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만복은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잘 하는 것도 없는 고등학생이다. 얼떨결에 시작한 경보도 자기 의지에 따른 일은 아니었다. 무한성장을 맹신하는 담임 선생님은 옆에서 그녀를 응원한다. ‘중요한 건 꿈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이야!’라는 자기계발서 속 멘트를 외치며. 그러나 꿈도, 그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도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장에 대한 허상을 믿음 삼아 걷고, 또 걷는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지,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고 있을 때 만복은 스스로 레이스에서 이탈하기를 선택한다. 달리기를 1등으로 완주하는 ‘노오력’이 젊은 이들에게 요구되는 미덕인 세상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적어도 나는 이 규율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럴 때 만복이를 생각한다. 커서 만복이가 되었을 만복이. <걷기왕>은 생각만해도 푸스스 웃음이 나오는 영화, 존재만으로 엄청난 위안이 되는 작품이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면 심은경 배우가 부른 엔딩송이 흘러나온다. ‘걷다보면 혼자는 심심해 우리 둘이 천천히’. 그래. 우리 천천히 걷자, 천천히.

영화 <유월>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마치 춤을 추듯 눈을 움직이는 주인공 유월의 눈부터 출발한 카메라는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1분 30초 남짓한 영화의 오프닝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보희와 녹양은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보희는 아버지를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고, 녹양은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완전히 다르지만 서로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우정이 눈부시다. <보희와 녹양>은 그 이름 만큼이나 산뜻한 분위기를 품은 영화다. 영화를 본 뒤 이틀 쯤은 따뜻한 기분에 사로잡힐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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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는 의심과 믿음에 대한 이옥섭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내용 그 자체도 흥미롭지만 영상미와 연출 방식이 톡톡 튀어 눈이 간다. 환상적인 상상력과 아름다운 색감을 담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영화를 뒤에서 받쳐주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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