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의 12일간 촬영에 대해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오늘의 에디터 식스틴입니다.


이번 달 한국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설 즈음부터는 매서운 추위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죠? 저는 1월 절반 정도를 일본 도쿄에서 보냈습니다. 영화 촬영으로 1월 4일부터 16일까지 도쿄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진 촬영으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정신 못 차리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레터를 써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도쿄에서의 12일간의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 오늘의 에디터 : 식스틴
12일은 꼭 두 달 같더군요.
오늘의 이야기
1. 계획될 수 없음을 인지하는 자세
2. 전문 무용수가 아닌 무용단체 KEDAGORO 이야기
3. 무용단체 'KEDAGORO' 시모지마 레이사 인터뷰

🎬 계획될 수 없음을 인지하는 자세

도쿄에서 12일간 진행된 프로젝트는 동아시아 현대무용수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일환입니다. 일본의 현대무용수 시모지마 레이사와 그녀가 만든 무용단체 ‘KEDAGORO(케다고로)’의 무용극 <Because Kazcause>가 만들어지고 도쿄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선보이는 과정을 담았죠.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어디서 어떻게 계획된 것일까요?

(출처: The Japan Foundation国際交流基金)

돌이켜보면 정말 운명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시모지마 레이사를 만난 것은 2020년이었죠. 벌써 3년이 되었군요. 2020년 연말 우연한 기회에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되었던 국립 현대무용단이 기획한 무용극 <우리가족출입금지>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족출입금지>는 가족이라는 주제로 아시아의 현재를 조망하는 무용 프로젝트입니다. 안무가 이미경, 시모지마 레이사, 퀵쉬분이 참여했고, 총 세 작품이 선보여졌습니다. 시모지마 레이사의 작품 <닥쳐 자궁>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도 이때였죠. <닥쳐 자궁>은 “나는 어머니 몸속에 자궁을 두고 왔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엄마의 사랑을 받는 생명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 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닥쳐 자궁>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분열과 단절을 극화시켜 보여줍니다. 기저귀를 찬 무용수들은 얼굴을 괴상하게 구기고, 욕을 내뱉기도 하고, 기괴한 자세로 무대를 휘젓습니다. 스펙타클한 사운드는 무용의 한 요소로서 무용수들을 조종하는 주문처럼도 들리죠. 

(출처: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

그녀의 무용극을 본 뒤 저는 그녀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저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온라인 미팅을 가진 뒤 우리는 작년 6월경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첫 만남을 가졌죠. 그녀는 저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이자 데뷔작의 무용감독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한 차례 만남이 끝났고, 제게는 9월경 열리는 그녀의 무용극 <닥쳐 자궁>의 재연 무대를 찍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총 6회에 걸쳐 무용수들의 연습 과정, 리허설 그리고 본 무대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결정했죠. 동아시아 무용수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요. 


저는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녀는 시모지마 레이사 자신과 그녀의 무용단체 ‘KEDAGORO(케다고로)’를 카메라로 담는 데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1월경 그녀에게 연락 한 통이 왔습니다. 우리는 온라인 미팅을 잡았고, 그녀는 그녀의 무용단체의 중요 공연이 1월 도쿄에서 열린다고 알려왔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12일간의 촬영을 그것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다행히 데뷔작으로 받은 상금이 있었고, 급히 예산을 편성하여 일본 촬영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렇게 1월 4일 연출자인 저와 촬영감독은 도쿄로 향했습니다.

KEDAGORO 무용팀

🤝 전문 무용수가 아닌 무용단체 KEDAGORO 이야기

KEDAGORO는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이들로 구성된 무용단체입니다. 시모지마 레이사를 중심으로 같은 대학에서 수학한 이들이 모여 만들었죠. 무용단체에서 시모지마 레이사를 제외하고는 전문적인 무용을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J.F. Oberlin 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죠. 


