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쯤이면 다들 휴가를 다녀오셨겠죠? 요식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다보니 남들 쉴때 안/못쉬는 사람이 되어서 휴가나 연휴에 대한 감각이 좀 없기는 하지만, 이쯤이면 다들 휴가를 다녀오는 것 같더라고요? 구독자님은 어디로 휴가를 다녀오셨나요? 바다? 산?

저도 짧은 여름휴가를 다녀왔어요. 밥도 먹고, 몸도 굽고, 고기도 굽고, 술도 먹고, 소금물에 몸도 좀 담그고, 차도 마시고. 주말여행에 가깝긴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바다에서 이틀을 꽉 채워 논 끝내주는 휴가였답니다. 바다에 자주 갔지만 해수욕을 해본건 정말 오랜만이어요. 보통은 다이빙을 하거나, 서핑을 하니까 그냥 맨몸으로 들어가지는 잘 않거든요. 근데 이번엔 바다로 맨몸으로 달려들어가봤어요. 저는 풀장에서 하는 수영을 잘 못하는데, 바다수영은 꽤 하는 편이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냐.....하면 자유형 접영 이런 것은 전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잘 돌아다녀요. 개헤엄 비슷한 것을 하면서 😂 

동해로 가는 길에 길가의 나무를 보니까 벌써 밤송이가 초록색으로 맺히고 있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니 은행나무에 은행이 맺힌 것도 보았고요. 맹렬한 기세로 피어나던 능소화의 기세도 한 풀 꺾여있고. 더위와는 무관하게 여름이 정말 끝나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여름을 보낼 줄비가 되었어! 라고 이야기하려다가 보니 아직 먹지 않은 여름밥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강된장은 사실 계절을 타지 않는 음식인데도, 유독 여름이 잘 어울리는 메뉴입니다. 국물을 바특하게 잡고 바글바글(하지만 약간 빠글빠글에 가까운 느낌으로) 끓여내기는 하지만, 먹을 때는 좀 식혀먹어서 일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머리 속으로 여름밥상을 떠올리면 강된장에, 나물반찬, 찐 양배추 같은 것들이 우르르 떠오르기는 합니다. 제가 충청도와 강원도를 오가며 자란 시골애라 더 그럴 수도 있을까 싶고요. 

강된장은 약간 된장계의 약고추장같죠. 입맛살리는 치트키랄까! 보리밥에 강된장 조금 넣고 쓱쓱 비벼도 좋고, 깡장처럼 아주 빡빡하게 끓여서 양배추나 호박잎쌈에 곁들여도 좋고요. 여름엔 꼭 한 번씩 이 강된장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또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일단 뭐든 넣어서 끓이면 된다는 점이에요. 마침 좀 해치워야 할 채소들이랑 버섯이 많아서 여름집밥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강된장에서 제일 중요한건 '된장'이니까, 일단 된장부터 만들었어요. 요리 할 때, 특히 한식을 할 때는 홈퀴진 이윤정님의 레시피를 주로 참고하는 편인데요. 이번에도 윤정님의 지식을 조금 빌렸습니다. 장이 들어간 요리를 할 때 사실 한 종류의 장만 써서는 맛이 잘 나지 않거든요. 서로 가진 맛의 스펙트럼이 달라서 여러가지 장의 맛을 중첩시켜가면서 원하는 맛을 완성해야 해요. 강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된장이 주재료지만 고추장도 들어가줘야 하구요, 된장도 집된장(조선된장)과 시판된장(양조된장)을 섞어서 사용해요. 

집된장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집에서 만든 된장은 아니고요 🥹 (작년에 사실 된장 집에서 만들어봤는데 팡이팡이 친구들이랑 동거만 하게 되었던 슬픈 사연) 시판되는 된장 중에 집된장의 맛을 가진 된장을 사서 씁니다. 저는 샘표 토장을 써요. 여기에 파랑 청양고추를 좀 다져 넣고, 랩을 씌워 한쪽에 치워두었습니다. 양념들은 아무래도 만들고 좀 둬야 서로 맛이 엉기니까요. 좋은 시간 보내렴. 

