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나이 83세, 망구의 나이에 인생 3모작을 피스메이커(평화운동가)로 살고 있다. 나를 피스메이커로 안내하고 이끌어준 사람은 국경선평화학교 교장 정지석 박사이다. 나는 작년(2021년) 국경선평화학교 피스메이커 과정에 입학하여 1년 동안 공부했다. 이후 나의 모든 삶은 국경선평화학교의 큰 뜻과 민족평화통일 희망운동, 평화학교의 발전을 위해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생을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모두 바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지금 국경선평화학교의 절실한 희망은 활동의 공간인 자체 건물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여건이 성숙되어 국경선평화학교는 드디어 건축공사를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하고 기쁜 일이다. 이는 돈이 있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꼭 해야 할 일이기에 기필코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결단임을 잘 안다.
나는 당장 벽돌 몇 장이라도 형편껏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벽돌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모교인 중학교를 찾을 때면 나는 내가 만들고 쌓았던 벽돌을 보면서 감회가 컸다. 그런데 새로 건물이 지어지면서 내 정성이 깃든 벽돌이 사라져버렸다. 허탈했다. 그 이후 나는 모교를 찾지 않는다. 벽돌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땅은 남는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나는 벽돌기금보다는 땅기금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내 형편은 땅 한 평(100만원)도 힘들다. 1997년 IMF 때 나는 대출금 미상환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지난 20년 동안 내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 아내도 연대보증인으로 나와 같은 입장이다. 자식들에게도 알 릴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다. 나는 망설이고 주저했으나 최소한이라도 힘이 되자는 일념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내 이름으로 적금통장을 개설했다. 20년 만의 결단이다. 땅 한 평 기금을 위해 매월 8만 원씩 지금 3번째 돈을 넣었다. 너무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감춰진 사연도 우리 국경선평화학교의 건축에 일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나의 수치심과 자존심이 무슨 대수랴. 적금이 끝나는 남은 몇 달이 잘 지켜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우백당에서, 여강 김융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