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저는 창작을 업으로 삼은 모든 이들을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저는 일반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에 다녔는데요, 흠모의 마음이 시작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지 싶습니다. 제가 속한 반에는 축구선수 김병지 선수의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누가 봐도 그림에 무척 재능이 뛰어난 친구가 있었어요. 아직도 그 친구가 공사장 풍경을 그렸던 날이 생각납니다. 모래산과 그 옆에 서있는 포클레인, 부지런히 땀 흘리며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아주 정교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그려져 있었어요. 선생님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저마다 칭찬을 입에 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날마다 ‘이 친구가 오늘은 뭘 그리려나?’ 하는 기대로 그 아이의 스케치북을 힐끗거렸던 제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 흠모의 마음은 더욱 크게 자랐습니다. 그동안 예체능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스스로를 너무나 선명하게 발견해버려서일까요? 정말이지 저는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를 고루고루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당시의 저는 공부로 1,2등을 앞다투는 친구들보다 음미체에 강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선망했습니다. 아, 글 잘 쓰는 친구들도요.
대학에 진학한 뒤 뒤늦은 사춘기를 맞은 저는 부모님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름 복잡한 ‘샛길 인생’을 살며 디자인 사무실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을 해보고, 상업사진 스튜디오에서 리터치와 조명 설치를 하며 예술의 ‘ㅇ’ 언저리까지만이라도 도달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다행히 그 시간들을 통해 예술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업으로 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임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헛된 경험이 없다는 말이 정말 맞나 봐요. 제대로 깨닫고 나니 후련하긴 하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