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진보정치 #프랜시스후쿠야마

[주말에 뭐 읽지]  2021-01-21 #41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트럼피즘은 끝나지 않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사람은 가도 사상은 남는다고 했던가. 트럼프는 졌지만 트럼피즘(Trumpism)은 지지 않았다. 트럼피즘은 일시적 현상으로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도대체 왜 이처럼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쓴 이유다. 미국의 정치제도가 쇠퇴하고, 스스로 개혁할 역량을 상실한 결과로 트럼프 현상을 진단한다. 그는 미국 정치의 현실을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명명하는데, “상대 정파의 정책을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가 나타나고, 조직력을 갖춘 이익집단들이 다수의 행동이나 의지를 가로막는 현상”을 뜻한다. 비토크라시에 신물이 난 탓에 이런 교착상태를 혁파해줄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갈망으로 트럼프가 등장했다는 얘기다.  

20세기의 정치는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평등의 좌와 자유의 우가 대결하는 구도였다. “진보 정치는 노동자와 노조를 중심으로, 그리고 더 나은 사회보장과 경제적 재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반면 우파는 정부의 크기를 줄여 경제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부문을 확대하는 것에 주력했다.”
21세기 들어 정치를 가르는 핵심 이슈는 경제에서 정체성으로 바뀌었다. “좌파는 경제적 평등의 확대보다는 흑인, 이민자, 여성, 히스패닉, 성소수자, 난민 등 다양한 소외된 집단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힘을 쏟아왔다. 한편 우파는 대개 인종이나 민족성 또는 종교와 연결된 전통적인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애국자로 스스로를 재정의한다.” 경제적 고통은 존엄성의 상실로 다가온다. 사회경제적으로 퇴보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인식이 바로 그랬다.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킨 미국의 민족주의 부흥에 가장 강력한 힘을 실어준 요인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는 기분을 느낀 국민들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진보세력의 실패에 대한 분석이다. 미국의 진보는 점점 더 소외된 더 작은 집단들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수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거시적 사회경제 변혁의 비전을 상실하고, 그 변혁의 가능성이 소멸되는 과정에서 진보는 정체성 정치와 다문화주의를 선택했다. 노동자 계층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후쿠야마의 지적은 통렬하다. 진보에게 정체성 정치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회피하는 ‘편리한 대용물’이었다. “오늘날 진보 좌파에게는 산업 자동화가 야기하는 대량실업 문제를 해결할, 또는 기술 발전으로 모든 미국인이 겪을 수 있는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할 전략이 없다.” 진보의 정치적 무능이 트럼피즘을 낳았다. 우리는 괜찮을지 걱정이다.

이철희(방송 진행자, 전 국회의원)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아테네 팬데믹
안재원 지음, 이른비 펴냄  

“역병은 사회 질병이다. 사회적으로, 나아가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하지만 코로나19는 인간 사회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전염병이 아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과거의 경험에서 힌트를 얻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기원전 430년 그리스의 아테네 역병 사례를 소개한다. 코로나19가 그렇듯 아테네 역병은 개별 인간의 생존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통합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책에는 투키디데스,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등 사상가들이 역병과 사회를 성찰한 방식이 적혔다. 아테네 역병 시기에 쓰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해석이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이 작품이 국가적 위기 때에 필요한 리더십의 전형을 제시한다고 본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정치야말로 국난을 극복하는 밑바탕이라는 것이다.
 
 

시장의 속성
레이 피스먼·티머시 설리번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용 약관’을 간단명료하게 기술하는 설명서.”  

구글과 우버를 보며 우리는 ‘기술’이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술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경제학 연구에서 출발한 창조적 ‘이론’들은, 기술 못지않게 혁신과 통찰을 이끈 중요한 동인이다.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는 레이 피스먼 교수와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의 티머시 설리번 상임이사가, 2차 세계대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나온 가장 중요한 경제학 논문을 선별해 풀어낸 책이다. 저자들은 시장이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왔다고 인정하면서도 ‘시장혐오주의’와 ‘시장근본주의’ 모두로부터 거리를 둔다. 다만 “시장에 의해 사용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의 작동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
백경학 외 14인 지음, 부키 펴냄  

“돌봄을 받는 객체에서 돌봄을 주는 주체로 거듭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농사는 힘들고 거친 일이다. 돈을 많이 벌기 어렵다는 인식도 있다. IT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팜’은 다르다고 한다. 자동 프로그램을 통해 한 사람이 수십 명 몫의 일을 할 수 있다. 노련한 농부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팜에서 일하는 것은 가능하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숙련이 줄어든다는 것은, 보통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지난 10월 착공한 푸르메소셜팜은 이 생각을 뒤집었다. 높은 수익성과 안전한 환경에 주목해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 책은 이 전례 없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과정을 담았다. 소개된 일본과 유럽의 유사 사례를 보면, 장애인 일자리와 첨단 산업의 결합이 그리 파격적 사고의 전환은 아니다. 더불어 향후 불거질 기술과 인간의 공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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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창비 펴냄  

“허탈하다. 그때는 안 됐지만, 오늘은 된다.”  

죽었다던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 서류상에. 무연고사한 아버지는 죽어서도 구만리 같은 딸들의 앞길을 막곤 했다. 계단 청소와 대리운전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20대 진아에게 세상의 문턱은 때로 너무 높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고, 이 고비만 넘으면 무언가 있을 것처럼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꽤 듬직해 보여 연인이 된 단골손님도 ‘믿을 놈’은 아니었다. 50대 수진에게는 견뎌온 시간을 곱씹을 사건이 벌어진다.
진아와 수진의 하루하루가 교차로 펼쳐진다. 고요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곱씹어 생각할수록 ‘평범한 일상’은 아니다. 매일매일이 고비고, 발아래는 풍랑이 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게 ‘삶’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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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트럼프!’
바이든 새 대통령 취임식에 끝내 나타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나오는 말입니다. 트럼프를 지지하건 비판하건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네요. 찬반 양쪽 진영의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은 또 하나 있습니다. 트럼프는 사라졌지만 ‘트럼프 시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입니다😮
 
이를 두고 오늘 소개해 드린 책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진보의 정체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 달리 표현해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고 느끼게 된 사람들’이 트럼프 시대를 불러들였다고 진단합니다. 그런가 하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또 다시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느낀 ‘모욕의 감정’에 주목하더군요. 승자들이 오직 자기가 잘나서 성공한 것인 양 뻐기는 사회에서 굴욕감을 느낀 이들이 트럼프식 포퓰리즘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라고요😞.
 
존중, 모욕, 굴욕...이런 감정 언어들이 심리학을 넘어 사회학·정치학의 영역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 흥미로운 현상인 듯합니다.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2018년 발표된 논문에서 김진욱&허재영은 한국의 ‘태극기 부대’를 만든 핵심동력이 모멸감이라고 분석한 바 있죠(<인정을 위한 저항-태극기 집회의 감정동학>).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면서 누적된 노년층의 모멸감😡이 이들을 태극기 집회로 이끌었다는 해석이었는데요.
 
다시 시작된 정치의 계절. 뉴스를 클릭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파당 정치에 휩쓸려 자기 내면의 분노와 증오를 상대에게 쏟아붓는 사람들을 (맨정신으로) 지켜본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죠. 그렇다고 외면할 일은 아닙니다. '거대한 변혁의 비전'이야 정치권이 감당할 몫이겠지만 우리 또한 소외된 이들의 누적된 감정을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탐색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한국에 ‘트럼프 시대’가 열리는 것은 막아야 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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