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집순이야 밖순이야?
✉️ 스물 세 번째 편지.
엄마는 집순이야 밖순이야?
Dear My Child,
예전의 나는 집에서 붙어있지 않는 밖순이였어. 요즘은 스마트폰이랑 넷플 등 OTT 덕분에 굳이 찾아 나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충분히 여가생활이 가능하지만, 라떼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부지런히 돌아댕기면서 쇼핑하고(주로 아이쇼핑), 사진으로만 구경한 놀이기구도 타보고, 개봉한 영화도 봐야 하고, 기차 혹은 고속버스 타고 여행도 가고,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 같아.

음악이 고프면 다방 가서 커피 주문 후 신청곡을 써서 DJ에게 전달하면 바로 재생시켜주니, 다들 커피값만 들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음악 감상을 빙자한 수다를 떨었지. 요즘 말로 클럽이 라떼는 고고장이라고 했고, 나이 드신 분들은 카바레(요즘도 있더라), 돈 좀 있는 분들은 호텔 안의 나이트 클럽 가서 티비에서만 본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듣고 춤도 추고 온다지.

난 나이트 클럽은 생일 때나 가봤어. 내 생일은 알다시피 성탄절, 새해, 망년회, 송년회에 끼여 있어서 내 생일을 빙자한 호텔 나들이를 친구들과 한 셈이야.

동대문, 남대문 시장 쇼핑도 재미있었고, 산 것도 없이 시장의 먹거리인 호떡, 만두만 잔뜩 흡입하고 만족해 하던 그 때가 그립다. 동대문 헌책방도 섭렵해서 학교 과제 레포트에 온갖 진귀한 자료를 첨부해서 내면 조교 언니들이 안 돌려주고 자료로 쓴다고 달라고 했어.

시험기간에는 서울 시내 도서관은 다 가봤는데, 나름 일찍 간다고 갔지만 항상 대기표를 받았어. 막상 들어가보면 자는 애 반, 공부하는 애 반이긴 하지만.

결혼 후 너희들이 자랐을 즈음에는 주말마다 바깥 나들이가 시작되었어. 집 근처 산을 등반하고 개천 물놀이도 하고, 고궁 나들이도 하고... 참 부지런히 밖순이로 산거 같은데 북경으로 이사가면서 이 생활도 끝났다. 북경에 안갔으면 아마도 땅끝마을 해남까지 갔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국해보니 다들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나도 덩달아 바쁘게 일하고 주말에는 쉬다보니 저절로 집순이가 되었네.

지금은 체력이 딸려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순이 당첨이야. 대신 티비로나마 맛난 음식 대리 식사 대리 여행. 보고 싶은 영화조차 앉아서 골라보고 있으니 편하긴 한데,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운동 부족으로 인해 몸이 굳어가는 느낌이야.

나의 원대한 계획은 60 전에 해외여행 마치고 그 이후에는 국내 여행 다니려고 했는데, 이제는 소박하게 가까운 곳 등산하고 탄천 내 자전거 타고 국민체조라도 열심히 하면 다행인 것 같아.

너도 시간을 쪼개서라도 자주 움직여 보는게 어떨까. 저절로 운동이 되지 않겠니?
Dear My Mom,
엄마의 인생 대 서사를 한 편의 편지로 대신 경험한 것 같아. 서울 곳곳을 신나게 누비던 호기심쟁이 엄마가 집에 누워 넷플릭스를 애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내가 겪은 듯 선명하게 펼쳐지는 느낌이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반강제적 집순이가 된 사람이 정말 많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모임이 사라지고 외부활동에 제한이 생기고, 또 격리라도 할라치면 홀로 일주일을 고독 속에 보내야 했잖아. 자연스럽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혼자만의 취미를 만들고 집이라는 공간에 큰 의미와 애착이 생긴 사람들도 많았다고 해. 나도 사실 그 중 하나야. 내가 집순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해보니까 너무 편안하고 좋더라고. 혼자 글쓰고 요가하면서 사부작사부작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게 나에겐 정말 큰 행복이었어.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사실은 집순이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도 나왔던 걸 보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거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활 습관을 바꾸면서, 어쩌면 머리로 '난 집순이야'라고 최면을 걸어야 심적인 고통을 외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고통을 무시하고 악착같이 살아가기를 택하기도 하잖아.

그래도 이제 코로나시절 닫았던 가게도 다시 열었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임에 적응하고 있어.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 감소하던 소비자심리지수도 올해 6월을 기점으로 100점을 넘겼고, 해외 여행과 출장이 증가하면서 서울 곳곳에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보여.

가수 하림의 노래 제목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처럼,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회복해야 하고, 사회적 고립으로 생긴 우울감 또한 사회적인 활동을 통해 치유해야 하는 것 같아. 물론 초반에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뒤따르겠지만 말이야. 어제 몇년만에 처음으로 모임이라는 걸 가졌는데, 식당 선정부터 메뉴 주문까지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더라고. 안하던 걸 하니까 괜히 더 긴장하게 되고 이게 맞나 싶고 그랬는데, 어제 우왕좌왕한 덕에 다음번에는 조금 더 편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엄마가 자발적인 집순이가 아니라면, 이제 다시 조금씩 밖순이의 삶을 되찾아보는 건 어때? 말한 것처럼 등산도 하고 탄천 자전거도 타고 말이야. 사고로 정체되어 있던 고속도로가 다시 뚫리듯이, 침체되었던 경기가 다시 활력을 찾듯이, 이파리를 다 떨어뜨렸던 나무가 봄을 맞아 다시 새 잎을 틔워내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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