워하러 들어가야 했어요. 정말 위험했죠. 지금은 샤워기 바로 앞까지 휠체어를 밀고 들어갈 수 있어요. 샤워실 안에 벤치형 의자도 설치해서 휠체어에서 바로 옮겨 앉을 수 있게 개조했어요. 훨씬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됐죠. 우리 집은 창문도 전동이에요. 전기 패널로 창문을 언제든 열고 닫을 수 있죠. 누전 차단기도 손에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낮게 설치했어요. 정전이 됐을 때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도 차단기를 올려 집을 독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죠.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에 설치된 리프트는 평소에 외부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 역할을 한다. 하지만 리프트로 사용할 때는 계단이 지면 높이의 평평한 플랫폼으로 변한다 (아래 카렌 탑승 사진 참조). 또한 플랫폼 앞뒤로 벽이 자동으로 올라와 낙상에 대한 염려 없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다. 미국에 이런 형태의 리프트가 설치된 사례는 이번이 최초다. © Olson Kundig
© Olson Kundig
많은 대답을 해보셨겠지만, 그래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디자인이란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Good design is accessible design’ 이라고 생각해요. 멋진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누군가 그 건물에 접근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에요. 결국 좋은 디자인이 아닌거죠. 좋은 디자인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유형의 사람을 폭넓게 고려한 디자인이에요. 초점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죠. 장애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삶에 일부일 뿐이에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든 장애를 겪게 돼요. 그러니까 부끄러워할 것도 없어요. 머리색이 어둡거나 밝거나, 귀가 크거나 작은 거나 다름없어요. 장애는 각자 다른 신체 특징일 뿐인 거죠.

좋은 디자인을 위해 노력하는 디자이너와 독자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들을 위해 디자인하게 된다면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경청하세요. 듣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디자이너를 위대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만약 본인이 디자이너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세요. 그리고 디자인에 기여하세요. 당신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릴지 모르니까요.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어요.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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