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가 방류되었습니다. 장소는 후쿠시마 앞바다가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힝클리라는 도시입니다. 이 이야기는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실화입니다.

이 방류는 거대 기업 PG&E의 짓이었습니다. PG&E는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 천연가스와 전기를 공급하는 거대 기업입니다. PG&E는 가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크롬’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했습니다. 그 크롬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PG&E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규정상 인정받은 ‘3가 크롬’ 대신, ‘6가 크롬’을 사용했습니다. 인간의 몸에 훨씬 유해한 물질이었죠. 대기업이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이 정말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하는 대목입니다.  


영화를 보며 더 화가 났던 순간이 있습니다. PG&E가 화학물질이 주민들을 병들게 할 것이라는 알면서도, 이를 감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입니다. 이는 심지어 보고서 형태로 기업 내부에 보고 되기까지 했습니다. 내부 조사를 거쳐 분명 6가 크롬의 위험성을 경고받았지만, 이 조사는 윗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전부 없던 것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PG&E는 약았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유해한 물질인 것을 파악한 PG&E는, 그것을 방류한 힝클리 지역의 주민들에게 일종의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방류 기간 동안 주민들은 크고 작은 병이 생겨 병원을 찾을 때, 오히려 PG&E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까지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엔 그들의 집을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하기도 했다는데요. ‘비용 절감’을 위해 그런 짓을 했으면서, 그에 따르는 다른 문제들은 또 돈으로 해결하고 있었다는 것이 참 ‘그들’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그런 그들을 상대로 법 전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인물인 에린이 주민들을 대표해 보상금 소송을 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조금 더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에린이라는 인물의 개성 덕분입니다. 에린은 이 일을 맡기 전까진 말 그대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혼 상태에다 홀로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인데, 딱히 경력도 없어 번듯한 일자리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에린이 법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에피소드가 재밌는데요. 어느 날 에린은 자신의 사건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데, 거기서 패소하게 됩니다. 패소한 뒤 분에 못 이겨 변호사와 욕을 교환하며 싸우는데요. 그때 이런 말을 합니다. 네 무능력 때문에 진 것이니 네가 날 책임져라. 나한테 일자리를 줘라.. 그렇게 변호사 사무소의 사무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에린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잘 보여줌과 동시에 평범한 에린이 어떻게 사건에 다가갈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좋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에린은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비법조인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맡지는 못합니다. 그저 허드렛일 정도를 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한 것이 아니라 당연합니다. 정식 과정을 거쳐서 취직을 한 것도 아니었고요. 또 법과 관련된 일을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한테 맡겼다간 정말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에서 종종 일어나는 위대한 일들은, 이처럼 정말로 사소한 우연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에린은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우연히 한 서류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서류는 PG&E가 땅을 매입하는 서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알 수 없는 의료비 관련 문서들이 같이 붙어 있었는데요. 너무나 한가했던 에린은 이것에 의문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장한테 그냥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이상한 거 같으니 조사하러 가볼게요. OK?


그걸 들은 사장 입장에선 솔직히 에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냥 에린에게 딱히 줄 일이 없었던 상태인데, 잘 됐다 싶었겠죠. 그래서 그냥 갔다 오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에린은 진짜 갔다 옵니다. 문제는 잠깐 하루 이틀 갔다 온 게 아니라, 무려 일주일 동안을 아무 연락 없이 갔다 와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사무실에 복귀해 보니 에린은 당연히 해고를 당한 상태였죠. 이런저런 일을 거쳐 에린은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되기는 하지만, 아무튼 에린이 벌린 이 위대한 일은 이토록 그럴듯하지 않게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멋진 결과에 비해선 정말 하찮고 평범한 시작.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엔 그 아름다운 대조가 있습니다.


이 평범한 한 명의 인물이 없었다면. 힝클리의 주민들은 평생 자신들이 왜 아픈지도 모른 채 치료를 도와줬던 PG&E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 평범했던 에린은 현재까지도 환경과 관련된 여러 운동들과 소송에 참여하며 환경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에린은 현재의 후쿠시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평범한 사람은 후쿠시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가질까요.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한 에린 브로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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