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SF #여행자의책 #김동인 기자

시사IN북 뉴스레터 #15

얼마 전 버스 안에서 중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듣게 됐습니다. 
긴 온라인 재택 수업 끝에 하게 된 등교 수업이 힘들다는 듯 한 아이가 "온몸이 쑤셔. 숙제는 ×× 많고. 이번 생은 망했다니깐" 하고 투덜대니 그 옆에 있던 아이가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그걸 몰랐냐. 난 세월호 때 벌써 알았다."

요즘 SF가 강세라고 합니다. 주목할 만한 SF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외국에서도 한국의 SF 소설 판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죠. 데뷔한 지 2년밖에 안된 SF작가 김초엽의 첫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10만 부 넘게 팔려나간 것도 최근 벌어진 '사건'입니다. <시사IN>도 이번주 발행한 최신호 커버스토리로 배명훈, 정소연, 이산화 작가가 쓴 팬데믹 SF 세 편을 소개한 바 있죠(아래 참조). 

유튜브 '겨울서점'을 운영하는 김겨울 씨는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 '지금 여기'가 아닌 '언젠가의 어딘가'에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SF인 것 같다고요. 세월호를 얘기하던 중학생은 '지금 여기'를 넘어 어떤 세상에 살고 싶었던 걸까요? 소개해 드리는 책들이 팬데믹 이후, 이곳 너머의 삶을 상상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mage by Pixabay


나는 충분히 사유하며 걸었을까

〈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이용현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자유로운 여행길이 닫힌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역마살을 친구 삼아 살아온 많은 여행자들은 팔자에 없던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세기 남짓한 자유여행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이처럼 통행이 뚝 끊긴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이럴 땐 책장 한구석에 꽂힌 여행기를 더듬어본다. 길 위에서 침묵을 벗 삼아 생각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혼자 떠나는 여행 속에서 느끼는 오만 가지 감정을 자유롭게 문장으로 옮긴다. 폴 서루는 이 분야에서 시조새 격이다. 50년 넘게 전 세계를 여행했고 수많은 여행작가의 북극성이 되어주었다.

〈여행자의 책〉은 그의 여러 저작 가운데에서도 꽤 독특한 작품이다.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기를 여행하는 책’이다. 다양한 여행작가의 텍스트를 자유롭게 부유하면서 여행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여러 여행기를 짧게 인용하면서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자의 환희란?’ ‘당신이 이방인일 때’ ‘얼마나 오래 여행하는가’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주제를 탐구한다. 그 덕분에 책 구성은 꽤 불친절하다. 정독에 적합하진 않다. 오히려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골라 읽기 좋다. 책장을 후루룩 훑다가 어느 페이지에 잠시 멈춰 텍스트를 응시해보길 권한다.

그렇게 한동안 이 책의 이곳저곳을 유영하다 보면 과거에 떠났던 여행을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충분히 사유하며 걸었을까?’ 
‘우리는 낯선 풍경을 편견 없이 바라본 게 맞을까?’ 
‘이방인으로 보낸 시간 속에서 충분히 겸손했을까?’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 내에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고 국경의 빗장도 가볍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젠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날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스스로 어떤 여행자인지 돌이켜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이 그 시간을 함께 버틸 수 있게끔 돕는 훌륭한 ‘영양제’ 구실을 하리라 확신한다.

김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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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박선민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정치를 하며 정치를 배웠다.”  

2004년부터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말하는 ‘국회 사용 설명서’. 처음엔 정치를 사회운동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입법권을 쥔 당사자가 되었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세 벽에 부딪혔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고 약자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들이 마지못해 합의한 ‘불완전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걸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입법부는 행정부와 달리 복수의 정당이 경쟁하며 공존하는 공간이다. 정치의 역할과 국회가 하는 일, 입법과 재정에 관한 국회의 권한, 국회에 대한 오해 등을 담았다. 의회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국회는 싸움과 갈등의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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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핵심은 돈에 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사람들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여성 어른들이 말했다. “너 정도면 매일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살아야 돼.” 
전업주부가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정확히 인식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구직 사이트에 접속하는 병이 생겼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한 가지다. 엄마들은 왜 온종일 가사를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가? 
답을 찾기 위해선 돈 얘기를 해야 했다. ‘집에서 논다’는 말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가사노동을 폄하하고, 한쪽 성에게 미루며, 보상받지 못하는 하찮은 일로 만들어온 내력의 배경엔 자본주의가 있었다. 돈의 권세가 높아지면서 돈을 못 받는 가사 노동자들의 지위도 점점 내려갔다.  
 
예언이 끝났을 때  
레온 페스팅거·헨리 W 리켄· 스탠리 샥터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확신에 찬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책의 서문은 1955년 12월에 쓰였다. 저자들은 ‘인지부조화 이론’을 연구하던 학자들이었다. 자신의 확신과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날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든 태도나 행동을 수정해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하려 한다는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독특한 믿음을 가진 종교집단에 직접 들어가 관찰하고, 연구하고, 기록했다.
‘날마다 현장에서 온갖 난관에 정면으로 맞닥뜨려가며 참여관찰 업무를 수행해준’ 많은 조교들의 노고가 뒤따랐다. 
자신이 철석같이 믿었던 것과 달리 세상이 망하지도 않았고, 외계인이 자신을 구해주러 오지도 않았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힌트는 책의 첫 문장에 나와 있다. ‘확신에 찬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들만의 채용 리그 
로런 A. 리베라 지음, 이희령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맞아요. 사실상 당신의 이력서를 고려조차 않는 거죠.”  

저자와 인터뷰를 한 대부분의 고소득 엘리트들은 저자가 어디 출신인지, 구체적인 동네 이름까지 묻곤 했다. 
당신은 디트로이트의 공립학교에서 스쿼시 선수를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코트가 없기 때문이죠(투자은행가 샌딥).” 
“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을 만한 사람들을 찾습니다. 공정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투자은행가 브랜든).” 
만약 회사에 소수집단 출신의 임원들이 거의 없다면, 소수집단 출신의 임원들의 자녀도 없을 겁니다(투자은행가 라이언).” 
“저는 법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능은 가르칠 수 없다는 명제를 믿는 사람입니다(로펌 파트너 로런).” 
사회학자인 저자가 고연봉을 주는 회사의 인사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그들만의 채용 현장’을 파헤쳤다.  
 

     디스 이즈 어 픽션 🌿

2020년 이후 격음이 사라진다. 비말이 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카타르시스'를 '가다르시스'라 발음하게 된 미래세계. 2020년의 '아가이브'를 수집하던 주인공은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에서 '그녀'와 마주치는데...

시사IN이 이번주 파격적인 커버스토리를 선보였습니다. 픽션이 커버스토리가 된 것은 창간 이래 처음일 듯한데요😄 배명훈, 정소연, 이산화. 세 명의 SF 작가는 코로나19 이후의 풍경을 어떻게 상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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