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후원독자 전용] 님, 나경희입니다

안녕하세요,

후원독자님

〈시사IN〉 문화팀 나경희입니다

문화팀답게(^^) 요즘 일부러 다양한 콘텐츠를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줄리엣 드 마르시악 감독의 <밤의 인도자(Nightwathers)>입니다.

이 영화는 프랑스 몽쥬네브흐에서 매일 밤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어요. 스키 리조트가 많은 이 동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난민이 프랑스로 넘어오는 통로이기도 하지요.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은 하얗게 눈 덮인 험준한 산을 밤낮없이 걷고 또 걸어 간신히 이곳에 도착합니다.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도요. 하지만 자경대를 자처하는 패트롤과 경찰의 단속에 걸리면, 목숨 건 이들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내진 난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세 번, 네 번 다시 산을 넘기도 합니다. 동상에 걸린 손발을 잃으면서도요.

카메라는 설산을 넘는 난민들을 찾아 필요한 물품을 건네는 자원봉사자들을 따라갑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밤 두툼한 양말과 장갑, 모자를 챙기고 큰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 산을 오릅니다. 이들이 모여 야간 산행을 준비하는 공간에는 이렇게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PROTECT PEOPLE NOT BORDER.’

국경 대신 사람을 지키자는 뜻이지요. 2인 1조로 움직이는 이들은 경찰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속삭이는 목소리로 소통하며 산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사람들을 밤새 찾아다닙니다. 프랑스의 또 다른 도시 칼레에서도 난민을 돕는 활동을 했던 한 젊은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칼레에서 우리는 난파선을 상대하는 여자 둘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흠뻑 젖은 채 굶주리고 있는데 여자 둘만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신발 담은 쇼핑카트를 밀고 있다니 이게 무슨 세상이죠?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고작 자원봉사자 열 명이 이 산을 돌아다니면서 난민들을 도우려고 해요. 정말 웃기고 어이없어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에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렸습니다. '신발 담은 쇼핑카트를 밀고' 있는 기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하는 기분, 가끔 기사를 쓸 때 느끼는 무력감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이들은 매일 밤 어김없이 산을 탑니다. 복통에 주저앉은 만삭의 임산부를 끌어가려는 경찰들을 향해 '먼저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맞서기도 합니다. 경찰이 이 여성을 병원에 데려갔는지 수용소로 끌고 갔는지, 결국 알 길은 없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다음 날에도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고 어둠 속에서 담배를 태우며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압도하는 좌절감에 머리를 감싸고 할 말을 잃거나 흐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힘이 될까요?
옆에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까요?
기록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까요?

속물적이지만 저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월급을 떠올립니다. 바라보는 것, 옆에 함께 서 있는 것, 기록하는 것. 그것이 제가 월급을 받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요. 좌절하거나 무력감을 느끼거나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요. 물건을 팔든 팔지 못하든 전화를 걸고 사람을 만나러 가는 세일즈맨처럼 분투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취재하다 보면 좋은 취재원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또 용기를 얻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구나, 조금 무너졌다고 모든 것이 무너진 건 아니구나 하고요.

그러니까, 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빙빙 돌아왔네요. '바라보는 것만' '옆에 함께 서 있는 것만' '기록하는 것만' 할 줄 아는 무력한 기자에게 매달 엄중한 채찍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령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하더라도... 어둠 속에서 눈을 떼지 않겠습니다.

2023년 10월

나경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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