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는 과거의 자료를 뒤적거리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곧 나올 신간 반란의 멕시코』가 시작이었어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인간의 기억은 영상처럼 연속적인 형태가 아니라 단절된 이미지의 조각으로 저장된다'는 말을 접했는데, 그 순간 제가 그간 역사를 바라보았던 시각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연대기적 구성,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표나 도식으로 외우고, 사료 역시 그 자체로만 여겨왔던 것 같거든요. 기억 구조와 제가 감각하던 방식으로서의 역사는 자의든, 타의든, 자연적이든 편집과 망각이 일어난다는 지점과 때에 따라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집중이 일어난다는 것 또한 비슷했어요.

이번에는 사람으로부터 탄생한 이야기에 주목해보기로 했고, 그것에 매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르포는 단순 보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묘사와 치열하게 집중하는 대상이 있다는 점, 전파를 목적의 근원으로 한다는 점이 저를 그리로 이끈 것 같네요. 여러분도 함께 가보실래요? 오늘 보내드리는 글이 여러분이 이 책 속으로 막힘없이 초대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반란의 멕시코』는 곧 서점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 자세한 소식은 출간일에 맞춰 오월의봄 SNS 채널에서 알려드릴게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멕시코에서는 1910년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의 사전적 정의는 <정부나 지도자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킴>인데요. 혁명의 직접적인 계기는 33년간 전횡을 일삼던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약속 파기였으나, 배후에는 수많은 계기의 층이 겹겹이 쌓이고 있었어요. 디아스 정권은 산업과 근대화의 진보를 이루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인권과 자유주의적 개혁을 희생했어요. 게다가 "이제 멕시코 민중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해놓고, 그의 독재에 대항하는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자 그를 감옥에 가둬버리거든요.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탈옥을 감행한 뒤 민중봉기로 독재를 타도하자고 호소하는데, 이 호소에 북부 산악의 산적 판초 비야, 남부 평원의 농민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화답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혹시 <라쿠카라차>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현재는 뮤직키즈 같은 어린이 동요 채널에서 #율동동요 #인기동요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을 정도로 워낙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라쿠카라차>의 원곡에는 바로 이 '판초 비야'가 가사 속에 등장합니다. 그는 기근이 들면 훔친 곡식으로 자신의 영향이 미치는 전 지역을 먹여 살리고, 땅을 빼앗긴 마을을 통째로 보살피는 사람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불렸죠. 책의 239쪽에도 "병사들은 모래폭풍 속에 모닥불에 가(...)<라쿠카라차>란 노래를 불렀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원래 라쿠카라차는 바퀴벌레라는 뜻으로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녀 잡아죽여도 끝없이 등장하는 농민과 농민혁명군을 비유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 책에서는 '헌정군이 후아레스와 치와와라는 지역을 다시 빼앗으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풍자하는 수백 연의 노래'라고 적혀있습니다. 판초 비야에밀리아노 사파타는 멕시코 혁명에서 아주 주요한 인물이니 꼭 기억해주세요.

(왼쪽) 에밀리아노 사파타, (오른쪽) 판초 피야

혁명은 체제에 대한 반란에서 시작하여 여러 편이 갈린 내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위의 이미지는 멕시코의 국기 변천사 중 일부인데, 상단에 있는 것이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권 시대를 뜻하는 '포르피리아토'의 국기, 아래가 멕시코혁명 시대의 국기예요. 국기에 색 중 빨간색이 백인·인디오·메스티소 등의 인종의 통합과 국가 독립을 위해 바친 희생 등을 상징합니다. 이 두 국기 사이에 『반란의 멕시코』가 존재하죠. 멕시코혁명은 1917년 '러시아혁명'보다 7년이나 앞섰지만, 러시아혁명이 갖는 세계사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한 탓에 그 중요성이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발문에도 정확히 명시되어 있듯 멕시코혁명은 '제3세계 농업 국가에서 발생한 최초의 사회혁명'으로서 20세기 내내 식민지는 물론, 독립국이지만 제국주의 열강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신식민지' 곳곳에서 발생하게 될 사회적 격동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 굉장한 세계사적 의의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혁명의 기록은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돼요. 존 리드John Reed, 그는 르포 기자이자 미국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요. 또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에드거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3대 르포걸작이라 꼽히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대서양을 건너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마주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킨' 1917년 혁명 러시아를 전한 목격담인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 있기 무려 7년 전인 1910년, 멕시코혁명을 취재하고 전한 『반란의 멕시코』가 있었다는 사실!