냉장고를 뒤져보니 일단 버섯이랑, 거의 죽어가는 가지, 양파, 애호박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지만 😗 강된장의 자격을 얻은 애들은 얘들 뿐이네요. 신나게 칼질을 하다 깨달았어요 오늘도. 사진 안찍었다....하지만 다시 하긴 귀찮아! 그냥 이대로 진행합니다. 다행히 썰 채소가 많아서 사진을 모음으로 사용하며 스무-스 하게 넘어갈게요.

 강된장에는 익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채소나 잎채소는 안어울리고요, 양파, 호박 이런 약간 무른 듯 한 채소가 잘 어울려요. 하지만 두부!! 두부만큼은 빠지면 안되죠. 두부 없는 강된장은...으으 안돼요. 그건 제 세계에서는 불법이에요. 소고기가 들어가면 더 맛있지만, 해동하기 귀찮기도 하고, 여름 강된장은 맛이 좀 가벼워야 하니까 패스입니다. 자, 두부까지 다 썰었다면 이제 강된장을 끓이러 가봅니다. 

바로 그냥 물/육수랑 양념이랑 채소 넣고 끓여도 되지만 저는 뭐든 한 번 볶는걸 더 선호해요. 손이 한 번 더 가면 그만큼 맛있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강된장은 특히나 멋진 친구와 함께하는 식사에 올라갈 강된장이었거든요. 든든하고 맛있게 먹고 나면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이 남아있을거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을

다해 요리하고 싶었어요.

뜨겁게 달궈진 뚝배기에 식용유를 두르고, 두부를 제외한 채소를 모두 넣어 볶았습니다. 색이 좀 날 때 까지, 하지만 눌어 붙지는 않도록. 바닥을 잘 긁어가며 채소를 볶았습니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채소가 어느정도 색이 나면 두부랑 물이나 육수, 그리고 양념장을 넣어 끓입니다. 사실 평소같으면 물을 넣었을텐데, 며칠 전에 쓰고 남은 멸치다시 육수가 냉장고에 남아있었어요. 일단 그래서 들이붓고, 양념장도 넣어서 잘 풀어서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근데 냉털 하다가 육수를 좀 많이 넣어버린 탓에, 아무래도 생각보다는 좀 더 끓여야겠네요. 

근데 뭐랄까, 저는 늘 강된장을 제대로 끓이는데 실패했었어요. 아무리 끓여도 그 바특한 느낌이 안 산다고 해야하나? 물기가 줄어들지를 않는거에요. 채소에서 계속 물이 나와서, 결국 그냥 작은 된장찌개같은 느낌으로 끝나버리곤 했어요. 도대체 뭘 넣어야 그렇게 빡빡하게 끓여지는거지?! 식당맛의 비밀은 뭐지!! 했는데, 어딘가에서 갈은 감자를 넣으면 된다는 글을 보고, 싹이 퐁퐁 샘솟고 있는 묵은 감자를 다용도실에서 구출해 강판에 벅벅 갈았습니다. 

그리고! 끓고 있던 강된장에 투하했더니!! 구독자님 저 질감 보이세요? 전분물을 푼 듯한 차르르한 윤기! 저거였어요. 제가 원했던게요. 물기가 없는 느낌은 아니면서도 빡빡하게 엉긴 강된장과 채소들! 드디어 강된장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었네요. 저대로 강된장을 조금 더 끓여서 맛을 내고, 불에서 내렸습니다. 사실 좀 더 식혀서 먹었어야 하는데, 배고파서 앗뜨앗뜨하면서 그냥 먹기로 했어요 😂

짜잔! 여름 밥상 완성입니다! 자 구독자님 이 대목에서 궁금하시겠죠. 분명 강된장만 끓이고 있지 않았어? 언제 반찬을 다 한거야 밥아저씨야 뭐야?! 호호 저는 손이 빠르거든요 (자랑맞음) 강된장이 끓는 동안 남은 두부와 가지를 부치고, 같은 팬에 계란말이까지 빠르게 말아버렸답니다. 가지랑 두부에는 간단하게 간장+식초+다진마늘+물만 더한 양념장을 끼얹고, 냉장고 속의 밥을 데운 후에 냉 콩나물국을 곁들였고요. 콩나물국은 사실 지난주의 황태해장국을 끓이고 남은 거거든요. 철저히 냉장고 사정에 따라 만들어진 밥상인 셈이네요 지금 보니까 하하하하😂

호박잎을 쪄서 곁들였으면 더 좋았을걸, 올해 호박잎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일까, 너무 더워서일까. 2만원을 훌쩍 넘긴 사과처럼 수상한 여름이에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차린 여름 밥상입니다. 