무용단체는 2013년 결성되어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기도 하였어요. 올해 도쿄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선보인 <Beacuse Kazcause>는 일본 순회공연 중 2번째 공연으로 작년 11월 일본 아키타에서 첫 번째 공연을, 올해 3월 시즈오카에서 마지막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KEDAGORO 무용팀

그중에서도 도쿄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열린 무대는 시모지마 레이사에게도 굉장히 뜻깊은 자리이죠. 코로나19 이전 쇼케이스를 통해 선보인 <Because Kazcause>는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인해 계획된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작품은 몇 년간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시모지마 레이사는 그 기간 동안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자신의 역량을 길러왔고, 결국 작품은 2022년 11월 아키타를 시작으로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도쿄 모리시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연습은 매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습니다. 무대에는 네개의 파이프 기둥이 설치되어 있고, 기둥은 바둑판 형태로 짜여진 파이프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무용수들은 이 파이프 위로 애써 올라가고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출처: KEDAGORO)

<Because Kazcause>는 일본에서 꽤 유명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호스티스였던 여성 후쿠다 카즈코. 그녀는 동료 여성 호스티스를 살해하고 15년간 도주를 하다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고 경찰에 잡히게 됩니다. 그녀는 도주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성형을 감행했고 일본 미디어는 그녀를 7개의 얼굴을 가진 여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무용극에는 후쿠다 카즈코의 역할처럼 보이는 7명의 여성 무용수가 등장합니다. 그녀들은 무대에 마련된 여러 소도구. 예를 들어 옷걸이, 책더미, 본인들이 입고 있는 치마, 문 등을 이용해 천정에 설치된 파이프 위로 도망칩니다. 그녀들은 때론 천장에 올라가는 데 실패하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응원하고 소리치며 종국에는 천정으로 오르는 데 성공하죠.

📢 케다고로 시모지마 레이사 인터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나요?

- 네. 지금 30세입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2주간 격리하거나, 해외에서 공연할 때 그 무대만 신경 쓰는 것 말고도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 굉장히 행복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 쇼케이스를 할 때만 하더라도 2022년에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잘되지 않았어요. 코로나 시기에 “어딘가로 도망가지 싶을 때 어디로 가면 될까? 하지만 역시 지구는 지구다"라고 생각하면서 시작된 것이 이 작품입니다. 인간 각자에게는 도망칠 수 있는 각기 다른 수단과 방법이 있습니다. 


최근 해외에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들이 있었는데, 일본에 살고 일본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 것 같나요?

- 한국에 갔을 때 한국의 지원제도나 환경에 굉장한 질투를 느꼈습니다. 한국의 현대무용단을 만나면서 일본 무용계와 비교를 하게 되면서 질투심을 느꼈죠. 일본의 무용계는 왜 이럴까… 지금은 일본에서 떨어져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역시 생각을 고쳐서 “그럼 일본의 무용계는 어떻게 부흥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KEDAGORO 무용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나요?

- 도쿄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무용수들에게는 “이 무대에 이 무용극으로 참여해서 다행이다"라는 기분이 들면 좋겠습니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어떤 내면의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나요?

- 역시 하나의 공연을 끝내서, 끝낸다는 건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여러 스태프가 모여서 공연이 움직인다는 것. “역시 인간은 멋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지금 인생에서 후회하는 게 있다면요?

- 춤을 만나 버린 것 (웃음). 이건 좋은 일이에요. 30살이 되어서 (웃음).


인생은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나요?

- 행복이 뭘까요… 한가함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고향은 어디인가요? 거기서 생활은 또 어땠구요?

- 가고시마에요. 사쿠라지마라는 산의 모래는 굉장했습니다. 야생적인 생활이었어요. 


그럼 지금 도쿄에서의 생활은요?

- 18살 대학교 1학년 때 도쿄로 왔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할지라도 돌아가지 않을 결심으로 도쿄로 왔어요. 어떤 결심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케다고로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 케다고로 전에 다른 무용팀에 있었어요. 근데 인간관계가 잘 안 풀려서 결국 해체하고 지금 케다고로를 만났어요. 그때는 댄스를 관둘까. 아니면 대학을 그만둘까 생각했었는데 케다고로를 만나게 됐죠. 2013년 만들어졌으니 벌써 10년이에요. 그렇습니다. 

KEDAGORO 무용팀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통역가님을 붙잡고 무용수들에게 던질 질문을 일본어로 녹음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어눌한 일본어를 또박또박 말하며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죠.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무용수 10명과 대화를 나누었고, 동시대를 살아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 기억은 제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기억일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운명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저 만남과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운명에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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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공개된 M83의 뮤직보디오는 Yann Gonzalez가 연출한 작품입니다. 영화 <나이프 + 하트>로도 유명하죠. 저는 예술영화 OTT인 Mubi에서 작품 <Hideous>를 매력적으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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