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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
 
누군가 저를 칭찬하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게 겸손하고 점잖은 사람이라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된 탓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줄 모르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은 귀신같이 찾아내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칭찬할만한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계속 해명해야 마음이 편한 체질입니다.


대학시절, 멕시코 친구(이름은 Korina)를 알게 되었는데 저는 그녀의 미모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대해 자주 칭찬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칭찬을 하면, “Oh my Jee, thank you”라고 말했는데요. 제 눈을 지그시 바라본 채, 왼쪽 손을 내밀며 아주 천천히 말했습니다. “나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다니, 아주 칭찬해”라는 그녀의 고고한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내가 칭찬을 하면 다시 칭찬을 받게되는 미묘한 교류가 즐거워서 더 자주 그녀를 칭찬하게 됐습니다. 


회사 엘레베이터에서 본 잊지 못할 장면도 있습니다. 어떤 동료에게 회사 선배가 아주 사소한 걸로 칭찬을 했는데, “선배 역시 안목이 좋으시네요”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저는 그 때부터 “역시, 안목이 좋으시네요”를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나도 언젠가 저 말을 꼭 해봐야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내게 칭찬을 건네준 사람의 세심한 관찰과 반가운 취향에 대해 다시 칭찬해준다는 건 얼마나 멋진일인가요. 


저를 칭찬해준 어떤 선배에게 “아니에요”라고 완강히 대꾸하자, 한번은 혼이났습니다. “내 의견을 말한건데 너가 왜 그걸 부정해?”라고요. 저에게 이렇게 말해준 그 분이 얼마나 저를 아끼는지 그 때 느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아껴주는 상황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흡수했다면 제 많은 날들이 더 기뻤을텐데요. 


혼자 살다보니 많은 걸 생략하게 됩니다. 부엌에서 서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과일을 먹을때 손으로 집어 먹기도 합니다. 어릴 때 본 엄마의 모습도 늘 그랬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예쁜 포크에 과일을 꽂아 주고는 당신은 껍질을 깎던 과도로 과일을 찍어 먹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일은 그저 편하기만 하면 되니까, 스스로에게까지 격식을 차리는 게 오히려 일이 되기도 하니까. 저도 혼자 살다보니, 엄마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과 하나를 먹어도 접시에 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길 바라듯이.


나를 의심할수록 성장한다고 믿었던 날이 길었습니다. 그 의심 덕분에 잘먹고 잘살고 있으니, 미워하지는 않으렵니다. 다만 이제는 덜 성장해도 좋으니,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 대접하는 훈련을 늦게나마 시작해야겠습니다. 나이 들수록 누군가의 칭찬보다 내 스스로의 격려가 필요할 때가 많아지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그 누군가들이 곁에 없어질 날도 올테니까요. 가을 햇살 덕분일까요. 접시 위에 놓인 사과 하나가 근사한 요리같습니다. 

글을 꾸준히 쓰고는 있는데, 잘 쓰고 있는걸까? 저는 또 저를 의심하고 맙니다. 음미하고 생각하며 2주를 쉬고 9월 29일 수요일 보낸이 오지윤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보낸이 오지윤' 구독하는 받는이 님은 취향 쩌는 분이에요.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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