강된장은 약간 식었을 때, 들기름을 넣어 비벼먹는게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유로 참기름보다는 들기름과 잘 어울립니다. 이런 부분들을 설명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맛보는 것이 제 커리어의 포인트겠다고 생각합니다만은- 이렇게 강된장 끓이면서 할 이야기는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보리밥에 약간 식은 강된장, 그리고 들기름. 이 조합이면 두려울 것이 없죠. 뭔가 메뉴 하나하나에 계절감이 있는 것은 아닌데, 유독 여름의 밥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과,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과, 위로하고싶은 사람과, 위로받고싶은 사람이 모두 함께 하는 식탁에 어울리는. 정말 여름방학의 끄트머리같은 상차림. 여름입니다. 이게 정말로 여름이구나. 어떤 것의 끝자락에서야 알게 되는 것이 그것의 진짜 본모습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여름의 진짜 모습인가봅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네요. 처서와 함께 끝이 없는듯했던 이 더위도, 이 여름도, 모두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계절을 맞을 준비를 이제 하라는 듯 말이에요. 구독자님, 여름이 끝나가고 있어요. 정말로요. 

🔹 양념장

집된장 1t

시판된장 1t

고추장 1t  

다진 마늘 1t

(있다면) 다진 대파 1t

 

양파/호박/버섯 등의 채소 원하는 만큼

두부 1/3모

감자 1/4개 

물/육수 100ml

식용유 1t

* 혹시 다시마가 없다면 물에 연두 1/2t를 타서 간단한 버전의 육수를 만들어 사용해도 좋아요  

두부를 사러 갔다가 눈에 들어온 제품인데요, 5000원 가까이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좀 가격대가 있어서 평소같으면 사지 않았을텐데 할인을 하길래 사보았어요. 비교도 해볼까 하고요. 근데 세상에, 너무 괜찮네요! 맛도 괜찮고, 두부랑 다른 채소도 많이 들어있어요. 비빌때 들기름만 조금 더 넣어서 먹으면 딱일 것 같아요! 양배추를 쪄서 같이 먹어도 잘 어울릴 것 같고요. 찰보리밥이 아주 잘 어울리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제가 집에서 끓인 강된장 재료 가격도 한 5000원쯤 할 것 같아요 😂 요즘 채소가 워낙 비싸야지.... 정말 시판 제품들이 끝없이 발전하고 있군요. 강된장 끓이기는 좀 귀찮은데, 그래도 여름 기분은 내고싶다면 이 제품을 추천할게요! 

아, 이번주에는 공지가 있어요. 먹는 일에는 2000%의 진심의 발행일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바뀝니다!

원래 금요일 12시에 레터를 발송했던 이유는 구독자 여러분이 이 레터를 읽고 나서 주말의 메뉴를 정하고, 퇴근길에 식재료를 구매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해서였어요. 하지만 올해 레터 발송을 재개하며 제 마음속의 구독자님들이 이미지가 조금 변했습니다. 주말 오전에 여유롭게 레터를 읽으며 쉬다가 '다음주 언제쯤에는 한 번 해먹어볼까~?'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레터 발송일을 전격 변경합니다 🔸 이제는 매일 토요일 오전에 슬쩍 구독자님을 찾아갈게요. 먹진심이 "잘 쉬고 있어? 심심하진 않구?"하고 능글맞게 빵 사들고 집에 놀러오는 친구같은 레터라면 좋겠어요. 

그럼 저는 9월의 중간에 돌아올게요. 9월의 중간에는 코끝을 간질이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까요? 모쪼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