그는 뉴욕 잡지 《메트로폴리탄》의 특파원 신분으로 멕시코혁명을 취재하라는 주문을 받고 급파되어 1913년 12월 중순 무렵 멕시코 국경에 도착합니다. 멕시코혁명은 크게 4막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요. 혁명의 기간 중 가장 극적인 시기인 제3막에 그가 멕시코에 발을 디뎠죠. 이때는 제2차 혁명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인데, 멕시코의 치와와주에서 연방군을 몰아낸 판초 비야의 '북부사단'이 토레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멕시코혁명을 최종 승리로 이끄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요. 그야말로 극적인 인과관계들이 오가겠죠? 우선 존 리드가 촘촘히 기록한 3막의 드라마로 풍덩 빠지기 전, 이 책의 발문을 읽어보시면 멕시코혁명의 4막이 간결하고도 핵심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수순, 동선 등이 연대순으로요. 이 부분을 잘 읽고 기억하며 넘어가는 것이 뒤의 기록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 책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몇 가지 큰 의의를 복기해가며 읽을 수밖에 없어집니다. 우선 멕시코 상류층 과두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동맹을 맺어 멕시코를 근대국가·산업국가로 변모시키려던 독재자 포르피디오 디아스 집권기는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함)의 관례로 보유해온 농민 혹은 농민공동체의 토지를 모조리 강탈하는 디아스 정부의 토지 소유권 확립 정책이 있었기에 대지주들에게는 '황금기', 농민과 노동자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절이었다는 것과 노동운동 탄압으로 유혈 진압 등의 학살이 있던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뒤 짜여진 수순처럼 따라오는 혁명의 길을 마주하면 조합과 혁명, 운동, 변화, 개혁과 같은 말이 수많은 세월을 지나쳐도 잔재 정도나 회상으로서가 아닌 진행형으로 존재하는 언어라는 것을 현재에서 깊이 생각하게 돼요.


로버트 A. 로젠스톤의 『존 리드 평전』(정병선 옮김, 아고라, 2007)에 따르면 존 리드는 판초 비야의 병사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병사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만족스런 기간"을 보냈고, 마침내 "이상한 땅의 이상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싸우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함께 고군분투했던 존 리드는 그들의 활력과 재기 넘치는 모습을 여실히 담았어요. 때로는 전쟁의 참화 역시 서사시적으로 묘사하고, 장군이나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섭게 포착했지만, 대부분 그가 적어 내려간 사람들은 자연과 이웃, 노래와 술, 농담과 춤을 사랑하는 모습을 띠고 있거든요. 


또한 존 리드가 취재로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계속해서 느끼게 되기도 해요. 이는 기자·작가로 활동하시는 이문영 선생님께서 써주신 추천사에서 잘 드러나 있어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반란의 멕시코』는 혁명군의 기세가 최고조였던 시기를 포착하고 있으나 책의 주인공은 혁명 지도자도 혁명 그 자체도 아니다. 존 리드가 세밀하게 그려내는 주인공은 땅을 잃고, 한 끼 먹을 음식이 없으며, 살 집과 공부할 학교를 위해 혁명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싸우는 그들의 삶과 죽음, 가난과 불평등, 웃음과 눈물, 환대와 나눔, 춤과 노래, 혁명 안에서조차 달라지지 않는 여성들의 현실이다. 미국의 첩자로 오해받기도 하고, 연방군의 총탄을 피해 도망치고, 친구가 된 혁명군 병사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시신들의 참상을 확인하며, 피투성이 부상병들과 마침내 다다른 전쟁터. 총소리, 신음소리, 들판을 뒤덮은 시체 냄새 속에서 그들과 자고 먹고 걷는 시간들이 존 리드가 열어간 현장이었다."

'기록의 임무를 받고 투입되는 사람이 기록할 사건을 선택할 순 없을지 모르지만, 사건을 기록하는 위치는 선택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더라도 어느 위치에서 기록하느냐에 따라 현장은 무수히 쪼개진다. 사건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현장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멕시코혁명이란 사건 한가운데서 존 리드가 선택한 현장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약탈의 가운데에서 빼앗기고, 찾지 못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가 함께 열어간 이야기를 『반란의 멕시코』에서 함께 생생하게(!) 경험해보시길요!

'팬덤 정치'라는 용어/명명은 어떻게 (시민에 대한) 낙인이 될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3월 7일 출간될 이 책에 주목해주세요.

책이 출간되기 전 2월 28일, <오!레터> 32화에서 저자 조은혜 선생님의 인터뷰를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팬덤 정치'라는 낙인』, 조은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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