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도 매일을 헤엄치는 법인데, 표지 그림이 수영을 하는 사람이라니. 이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수영 에세이는 아니고요. 8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이연이 되기 전 20대의 이연님은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일으키고 진정한 자립을 하게 되었는지를 담은 그림에세이예요. 그 시기에 이연님은 수영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영을 배우며 느낀 것들이 책 중간 중간 부록처럼 나와요.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저의 리뷰는 ( 님에게만 알려드리는 스포지만 ) 다다음주 책읽아웃 요즘산책에서 소개할 예정이라 오늘은 생략할게요. 아무튼,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제게 남은 마음은 오로지 이거였습니다. '아무래도 나 수영을 배워야겠어!'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수영장 웹사이트를 들어가봤더니, 남은 자리를 현장접수 한다는 공고가 올라와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고비입니다. 아침 6시부터 선착순 신청, 게다가 남은 입문반 인원은 9시 두 명, 10시 두 명 해서 총 네 자리 뿐. 알고보니 수영 수업 중 입문반이 가장 신청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고.(수영 초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시작부터 난관이었지만 꼭 하고 싶다는 의지는 불타올랐고, 현장 접수 당일 새벽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그렇게 오전 5시 반에 수영장에 도착했으나.... 제 앞에는 이미 먼저 온 사람들로 줄이 끝도 없이 길었어요.(새벽 4시부터 오셨다고...) 그래서 과연 저는 티켓팅을 성공했을까요? 

우주의 기운이 도운 덕분인지 다행히 저는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겟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무사히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을 배우는 오전 9시 입문1반 수강생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오늘로써 7번째 수업을 수강을 했어요.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일이 아닌 어떤 것에 이렇게 몰입하고 푹 빠진 제 자신을 만난 게 참 오랜만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몸으로 하는 건 참 자신 없는 '몸치'거든요. 아마 저의 첫 책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보셨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무슨 히말라야 등반하듯 생사를 오가며 걸었던 저를 발견하셨을 거예요. 이런 저의 저질 체력은 스포츠에 대한 의지를 꺾는 데 한 몫을 해왔고, 그동안 시도한 운동들은 그저 '살려고' 겨우 할 뿐이었죠. 이런 내가 몸으로 하는 일에 이토록 자발적인 의지를 갖게 되다니. 심지어 아주 큰 재미를 느끼게 되다니.

그렇다고 제가 강습을 아주 잘 따라가는 우수학생인 것도 아닙니다. 둘째날 바로 킥판도 없이 물에 떠보라는 강사님의 말에 덜덜 떨며 50분 내내 수영장 바닥에서 차마 발을 떼지 못했고요, 머리를 물에 담그라는 말에 무서워서 얼굴만 겨우 빼꼼 담궜다 빼는... 겁많은 수강생이에요. 그런데 재밌어요. 심지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강이 없는 날에도 찾아가 자발적으로 연습을 했고요. 아주 조금씩 동작을 끊어가며 여러번 시도해보았고, 덕분에 지금은 제법 물에 잘 뜨고 머리도 푹 잘 담그고요.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아주 조금씩이지만 나아진다는 게 느껴지니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처음 느껴보는 일종의 해방감이랄까요? 나 스스로 지어놓은 한계를, 나 스스로 깨뜨리는 경험.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어떤 영법을 마스터하겠다거나, 누구보다 빠르게 수영하겠다는 목표도 없는데도요. 그저 '물 위에서 잘 놀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라는 단순한 마음 뿐인데, 아마도 바로 이런 마음이 부담감을 없앤 게 아닌가 싶어요. 전공인 일에 있어서 항상 '이왕 하려면 잘 해야 해'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운동을 시작할 때 '건강하려면 극복해야해' 라는 마음으로 임해왔던 것과는 좀 다른 마음이에요. 

아무튼 요즘 저는 수영 생각 밖에 안 나고요.ㅎㅎ 수영 첫날 수영가방을 싸는 것부터, 수영장 샤워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디깅을 좀 하다보니 수영인들의 커뮤니티도 발견했어요. 처음 듣는 수영인들의 언어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예쁜 수영복도 구경하면서 언젠가 입문반을 졸업하면 어떤 수영복을 나에게 선물해줄지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아무튼 요즘 저는 '초보'의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신나게 유영 중이랍니다. '극복'이 아닌 즐기는 법을 배우면서요. 

.... 갑자기 수영이야기가 참 길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제 앞에는 해결해야 할 제법 큰 '사건'(레터 맨 마지막 꼭지 참고)이 있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평탄한 나날은 결코 아닌데요. 왜 갑자기 수영 이야기를 했냐면요. 그 사건 앞에서도 저는 지금 모든게 처음인 '초보'거든요. '법'에 대해선 ㅂ도 모르고, 게다가 선례마저 전무하다보니 실행하는 모든 게 배움이에요. 그렇기에 모든 순간이 큰 자극으로 다가오고요. 그것이 때론 무섭기도 하지만, 어쩌면 초보의 마음일 때만 가질 수 있는 혜택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물에 뜬 첫날 깨달았어요. 잘 해야지 생각할 수록 몸은 딱딱하게 굳고 금방 가라앉아 버리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과감하게 '풍덩' 몸을 던지면 신기하게도 둥둥 물에 잘 뜬다는 사실을요. 지금 저에게는 굳센 의지도 필요하지만, 물결에 몸을 맡기고 나아갈 수 있는 과감하고 유연한 마음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진리는 늘 잘 알면서도 잊기 쉽고, 뜻밖의 순간 새겨지는 법이잖아요. 어쩌면 제가 이제서야, 하필 이런 타이밍에 수영을 배우게 된 것이 잘 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득 님이 요즘 마주한 초보의 순간은 어떤 건지도 궁금해지네요. 혹시 답장을 하고 싶다면 여기로 보내주세요. 오늘 요즘레터에는 그동안 쌓인 요즘사의 콘텐츠들과 새소식을 담았어요. 그럼 오늘 레터도 재밌게 읽어주시고, 저는 그럼 또 불쑥 찾아올게요! 

"오늘 산책할 길은 '덕질'의 길입니다. 예전에는 덕질을 쓸데없는 짓으로 본 것 같은데 요즘은 완전 반대인 것 같아요. 덕질 얘기하면 요즘은 따라오는 게 꼭 '덕업일치'잖아요. 덕질도 업이 된다, 돈이 된다는 말을 많이 하고요. 저도 그 이야기에 찬성이긴 해요. 좋아하는 것이 업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런데 또 너무 그런 쪽으로 포커싱이 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덕질마저도 일과 돈으로만 연결 짓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취미나 덕질조차 생산성을 따지고 가성비를 따지게 된 게 아닌가 싶은 거예요.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무엇을 어떤 목적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해본 적이 언제인가?'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쓸데없는 짓도 잘하면서 놀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운동 하나를 하거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꼭 어떤 목적을 따지고 '이 시간이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꼭 덕업일치가 아니어도 괜찮은,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덕질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