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북 뉴스레터
조만간 코로나19가 존재하는 걸 일반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건 불안이 심각한 지금보다 어찌 보면 더 안좋은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덤덤한데, 건강한 게 아니니까요. 불안한 상태에서 무감각해지는 겁니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무덤덤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장기적 미래 예측이 어려울수록 생각의 날을 닦아야 하는 이유가 아마도 그것이겠지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사IN>은 매주 금요일 '주말에 뭐 읽지' 뉴스레터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화창한 봄날, 이전과는 달라질 세상을 그려보는 데 소개된 책들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류 멸망'인데 위로가 되네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지음 / 아작 펴냄

“우리는 지금의 불행을 SF의 렌즈를 통해 보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임원진을 인터뷰했을 때 대표인 듀나 작가가 했던 말이다. 그 문장이 다시 선명해진 건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산불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5개월째 꺼지지 않는 불, 서울 면적의 100배 소실, 야생동물 10억 마리 폐사…. 폭염과 가뭄 등 이상고온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더 이상 SF의 주제가 아니었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정세랑 작가의 SF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서 나온 말을 곱씹었다. 까맣게 타버린 캥거루와 코알라 사진을 보며 우리는 아마 미래 세대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SF 단편소설 8편이 수록돼 있다. 페미니즘과 생태주의가 녹아 있는 각각의 서사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가늠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문명 파괴 이후를 다룬 ‘리셋’‘7교실’이 인상 깊었다. ‘리셋’에서는 인류 문명을 삼키기 위해 지구에 내려온 거대 지렁이로 인해, ‘7교실’에서는 인류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살던 세계가 파괴된다.

그런데 재앙의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거대 지렁이가 지나간 곳은 토양이 비옥해지고 줄어든 인구수는 오히려 지구에 무해하다. 파괴된 것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플라스틱 등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다. 대멸종 위기를 겪고서야 인류는 다른 종과 자원을 나눠 쓰는 법을 배운다.

동식물이 행복해야 인간도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보여주는 특유의 따뜻함이 묻어나, ‘멸망’을 말해도 어쩐지 위로를 받는다. 작가는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창작 배경을 밝혔다.

"생활동반자법은 2014년 처음 정치권에서 논의 됐으나,
동성혼을 허용하는 전초단계라 주장하는 보수정당과 기독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책은
세상에 처음 내놓는 ‘생활동반자법안 발의서’인 셈이다.

-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


황두영 지음 /  시사IN북 펴냄


"제가 읽고 싶은 책이 세상에 없으면, 본인이 써야 한다고... 기다리다가, 내가 하자, 이렇게 된 거죠. 하하하"

황두영 작가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진선미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며 생활동반자법, 투표시간 연장법안, 소라넷 폐지 등을 기획했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처음으로 생활동반자 명칭을 만들어 제안하고, 생활동반자법 법안을 구상했습니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특별한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새로운 가족을 꿈꾸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늘 그렇듯 법과 제도가 달라진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문제다.'
  

외로움이 사회적 질병으로 떠오른 시대, 돌봄 공백을 메울 사회적 대안으로 생활동반자 관계가 왜 필요한지, 생활동반자법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담은 책. 

지금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고독자
루쉰 지음, 자오옌녠 그림, 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  

“저어… 사람이 죽어도 정말 혼은 남나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1924~1926년에 쓴 7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이 건국되었으나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웠던 대륙의 암흑기다. 가족들과의 불화로 루쉰의 개인사에도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밀어닥쳤다. 중국의 변화와 개혁을 열망해온 진보적 지식인인 저자 역시 이 시기엔 절망에 침식되고 만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비극적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던 그의 작풍이 회색빛으로 변하고 만다. 
중국 판화계의 거장 자오옌녠이 각 단편을 주제로 제작한 판화 7점이 수록되어 독자의 작품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김영서 지음, 이매진 펴냄  


“아빠가 틀렸습니다.”  

아빠라고 불러야 했던 사람이 죽었다. 
2019년 1월22일 휴대전화 일정표에 다섯 글자를 적었다. ‘악이 사라짐.’ 부고를 들었을 때 느낀 감정에 딱 맞는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사실만 적었다. 
그가 사라지고 1년이 지났다. 새로운 방식으로 미투를 해야겠다고 결심이 섰다. 미투조차 어려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필명을 본명으로 바꿨다. 2012년 ‘은수연’은 2020년 ‘김영서’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주먹질, 발길질, 강간…. 어린 딸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시간들에 관한 기록을 다시 펴냈다. 그 모든 시간이 개인의 불행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럿이 함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기 위해서.  

편집가가 하는 일
피터 지나 편저, 박중서 옮김, 열린책들 펴냄  

“많은 독자에게 훌륭한 책을 가져다주는 것만큼 저자와 우리 문화에 중요한 일이 또 있겠는가?”  

맞춤법·외래어표기법 등 편집할 때 알아야 할 지식이 아닌, 책을 내는 ‘일’에 대해 소개한다. 한 권을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원고를 받아 교정을 보고 디자이너를 섭외하여 인쇄소에 넘겨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은 어떤 책이든 똑같다. 하지만 편집가의 일이란 설명처럼 간단하지 않다. 출판계의 유서 깊은 격언에 따르면 편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하고, 저자를 상대로 출판사를 대변한다”.“저자를 상대로 독자를 대변하고, 독자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한다”. 저자와 독자, 출판사를 어르고 달래며 영구적으로 도전한다. 그 와중에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는 자부심과 어떻게든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한다는 사업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인생의 경험이 총동원되는 일이다.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위고 펴냄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을 익히 들었다. 새해가 되면 꼭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하지만 의지가 멈춰 선 곳은 늘 1월과 2월 사이 어딘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 
저자도 ‘메모해둘걸’ 하는 한탄 속에 빠져 있던 비메모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르포 작가가 되고 싶어 메모를 시작했다. 소설 속 한 문장부터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 한 구절,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까지. 차곡차곡 모인 문장들은 그의 삶을 떠받치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었다. 그는 메모가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라고 말한다. 
메모하는 습관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만든다. 메모가 사소한 일이 아니라,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20대 남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왜 그들은 같은 세대 여자에 비해 유독 현 정부를 싫어하고, 젠더 전쟁에 온몸을 던지는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이 책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0대 남자는 왜 다른 그 어떤 세대, 성별과도 구별될 만큼 유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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