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이에게.   많고 많을 편지 중 처음으로 기록될 너의 편지를 잘 받았다. 이메일이지만 편지라고
 
002_오막의 첫 번째 답장 <넋두리...>
오막 to 한아임
2022년 8월
 



아임이에게.

 


많고 많을 편지 중 처음으로 기록될 너의 편지를 잘 받았다. 이메일이지만 편지라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LA’와 ‘서울’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내가 내심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1초 만에 도착하는 ‘전자’ 우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먼 곳에 사는,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친구에게 편지를 받은 듯한 묘한 느낌이 드네. 불과 한 달 전에도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통화도 했는데 말이지. 그래서 편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느낀 것 같다.

 


아임이 너는 내가 바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바로 승낙해서 약간은 의아했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고마울 뿐이었다. 이런 흥미로운 작업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급발진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굉장히 함께 작업을 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소속감을 가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고. 여기서 작업이라 하면 꼭 내가 하고 있는 음악 작업이 아니어도 된다. 음악이든, 영화든, 글이든, 운동이든, 유튜브든, 그저 '나의 것', '나의 작업'을 말한다. 나만의 컨텐츠를 위해 함께할 동료를 찾고 있었던 것이지.


나는 현재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음악을 혼자 시작했고 음악과 관련된 학과를 나오거나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나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유를 부여하면 나태해지는 나의 빌어먹을 성향 때문에 (너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성향과 너무 반대라고 알고 있다)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그나마 동료라고 칭할 수 있는 나의 주변인들도 대부분은 나와 이런 성향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들뿐이기 때문에 (끼리끼리 만나는 것일까…?) 매번 말로만 "하자! 하자!" 하고는 사실 하는 거라곤 집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감자칩을 먹는 것밖엔 없었다.


그래서 너에게 이런 연락과 제안이 왔을 때, 나는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너무나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한아임은 한다 하면 하는 거고, 순식간에 실행에 옮길 것이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나의 엉덩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랜 친구랑 얘기하듯이 메일을 주고받는 컨셉이라면 큰 부담 없이도 흥미를 지속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어쨌거나,


결국 나는 이렇게 엉덩이를 움직여서 오랜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에 너무나도 흥분되어 있는 상태이다! 너가 편지에서 말한, 시작하기만 하면 무언가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그 상태에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그리고 '괜찮은 기분' 상태에는 너가 편지에 끼워 보낸 음악도 한몫했다.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듣자마자 휴양지가 생각나는 정말 어쩔 없나 보다. 어떤 리듬과 음정, 혹은 코드의 진행을 듣자마자 대표적인 장소가 느낌적으로라도 생각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너의 말대로 음악은 장소를 넘나든다. 그리고 시간을 넘나든다. 나는 사실 냄새보다도 강력한 타임머신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4학년 , 부모님이 잠이 들면 형과 함께 구몬을 놓고 (혹시라도 들키면 숙제하고 있다고 뻥치려고) <Queen - We Are the Champions> 방에 작게 틀어놓은 , 명씩 바톤 터치를 하면서 컴퓨터 방에서 디아블로2 밤새 하던 것이 생각난다. 음악을 들으면 아직도 방의 구조와 형의 웃음소리, 그리고 소리 내려고 들던 까치발의 각도까지 생각이 난다. 
Queen - We Are the Champions

저것 말고도 그 당시 형의 CD플레이어에서는 유행하던 팝송들이 엄청 흘러나오고 있었다. <R.Kelly - I Believe I Can Fly>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저러한 노래들을 듣다 보면 나는 초등학생이 되어 있고, 중학생이 되어 있다. 그렇게 기억을 올라가다 보면 한아임이랑 처음 만난 중학생 그때 그 시절도 생각나지. 갑자기 생각나서 얘기하자면 그 당시 나는 512MB 아이리버 MP3에 Westlife, Backstreet boys, Green Day 등등을 엄청 넣어서 듣고 다녔다. 그 당시 512MB는 정말 엄청난 용량이었지. 친구들은 신기해서 내 MP3를 빌려 갔다가 버즈나 동방신기, SG워너비가 없어서 실망하며 다시 돌려주곤 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만드는 음악의 기반은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되어 있었다. 사람은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는데 나는 항상 뒤를 돌아보고 있으니...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 오막의 음악은 슬픈 정서가 가득한데 우울함이 사무치는 슬픔은 아니라고. 그러고 나서 생각해봤는데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더라. 

나는 어렸을 적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걸 좋아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슬픈데 좋지. 그리고 그런 것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음악이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과거의 모습을 보고서 영감을 받아 현재의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정서가 누군가에게 느껴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 

 

 

최근에 나는 Green Day 다시 정말 많이 듣고 있다. 그중 내가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  
Green Day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이 노래를 너에게도 너무 들려주고 싶다.

너무 유명한 노래지만 말이야.

사실 중학교 때 들었던 Green Day 노래는 신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Basket Case 같은...). 근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Green Day의 슬픈 노래들이 정말 좋더군. 나는 Oasis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Green Day의 슬픈 노래는 Oasis의 노래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 

이 노래에서 1:45에 일렉 기타가 들어오는 부분은 정말 언제 들어도 사람을 벅차게 만드는 희열이 있다. 사실 엄청 단순한 진행이고 엄청 단순한 코드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지진 나게 하는 것은 확실히 복잡한 이론과 화려한 진행 같은, 그런 것들은 아닌 것 같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음악은 듣기에 좋으면 된다. 

 

이 노래를 듣는다면 꼭 내 중학교 때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느낌이랄까? 아버지 어머니의 젊을 때를, 오늘 만난 친구의 어릴 적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장소를 떠올리고, 시간대를 떠올리고, 사람을 떠올리고, 이런 것들이 현재 나를 지배하는 정서랑 너무 잘 맞아서 수도 없이 듣고 있는 것 같다. 힙합과 R&B 등등 트랜디한 음악을 좋아하는 나인데, 최근에는 90년대, 2000년대 락을 정말 많이 듣고 있다. 그 시대 음악들은 확실히 직선적인 그리움의 정서가 강하다.

그리고 직선적일수록 타임머신의 기능을 수행해주는 같다. 오늘 집에 가면 중학교 앨범이라도 한번 들춰봐야겠다.

사실 오늘의 답장은 별 내용이 없다. 제목에도 그랬듯이 넋두리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그렇겠지. 갈수록 더 좋은 내용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나 자신을 믿어본다.

중학교 때 듣던 음악들을 듣다 보니 한아임이랑 만난 순간도 떠오른다. 3월 학기 초, 일찍 학교에 도착했더니 아임과 아임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임은 나에게 '어,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찌질하고 내성적인 오막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 아임과 아임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지. 너는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만 말이야. 아주 생생하게 다시 기억나는군! 음악의 힘인가!

 

어쨌거나, 두서없던 나의 첫 번째 답장은 여기서 줄이겠다.

나의 글이 너의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쓴 글일지 모르겠다.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음악 타임머신도 좋지만 코로나도 점점 풀려가는 이 시점에서 조만간 꼭 얼굴을 보면 좋겠다. 내가 미국으로 갈 수 있으면 더욱더 좋겠다.

 

'고막사람'이 길고 길게 지속되길 기대하면서,

- 엉덩이를 드디어 움직인 오막이가
이번 편지를 보낸 오막은...
기약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다. 학창 시절 미국 Omak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기억과 행복의 느낌을 담아 이름을 '오막'으로 정하고 활동중이다. 평소 말로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재주가 크게 없던 오막은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음악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앞으로 고막사람과 함께 오막 자신의 작업량도 쑥쑥 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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