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등'한 관계에 대한 생각들

2022년 2월 세 번째 편지

마음을 평등하게 맞추기

사람들은 공평하고 평등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든다고 소리친다. 평등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기회의 평등, 조건의 평등, 결과의 평등이다. 사실 사회적인 의미로 평등이 개념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관계에서도 평등하려고 노력한다. 친구와도, 회사 동료와도 어느 정도 관계가 평등한 위치에 있길 원한다. 이성친구나 배우자와도 그렇게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적정한 선이 어딘지 알기는 어렵다. 아주 평등한 기준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기준을 찾기 위해 계속 밀당을 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런 밀고 당기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늘 그것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사실 그건 그리 복잡한 건 아니다. 아주 친한 친구와 만날 때도 늘 자연스럽게 결정한다.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날 때, 우리는 서로 동등한 위치다. 친구가 우리 동네로 한 번 오면, 한 번은 친구의 동네로 간다. 그리도 우리 사이에 특별히 불평등한 점은 없다. 친구와의 사이에서 가장 고려되는 건 아마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지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일 것이다. 특히나 연인 사이에서 누구의 감정이 더 큰지도 이런 관계에 큰 영향을 준다.

아주 친밀하고 좋아하는 관계라고하면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애쓴다. 이런 챙기는 마음은 서로가 좋아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기꺼이 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취향이나 취미라면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적은 이유는 영화 <모럴센스>를 보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인 정지후(이준영)은 성적 취향이 독특하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같은 팀 직원인 정지우(서현)에게 그 취향을 들키면서 둘 간의 이상한 관계가 시작된다. 사실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관계가 금방 깨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 속 지우는 그 상대방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호감'으로 만들어진 그 관계는 두 사람을 주인과 노예 연기를 하게 만든다. 얼핏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지우는 그렇게까지 해보는 것일까. 사실 연인관계도 아니었던 두 사람은 그 플레이를 하면서 어떤 '동등한' 느낌을 받는다. 그건 서로의 취향을 탐색해보고 이해해보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지우는 호감가는 상대인 지후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정말 진심을 다해 맞춰준다. 영화가 특별한 성적 취향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일반적인 취향이나 성향 같은 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 연인들이 이해해보려는 노력. 결국에는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평등'한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지향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연출한 셀린 시아마 감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연출하고 한 인터뷰에서 "영감을 나누는 평등한 사랑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화 속 엘로이즈(아델 에넬)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의 계급은 같지 않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위치에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느꼈을 때, 이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평등'해진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상대방을 그림에 담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의 두 사람은 마치 모든 것을 태울 것처럼 상대방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계급을 태워버리듯이.

현대에는 과거와 같은 귀족과 평민의 개념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층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해서 가까워지려면 그 보이지 않는 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럴 센스>에서 지후의 전 여친은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인물이다. 반면에 지우는 그런 지후를 이해하려 노력함으로서 두 사람이 어느 정도 '평등'한 위치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영화에선 가벼운 농담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소비되긴 하지만 영화는 그들이 서로 이해하며 평등한 위치에 서는 과정을 담은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을 담은 영화들에는 그런 과정들이 조금이라도 담겨있는 것 같다.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모럴센스>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두 영화를 같이 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모럴센스>는 가볍게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루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 두 영화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자체가 조금은 비슷하게 보였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평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 아마도 우리 모두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도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각자 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면서.

모럴센스 예고편

시간을 되돌린다는 생각들

가끔 시간을 돌렸으면 할 때가 있다.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10초만 시간을 돌린다면 넘어지지 않을텐데. 지갑을 잊어버렸을 때, 30분만 시간을 돌린다면 다시 지갑을 찾을 수 있을텐데... 삶을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가운데 돌리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시간 여행하는 상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후회'라는 감정이 생길 때 그렇게 다시 시간을 되돌리는 상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타임머신이 개발되거나 발견되지 않는 이상 과거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이것이 만고의 진리다.

영화 <리스타트>의 주인공 로이(프랭크 그릴로)는 계속 하루를 반복한다. 그는 원하지 않는데 계속 하루는 반복된다. 매일 아침 깨어나면 같은 날이다. 이미 우리는 <사랑의 블랙홀>에서 하루가 반복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또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죽으면 다시 살아나 하루가 반복되는 이야기도 보았다. 아주 최근작인 <프리가이>에서도 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된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모두 왜 이렇게 계속 하루가 반복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서사가 되고 긴장을 만든다.

