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_생각의 여름을 듣던 여름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모으는 것은 좋아하는데, 반대로 버리는 것은 잘 못하는 편입니다. 어딘가에 다녀오면,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을 팜플렛을 하나씩 꼭 들고 오고요. 의식의 흐름을 나열한 메모장도 언젠가는 들여다보겠지, 하고 쌓아둡니다. 카페나 서점 가서 스티커나 책갈피 챙겨오는 것도 좋아하고, 장난치면서 낙서한 종이 쪼가리들도 그대로 가방에 다 넣어놓습니다. 이렇게 쌓기만 하고 버리지는 않으니, 항상 뭔가 찾으려 하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쓰다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대청소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사실 이런 모습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모양과도 닮아 있습니다. 한 가지를 깊이 덕질하기보다는, 금방 사랑에 빠지고 동시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때 내가 뭘 좋아했지?" 돌이켜보면 딱 떠오르는 것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분명 끊임없이 뭔가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다 어디로 간 거지? 그런 아쉬움이 짙어지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잘 기록하고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매일 자기 전 5분씩 좋아했던 것들을 기록하기(이것도 노트만 몇 번 바꿨는지),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놨다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하기 등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지만 얼마 못 가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한 주 동안 사랑했던 것들을 담아 보내는 <망고네 슈퍼>까지 오게 되었어요. 덕분에 이제는 '이때 내가 뭘 좋아했더라?' 싶을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관함이 생긴 기분입니다. 그렇게 지난 편지들을 읽어보다가, 지금껏 담아왔던 노래들을 한데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봤어요. 구독자 분들이 추천해주셨던 노래들도 함께 담았어요. 모아서 듣기에 좋은, 매끄럽게 연결되는 플레이리스트 같지는 않지만 - 그래도 이 중 하나쯤은 비슷한 취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제가 만든 노래는 아니지만) 재밌게 들어주시고, 또 재밌게 읽어주세요!

플레이리스트 만들고 조금 신난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이 주의 페스츄리 하나🍑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 키미 대 교주

넷플릭스 입덕작을 고르자면, 저는 망설임없이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트>를 고를 것 같아요. 원래 본 시트콤이라고는 <하이킥> 시리즈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트>를 계기로 시트콤 시리즈를 쟁여놓고 보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 이후로 애정하는 시트콤이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첫사랑(?) 같은 키미 시리즈는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그렇게 시즌4로 끝난 줄 알았던 키미 시리즈가 인터렉티브 스페셜로 돌아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시리즈가 '15년간 사이비 교주에 의해 지하 벙커에 감금되었다가 구출된 주인공의 좌충우돌 뉴욕 라이프 적응기'였다면, 이번 스페셜은 결혼식을 앞둔 키미가 교주의 사악한 음모를 막으려고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에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모험 결과가 달라지는데, 어떻게 신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애정 100%를 담아서 신나게 플레이(?)하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의 모든 인물들은 허점을 가지고 있고, 그 허점이 웃음 포인트로 기능한다. 결국엔 그 허점이 매력이 되었다는 말이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는 허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어설프다고 해서 그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 허점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요소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기에, 각각 다른 허점과 매력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고, 그 허점 때문에 어설프고 위기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서로 곁에 있어주며 서로가 서로의 허점을 메워주면 그만이다. 결국에 키미가 unbreakable할 수 있었던 건 키미의 타고난 성격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키미의 곁에서 키미의 허점을 메워준 다른 사람들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오래오래 키미가 깨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키미로 살아가주기를. 그런 키미와 함께하면서 우리의 일상도 깨지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Ps. 키미와 사랑에 빠졌던 시절에 썼던 글의 일부를 가져왔어요. 전문은 여기에서 읽어주세요!

이 주의 수박 하나🍉

찬실, 소피의 일기, 정다희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휴대폰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했는데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 시간이 갔다. 우리는 계속 살아있었다. 지루한 영화 같다. 그런 영화가 좋았다. 자기 위해 눈을 감아도 시간은 갈 것이었다. 누군가가 죽어도 이 영화는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내 시나리오가 망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성공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불에서 약간 고소한 냄새가 났다. 내일은 샤워하고 자야겠다. 점점 생각이 옅어졌다. 페이드 아웃이었다.

-[Purzoom] 찬실, 소피의 일기/ 정다희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일기를 쓰는 '그들의 일기' 시리즈 중 <찬실이는 복도 많지> 편을 가져왔습니다. '기다려봐 내가 좋아하는 글이 있는데'라는 카톡을 받고, 어떤 글이 도착할까 잠시 숨을 멈추고 기다리는 순간. 지루한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어쩐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순간. 그런 순간을 거쳐서 도착한 글이 너무 좋아서, 이 장면을 통째로 어딘가에 잘 보관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나간 인생의 필름에서, 과연 느리지만 선명한 장면들을 얼마나 쌓아왔을까요. 또 그중 얼마나 많은 장면들을 흘려보냈을까요. 줄리아하트의 노래처럼, 지금껏 쭉 NG컷이래도 좋으니 필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주의 아메리카노 한 잔🌴

생각의 여름 - 안녕 & 다섯 여름

지루한 영화를 생각하다가, 단조롭지만 아름다운 노래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생각의 여름'이라는 뮤지션을 알게 되었을 때, '생각'과 '여름'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이 새롭고 아름다워서 일기에 적어두었던 기억이 나요. <다시 숲 속으로>라는 앨범이 발매되었던 16년 여름,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앨범을 자주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나네요. 오랜만에 꺼내들어도 여름과 여전히 잘 어울려서, 그때 좋아했던 가사들을 함께 덧붙여봅니다.

그대 이만 가시길 보내도 가지 않는 시절이여 안녕

- 생각의 여름, '안녕' 中

아주 미우니까 미움으로 달려갈 거야

양말을 껴신고 운동화를 꽉 매고

역으로 뛰어가서는 비둘기호를 타고

경치를 보다가 졸면서 잊을 거야

- 생각의 여름, '비둘기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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