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편지 : 시고 쓴맛, 감칠맛, 노포

얼마 전 프릳츠에서 바리스타님의 추천으로 와인향이 나는 커피를 마셨어요. 라즈베리와 무화과 향을 가진 그 커피는 첫 모금은 시고, 쓴맛과 떫은맛 마지막엔 단맛까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문득 그 커피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고 홉이 강한 맥주도 즐겨 마시는 편이에요. 인체는 독이나 상한 것을 구분하기 위해 쓴맛과 신맛은 본능적으로 거부한다고 알고 있는데, 쓴맛이 나는 커피나, 홉이 진한 맥주, 혹은 사워비어나 산미가 강한 커피는 어쩌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걸까요? 의도적으로 그 맛을 정복한 것인지, 진화의 결과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이 질문의 답을 알고 계신다면 냠냠편지 답장하기로 제게 알려주세요.)

이번에 추천할 곡은 많은분들이 사랑하는 The BeatlesStrawberry Fields Forever입니다. 이 곡은 템포와 키를 다르게 두 개의 테이크로 녹음한 곡을 섞어 하나로 만든 곡인데요. 1분쯤을 자세히 들어보면 미묘한 트랙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시고 쓴맛처럼 익숙하지 않은 맛이 갑자기 등장해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정복하고 나면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또 찾게 되는 노래랄까요!
🎧 The Beatles - Strawberry Fields Forever

구독자님, 구독자님께서도 기나긴 여정의 시작은 즐거웠으나 그 과정은 꽤나 고됐던 경험, 있으신가요? 예컨대 기쁜 마음으로 입학한 대학교에서 졸업학점을 채우는 지난한 과정이라던가... 또는 저렴한 가격에 구한 동남아행 티켓으로 신나게 비행기를 탔는데, 꽉 끼는 좌석 탓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다리가 저릿저릿한 거죠. 저는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낙관주의자도 아니라서, 새로운 모험을 떠나야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고 일단 눈앞에 펼쳐질 고비를 상상해보는 편이에요. 



이러한 습관은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형성되었는데요, 여행길에 화장실이 급해서 차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상황들이 꽤나 자주 있었거든요. 몸을 배배 꼬게 만드는 요의를 참으며 간신히 도착한 휴게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화장실 뿐만이 아니었어요. 

알감자 옆에 떡볶이, 그 옆에 호두과자, 그 옆에 델리만쥬, 그 옆에 소떡소떡을 팔고 있는 마음 푸근해지는 광경!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앞자리에서 운전하던 엄마가 “휴게소 화장실 들를까?” 하고 물어보면, 가끔은 화장실이 급하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던 저는 어쩌면 태생부터 먹짱이었나 봐요. 



요새는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을 때, 기왕이면 걱정보다는 기대를 충분히 하는 편이 더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속도로가 꽉 막혀서 지쳐있던 엄마에게도, 화장실이 급해 괴로웠던 어린 동구리에게도 입안 가득 행복을 주었던 휴게소 음식이 있었듯, 삶의 여정 틈틈이 우리를 분명하게 기다리는 사소한 행복들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봐야겠어요. 

구독자님도 멀찍이 보이는 휴게소 표지판에 마음이 두근거리시나요?

시간이 지날 수록 입맛도, 거리도, 음식 역시도 변하기 마련이지요. 높아지는 입맛과 화려해지는 거리, 새로운 음식들도 좋지만, 그럴 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이 더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구독자님께 50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을 소개해볼까 해요.

제기동 홍릉각, '육미짜장'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첫 번째 가게는 5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베테랑 어르신께서 운영하시는 중국집, 제기동 홍릉각입니다. 연세가 일흔이 넘으셔서 11시 30분부터 16시 30분까지 5시간 동안만 운영하시고, 가끔 건강상의 이유로 휴업하실 때가 많지만 항상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에요.

제기동 홍릉각, '육미짜장'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개인적으로 이 곳의 육미짜장을 참 좋아하는데요. 양파와 고기를 잘게 다져 볶아낸만큼, 짜지 않고 본연의 감칠맛이 참 매력적인 짜장입니다. 짜장만큼이나 유명한 해물짬뽕은 특유의 시원한 맛 때문에 낮술하러 온 사람이 너무 많아져 오후 2시부터 판매한다니, 얼마나 맛있는 곳인지 가늠이 가시지 않나요?

답십리 성천막국수, '비빔막국수'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두 번째 노포는 평양남도 성천군에서 내려와 1966년부터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성천막국수입니다. '막국수'하면 족발 먹을 때 함께 먹는 그 자극적인 막국수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성천막국수의 비빔막국수는 그 비주얼부터가 달라요. 메밀면참기름, 그리고 다대기끝!

답십리 성천막국수, '비빔막국수'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참기름 향이 엄청난 것에 비해 맛은 전혀 기름지지 않아 초딩입맛인 전 조금 실망했었지만, 특유의 감칠맛 덕분에 어느새 싹싹 비우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여긴 정말 마성의 국수구나' 싶더라구요. 막국수계의 평양냉면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계속 생각나는 맛이라, 한 번쯤 찾아가 보시면 구독자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라 믿습니다.

성북동 국시집, '국시'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곳은 여러 방송은 물론, 허영만 화백님께서 다녀가신 곳으로도 유명한 성북동 국시집이에요. 반죽부터 칼로 자르는 과정 전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칼국수가 메인인데요. 너무나도 쉽게 끊어지는 풀어진 면 때문에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집이랍니다.

성북동 국시집, '수육(소)'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하지만 이 곳의 문어와 수육은 절대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18,000원에 13~15점 정도 밖에 안 나와 당황했지만, 한 입 먹자마자 납득했을 정도니까요. 심지어 익힌 해산물을 싫어하는 저인데도요!

성북동 국시집, '문어(소)' / 출처: AlexTheFood Instagram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노포들을 보면 '얼마나 맛있으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잘 될 수 있었을까' 부러운 마음이 컸는데, 요샌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버텨오셨을까'하는 꾸준함에 대한 리스펙이 생기는 거 있죠? 하루하루 안정적인 맛을 잡아가며 조금씩 나아지고, 알음알음 알게 된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려면, 필연적으로 성실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업장을 운영해나가야 할테니까요. 어쩌면 식당뿐만 아니라 우리도 오래도록 사랑 받기 위해서는, 꾸준히 본인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것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필연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구독자님은 무엇을 위해, 어디에서 어떤 것을 다듬고 계신가요? 냠냠편지 답장하기를 통해 편하게 공유해주세요. 구독자님의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6월 7일 월요일에 시즌2 마지막 편지와 함께 찾아뵐게요! 그 때까지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구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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