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60대 암투병중이던 엄마, 40대 희귀병을 앓고 있던 큰 딸,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해왔던 작은 딸... 2년 넘게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수원에서 살았던 이들, 그렇지만 월세만큼은 밀리지 않으려 했던 그녀들... 이달초 집주인은 이들로부터 중환자실을 오가는 등 의료비 문제로 월세 납부가 늦어질 수 있다는, 그래서 죄송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죽음으로 발견된 그녀들... 그녀들을 기억해줄 가족의 부재로 결국 무연고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 사건은 8년 전 송파 세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머니와 큰딸은 병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작은딸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신용불량 상태여서 생활비와 병원비는 카드 빚으로 충당해왔던 그녀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던 사건말입니다.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있는 사회란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이야기합니다. 모욕은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다루는 것으로, 이것의 반대 의미는 “인간에 대한 존중”입니다. 한마디로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가 곧 품위 있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는 사람을 가리고 선별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도의 존재 목적은 사라지고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는 경험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한 순간, 제도에 도움을 청해보지만 기준에 맞지 않아 거절당하는 경험은 모욕입니다제도에 도움을 청한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이들이 능동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 또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며 그들을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마지노선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에는 환대란 없습니다. 팍팍한 순간, 어느 곳에도 기댈 수 없었던, 그래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해왔던 익명의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세상은, 적어도 힘들고 어려운 순간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제도가 마련된 사회였을 겁니다. 가난한 이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가난한 이들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더 이상 익명의 존재로 불리우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없는 세상, 사회복지사인 제가 꿈꾸는 사회입니다.

익명의 존재로, 이름조차 불리우지 못하고 돌아가신 많은 분들 모두가, 가난과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그리고 그곳에서는 더 이상 쓸쓸하고 외롭지 않길 기도합니다.

부   록  
수원 세 모녀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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