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사파리 #불평등 #팬데믹

[주말에 뭐 읽지]  2021-01-14 #40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에서  

가난을 구경하는 자이용하는 자

대런 맥가비 지음, 김영선 옮김
돌베개 펴냄

“저 재난지원금 받으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맞은편을 가리킨다. 맞은편으로 가서 또 “저 재난지원금….” 역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맞은편을 가리킨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문자를 보여주니 13번 창구로 가라고 한다. 이제야 제대로 찾아왔는지 카드를 준다.  

기초생활수급자 재난지원 창구에서 승강이를 벌이고 나서야 재난지원금 카드를 받았다.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밖에 대할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원인 상대하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말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재난 지원을 받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사회가 가난한 이들의 존엄을 앗아가는 과정을 생각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가난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방문 진료를 하면서 아픈 이의 집을 드나들며 가난한 이들의 삶을 마주한다. 질병 문제 이전에 가난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해 아프다. 의학이라는 전문성에 숨어 가난이라는 질병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의 건강을 돌보겠다고 찾아가고 있으나 혹여 내가 가난 현장의 구경꾼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대런 맥가비는 이 책을 통해 사파리화된 날것의 가난을 생생히 전한다. 사파리화된 가난한 이의 반론도 담았다. “지역 바깥의 사람들이 그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하려는 열의는 빠르게 사그라든다.” “정치 참여란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문을 닫아 걸어놓고 그 안에서 미리 정해둔 목표로 군중을 몰아가는 것이었다.” 통쾌함이든 깨달음이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된 상황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난을 이용하는 자들과 실제로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자들 사이에 커다란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정치·복지·정책·시민운동·정신의학 등의 무기로 가난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가난 사파리를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있는지도.

누군가가 나서서 가난을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가난을 이용하는 이들이 가진 힘이 바로 권력일 테고 그 힘에 맞서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저 한 번쯤 겪었을 ‘아주 평범한 가난’의 경험을 우리 스스로 모아, 가난이라는 글자가 기생충화되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이용되지 않으며 존엄의 근거로 다시 쓰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랩으로 실천 활동을 하는 저자처럼 포기하지 않는 힙합 정신으로.

홍종원(건강의집 의원 대표원장)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대표:역사, 논리, 정치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노시내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대표의 역사는 대표 관념이 원래부터 민주적인 것은 아니며, 어떤 점에서는 서로 대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면서 우리는 우리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만족스럽게 대표된다고 느끼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무슨 근거로 저 사람이 나를 대표한다는 것일까. 역시 시민의 직접 참여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중립적인 전문가나 인공지능에 의사결정을 맡기면 결과가 더 좋지 않을까?
이 책은 영국 요크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가 영국의 스타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과 함께 쓴 ‘대표 개념 탐구서’다. 대표라는 개념이 지닌 방대한 역사와 사상적 변천을 추적한다. 개인과 집단,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각각 어떤 의미이며 어떠한 조건에서 가능한지 성찰한다. 나아가 대표제와 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놀랍고도 도발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팬데믹이 되려면
조너선 퀵 지음, 김한영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  

“진실하고 우호적이고 따뜻하게 소통하라.”  

이 책은 2018년 미국에서 ‘감염병의 종말(The End of Epidemic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공중보건 관리 전문가인 저자는 지난 40년간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퍼졌던 전염병을 연구하고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2년 전 책에서 그가 묘사한 팬데믹은 다음과 같다. 공중보건 체계가 마비되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으며, 경제가 멈추고, 가난한 사람들이 범죄에 노출된다. 
그의 ‘예언’은 2020년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은 감염병의 획기적인 대응에 필요한 7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강한 리더십, 회복력 있는 보건체계, 적극적인 예방,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혁신, 영리한 투자, 의식 있는 시민들의 존재다. 마지막 팬데믹을 만드는 일은 2020년 인류의 손에 달려 있다.
 
서울 해법
김성홍 지음, 현암사 펴냄  

“도시와 건축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대립한다.”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인 저자의 ‘도시 건축’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책. 서울에만 집중했다. 지난 60년 동안 서울에서는 녹지를 제외한 면적의 70%가 갈아엎어졌다. 이 도시는 무질서와 질서가 끌어당기는 팽팽한 장력에 붙들려 균형을 잡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서울에는 다양하고 치열한 욕망이 넘실거린다. 그래서 오히려 서울은 질긴 생명력을 얻는다.
도시와 건축은 대립하며 서울을 곧추세우는 양 갈래의 힘이다. ‘도시의 외적 힘’은 법과 제도, 비용 등 밖에서 안으로 가해지며 건축을 제약한다. ‘건축의 내적 원리’는 공간, 형태, 구조를 통합해 안에서 밖으로 건축을 생성하는 원리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프레임을 통해 서울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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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일기
박은봉 지음, 돌베개 펴냄  

“오십. 나는 그 나이에 모든 것을 잃었다.”  

어린이 역사책 〈한국사 편지〉를 쓴 밀리언셀러 작가. 쉰 살 어느 날 한순간에 삶이 무너졌다. 심장이 튀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렸다. 지하철을 타려다 돌아서 나왔다. 그날 이후 잠을 잘 수 없었다. 불안증·우울증·협심증에 시달렸다. 산부인과·안과·치과·피부과를 들락거렸다. ‘불안감을 느끼거나 감정선이 어떤 이유에서든 흔들렸을 때, 저 밑에서부터 뱃속에서부터 떨림이 분출해 온몸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진땀이 나고 눈물이 솟구친다. 의지로 제어할 수가 없다. 2010. 10. 9.’ 
저자는 치유 일기를 썼다. 무너진 순간을 다시 세우는 데 9년이나 걸렸다. 긴 시간 동안 도움을 준 것은 마음의 고통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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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지내야 했던 연말연시 연휴 기간,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게 되었습니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니 늦어도 한참 늦은 지각관람이지만 과감히 플레이 버튼을 눌렀죠. 제가 신뢰하는 영화 칼럼니스트 김세윤씨가 팬데믹 시기 꼭 다시 볼 만한 영화로 이 영화를 추천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오늘 뉴스레터 첫머리에 삽입된 영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가 복지수당을 신청하려고 관공서를 찾았다가 예정된 상담 시간에 5분 늦었다고 거절당하는 장면이었죠. 오늘의 책 <가난 사파리>를 추천한 홍종원씨 말마따나 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접하면 왜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가하는 자괴감이 들 것입니다(홍종원씨는 거동이 힘든 환자들의 집으로 의사가 직접 찾아가는 국내 최초의 방문 진료 전문 1차 의료기관 건강의집대표원장입니다. 관련기사는 여기). 가난한 사람들은 왜 이런 모욕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요? 게을러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어렴풋하게나마 우리는 이미 깨닫고 있습니다.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된 상황인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올해 <시사IN>은 동네책방들과 함께 공동 북클럽을 준비해 볼까 하는 중입니다. <시사IN>과 동네책방으로 이어진 독자들이 동시에 같은 책을 읽으며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인데요. 이 과정에서 책방지기들의 추천 도서를 받아보니 유독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가 발견되더군요. 가난, 불평등, 정의... 오늘 소개해드린 <가난 사파리> 외에 <가난의 문법> <노랑의 미로> 등 가난을 다룬 국내 저작들이 주목할 도서 리스트에 오른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하지만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가난을 증빙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주말에 뭐 읽지] 새해 책 읽기는 그 간극을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시사IN>×동네책방 북클럽 소식은 진행되는대로 다시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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