하루를 반복한다고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 속에 갇혀 잘할 수 있는 것들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그런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똑같은 말을 하는 주변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길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것도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막 행동하게 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리스타트>의 로이 역시 그렇게 아무 의미없는 반복을 이어나간다. 자신을 죽이려 조용히 다가오는 킬러들과 싸우고 다른 길을 가려고 시도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어느 시점에서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을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가 반복되는 건 아내가 만든 어떤 기계 때문이고, 그것은 그와 아내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로이는 여러 번 죽으면서 조금씩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되고, 그 열쇠와 점점 가까워진다. 어쩌면 환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여러 번의 죽음과 깨어남은 그저 상황을 관망하고 내려놓게 만들지만, 작은 변화인 과거에 대한 후회가 만든 관계, 그 하나가 다시 열쇠를 찾아가게 만든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서로를 그리워하고 원하는 것은 항상 똑같지 않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그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정도 같은 위치에서 상대방을 보려고 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 그 소중한 어떤 것 때문에 영화 속 로이는 다시 몇 번의 하루를 반복한다.

우리는 계속 반복되는 일상에서 가까이있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 속 로이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보다 중점을 두었던 사람인데, 그로인해 그는 아내와 가족들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렸다. 그런게 매번 같은 일상을 지나면서 그렇게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루가 반복되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주인공들이 그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일종의 반전으로 영화 말미에야 제시된다. <리스타트>의 경우에도 비슷하지만 그 비밀이 아내에게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물론 그 자신의 깨닫는 것이 먼저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루를 계속 반복하는 건, 그러니까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는 것.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매번 자신이 만든 굴레 속에서 살다보면 영화 속 로이처럼 그저 그 상황을 즐기며, 적당히 맞춰주며 살게 된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조금 다른 발걸음을 한다면, 우리가 놓쳤던 무수한 관계들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자꾸만 하루가 반복된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건,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야 비로소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단순한 생각을 실재로 실행할 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지금 나도 무수한 후회를 하고, 다시 시간을 되돌아갔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다. 심지어 글을 쓰는 지금도 처음 글을 쓰는 시점으로 돌아갔으면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나의 시간을 흘러왔고, 쌓여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여러관계들도 그 모양을 완성시켜나가고 있다. 먼 미래로 시간을 되돌리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순 있겠지만, 또 다른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렇게 계속 지나간 것만 생각하기보다 뭔가 주변의 잃어버린 관계들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발걸음을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비록 영화 <리스타트>에서 그 일상의 반복을 우스꽝스러운 액션 영화에 담았지만, 그가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찾아야할 열쇠로 점점 다가가는 과정이 보기 좋았다.

리스타트 예고편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 <나일 강의 죽음> 에서 부유한 상속자인 리넷(갤 가돗)은 엄청난 부를 상속받았죠. 무척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전혀 행복하지 않아보인다. 그는 어떤 장면에서 포와로(케네스 브래너)에게 주변에 '돈 때문에 모인 사람'들만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돈이 많은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제대로 믿을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는 리넷은 참 외로워보인다. 화려한 파티와 초호화 유람선에서 큰 보석을 목에 걸고 가장 걱정없어 보일 것 같은 사람이 가장 외로워 보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주변에 어떤 돈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사업을 하던 그 사람은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은 부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고,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가까워지려한다는 것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그의 말엔 왠지 모를 외로움이 묻어있었다. 나도 그가 돈이 많다는 걸알기에 최대한 조금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아무래도 매번 밥이나 술을 사는 그에게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다. 어쩌면 관계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그런 친구가 있다면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 있던 그 사람처럼 영화 속 리넷도 돈을 떼어놓더라도 마음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헤메었던 것 같다. 그의 주변에서 유일하게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친구 재클린(애마 메키)은 리넷이 그의 남자친구와 만나게 되면서 잃어버린 관계가 되어버렸다. 엄청난 부를 상속받았지만 리넷은 마음에 솟아오르는 소유욕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만들어 채워넣겠다는 욕심이 그 파국을 불러온 것이다.

사실 리넷은 자신이 같은 위치에서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한 명은 친구 재클린이고, 다른 한 명은 약혼자 사이먼이다. 모두 리넷을 위했던 사람이다. 그 앞에서 돈 이야기는 일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듯이 영화 속 이 인물들도 돈 많은 사람 앞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돈을 보고 있는 시선을 숨길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인물들을 완전히 믿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진짜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어느정도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 있는 거리를 두게 된다. 그 거리감은 외로움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사람을 찾아 다니게 만든다. 그렇게 호화로운 파티를 하는 것도 그런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해도, 그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느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괴롭히지 않을까. 그럼 부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또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의 동물인 것 같다. 누군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그건 인간이 '외롭기 때문에' 나타난 반작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리넷이 그런 사람을 하나도 만나지 못해 게속 사람을 만나며 찾아다닌 것처럼, 우리 모두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동등한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 영화 <모럴센스>의 주인공들이 그런 상대방을 찾아낸것처럼 <나일 강의 죽음>에서의 리넷도 그런 사람을 현실에서 찾아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픽션 안의 이야기일뿐,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에서는 그렇게 이해받고 동등하게 바라봐 줄 사람을 만난다는것이 마냥 쉽지 많은않다. 돈이 많건 적건, 외모가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관계의 조건과 위치는 어쩌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일 강의 죽음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