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잿빛인 것이 아니고, 하늘과 비슷한 색을 가진 복숭아도 슬슬 끝물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핵과류가 전반적으로 다 맛있었지만, 유독 복숭아를 참 잘 챙겨먹은 한해였어요. 냠냠과수원의 복숭아를 시작으로, 천천히 다양한 복숭아를 먹어보았죠. (아무도 묻지 않으셨지만 저는 오로지 물복파에요) 그리고 매년 제 복숭아를 책임져주는 복숭아요정님의 아마즈쿠시을 마지막으로 복숭아는 제 마음 속에서 시즌아웃되었습니다 😌 팝업을 하는 동안 요리를 너무 많이 했더니 입맛이 도통 없고 요리를 할 의지도 없어서 매일 복숭아에 구운 달걀 2개를 먹었어요. 매끼....하지만 복숭아라서 그런지 질리지도 않더라구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과일이 복숭아거든요. 복숭아만 약 7박스를 먹었습니다. 혼자서요.

올해는 복숭아 향도 정말 하나같이 좋았어서, 아직 조금 단단한 복숭아를 머리맡에 두고 향에 취해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꼭 나이트캡으로 위스키를 마시고 나서 잔을 머리맡에 두어 잔향이 공간을 채우는 것을 즐기듯이요. 자기 전에 큰 숨을 들이마쉬며 복숭아 향이 제 작은 방을 가득 채우는 것을 즐겼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복숭아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동그랗고, 통통한 하트 모양의 복숭아를 볼때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곤 해요. 사랑. 그리고 사랑은 곧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강렬한 사랑의 순간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은은한 행복의 감각과 더 닮았어요. 복숭아의 맛이란. (아닌가, 행복이 더 찰나의 무언가일까요. 요즘은 조금 헷갈리긴 해요) 동교동에 위치한 카페 이미에서는 통 복숭아를 사용한 디저트인 '행복'을 내기도 하죠. '행복을 전하는 복숭아'의 줄임말이래요. 저만 복숭아를 행복과 닮았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라는 뜻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복숭아의 맛을 이야기할 때, 저는 '달달하다'대신 '달곰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감칠맛이 있게 알맞게 달다'는 뜻인데요, 달아!! 싶은 맛이 아니라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부드러운 단맛. 복숭아가 달곰한 맛인 동시에, 행복의 맛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때, 행복은 달곰한 맛이라는 공식도 참이 되는거겠죠?

갑자기 웬 팬케이크냐고요. 복숭아가 행복의 맛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때, 팬케이크 또한 행복의 맛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때문이죠. 저한테 이 팬케이크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행복을 떠오르게 하는 맛입니다. 미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 팬케이크를 행복의 맛으로 정의하게 됐을까. 그건 팬케이크에 녹아있는 정말 좋은 기억 때문일거에요.

오래전, 친구가 아침에 팬케이크를 해준 적이 있어요. 팬케이크를 먹고싶다고 제가 노래를 불렀더니, 나가서 재료를 사와줬죠. 그날 팬케이크를 만드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친구는 결국 팬케이크를 태웠고, 제가 두 번 째 장부터 다시 부쳤지만요. 필름카메라를 쓰고 있을 때라, 그때 사진을 한 장 찍어두었는데, 제가 찍어둔 것은 저도 친구도 팬케이크도 아니고 창틀이었습니다. 그날의 공기도, 햇살도 기억하고 있어요. 약간 구름이 낀 하늘 사이로 햇빛이 강하게 들었는데도, 창틀에 내려앉은 햇빛은 부드럽고 말간 느낌이었고, 약간 타고 있는 팬케이크 냄새와,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있었어요. 저는 그 날을 아직까지도 '완벽한 행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직 내가 좋아하는,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인해 만들어졌던 최초의 행복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행복해지고 싶을때는 팬케이크를 떠올리게 돼요. 친구와 오리지널팬케이크하우스에 가기도 하고, 집에서 제가 부쳐먹기도 하고요. 최근에도 여러가지 일에 마음을 썼더니 팬케이크가 너무너무 먹고싶었어요. 팬케이크를 사먹으러 가려고 하다가, 집에 사놓은 팬케이크 믹스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참 다정했네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행복해지고 싶을 때 행복해질 수 있게 1인용 팬케이크 믹스를 4~5개 사놨더라고요. 짜아식. 저를 참 잘 안다니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꼽만 떼고 물과 팬케이크 가루, 달걀을 잘 섞어 팬케이크 반죽을 만들었습니다. 바닐라 익스트랙트와 넛멕 가루*도 넣어서 향을 더했어요. 기름을 얇게 입힌 팬에 팬케이크 3장을 구워냈습니다. 꼭 호텔 조식을 먹을 때 오렌지주스와 커피를 모두 따라놓는 버릇이 있는데, 오늘은 웬일로 집에 오렌지주스가 있었던 날이라, 여행을 다니던 시절처럼 두 잔을 따랐습니다. 아직 따뜻한 팬케이크 위에 버터 한 조각을 올려 슬슬 녹였고, 시럽을 올리기 전에 제가 올해 만든 복숭아 민트 잼을 올렸어요. 사진을 한 장 찍고, 시럽을 듬뿍, 아주 듬뿍 올려서 큼직하게 썰어 입에 넣었습니다.

행복을 떠오르게 하는 두 가지 음식, 복숭아와 팬케이크가 합쳐졌으니 이건 사랑이라고 해도 되겠죠. 어떤 날에는 맛있는걸 만들어 혼자 먹고 있으면 더욱 씁쓸해지는데, 이날은 아니었습니다. 팬케이크는 달았고, 복숭아 민트 잼은 향그러웠어요. 사랑과 행복 그 사이 어딘가에서 팬케이크를 삼키며, 오랜만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모히또는 쿠바의 칵테일인데요, 기본적으로 럼과 민트, 라임을 넣어 만듭니다. 헤밍웨이가 마신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한국 분들은 아마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으로 더 많이 들어보셨겠죠.  

한식공간 오너셰프 조희숙 셰프님, 바이크 타는 중식 셰프 신계숙 교수님, 미토우의 오너셰프 김보미 셰프님, 라라관의 오너셰프 김윤혜 셰프님, 푸드 콘텐츠 디렉터 김혜준 대표님, 맥도날드 메뉴 개발 셰프 최현정 셰프님, 클라로의 페이스트리 헤드 김나운 셰프, 스시코우지 그룹의 간판 오마카세 셰프 이슬기 셰프, B3713의 헤드 셰프 정혜민 셰프 

책 표지 이미지와 함께 가장 궁금한 분의 이야기와 이유를 인스타(스토리 포함)에 올려주세요. 두 분을 선정해서 <요리가 전부는 아니지만>을 보내드릴게요! 제가 찾아갈 수 있게 꼭 저를 태그해주세요 😚 제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sincere_foodie 여기있구, 발표는 다음번 레터에서 하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