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인’은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전하고 함께 소통하며, 치유 경험의 릴레이 구조를 만드는 치유활동가 집단이다. 장보임 사무국장은 시민 스스로 마음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며, 공감의 경험을 나누는 일을 기획하고 있다.

Q. '치유활동가 집단'은 무엇인가? 왜 '치유'와 '활동가'인가?

A. 치유는 치료와는 다른 섬세하고 개인적인 과정이다. 단순히 치료법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활동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치유 과정의 주체는 의료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며,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다. ‘공감인’은 당사자가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소정의 교육을 이수 후 다른 시민을 치유하는 치유활동가로 이어진다. ‘치유 릴레이’ 구조다. 내 생활에서 치유를 구현하고, 또 다른 시민을 만나서 전파한다. 일종의 활동가 혹은 활동가 집단의 정체성에 가깝다. ‘치유활동가’는 마음의 길잡이다. 내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치유활동가 로드맵 ⓒ공감인

Q. 의료/심리 전문가의 치료/상담과는 어떻게 다른가?

A. 전문가가 일반인을 치료하는 권위적, 수직적 방법과 다르다. 당장의 치료와 해법보다는 정신적 어려움을 예방하는 쪽에 가깝다. 프로그램 참여자가 자신의 힘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내 마음을 타인과 잘 소통하고 교류하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가 많은 얘기를 하며 마음을 표현하고, 존중적 공감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치유 과정을 설계한다. 첫째는 내 마음 털어놓기, 둘째는 공감받기. 이 경험이 핵심이다.

예컨대 저희 프로그램 중 ‘마음:온 - 나편’이 있다. 총 5주, 매주 1회, 회당 3시간으로 구성되며, 1조당 4명씩 약 5개 조로 운영한다. 매주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주제, 소재(음악, 시, 치유 키트)가 제공되고, 대화를 시작한다. 단, 대화의 규칙이 있다. 한 사람당 20분의 시간이 부여되고, 한 사람이 얘기할 때는 다른 사람이 대화를 자르거나 충고할 수 없다. 20분동안 나의 마음을 중단없이 이야기 하는 경험, 20분 동안 타인의 마음을 듣는 경험이 평생 얼마나 있을까?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새롭다. 내 말을 안전한 환경에서 오롯이 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상대방의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Q. 치유의 과정에서 '치유 활동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A. 공감인 사무국에서는 프로그램을 설계/준비하고 치유활동가를 섭외/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치유 활동가는 프로그램의 진행에 집중하여 참여자를 관리한다. 우선, 전체 진행을 돕는다. 조별 대화를 모니터하면서 대화가 겉돌지는 않는지, 한 사람의 주도로만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살핀다.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 시 퍼실리테이터처럼 대화를 이끌기도 하고, 질문의 형태로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치유활동가 워크숍 모습 ⓒ공감인

Q. 프로그램 내용 중 '치유 밥상'은 무엇인가?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

A. 프로그램 참여자에게 가장 먼저 밥을 제공한다. 보이지 않지만 신경을 많이 쓴다. ‘나를 이렇게 한 사람의 존재로서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밥상을 준비한다. 참여자는 자발적으로 신청을 하지만, 방어적일 때도 있고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도 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힘들다고 얘기하기를 어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과하지 않나 싶은 정도로 환영/환대한다. 치유 밥상도 그런 의미에서 준비된다. 어려웠던 마음, 서로 간의 담장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치유 밥상 ⓒ공감인

Q. 서울시, 카카오와 함께 기획한 '속마음 버스'는 인기가 높았다.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A. 서울 시민의 자살률을 어떻게 낮출 것이냐를 고민중, 시민 대상 예방/관리 차원에서 시작됐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나랑 가까운 사람과 평소에 하지 못했던 얘기를 사연으로 제출하고, 선정되면 여의도역에서 출발하여 강변북로, 자유로를 지나는 버스에 탑승하여 대화를 나눈다. 관계의 환기도 되고, 지인과 솔직하게 얘기할 기회도 된다. 대중의 호응이 높았다. 다만, 온라인 기반의 신청, 접수다 보니, 참여자 평균 연령이 낮았다. 연인 사이의 특별한 체험을 위한 사연도 많았다. 평일 저녁 운영하니, 해당 시간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사람은 참여할 수 없었다. 좀 더 세심하게 고려했다면 더 다양한, 더 필요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청자, 탑승자 통계에 따르면, 가족 사이에는 평균 49.8개월, 부부 사이에는 13.49개월, 연인 사이에는 평균 5개월 동안 나누지 못한 속마음이 있다. 좀 더 대화가 필요한 가족 신청자를 많이 탑승시키고자 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속마음 버스 ⓒ공감인

Q. '돌봄 종사자', '학교 밖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 '소방 공무원', '은둔형 외톨이', '성소수자' 등 특수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지속했다. 기억에 남거나, 편견이 깨진 경험이 있는가?

A. 학교 밖 청소년, 비자립 청년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5호 처분(소년법상 보호관찰관의 장기 보호관찰) 대상자였고, 그룹홈, 시설에 입소한 친구들이었다. 6주간 프로그램을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참여자들이 점점 더 또래 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단답형으로 얘기하던 친구들이 점점 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아이같은 표정을 지었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아이와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아이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비자립 청년(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참여 청년 중 공감인에서 현재 치유 활동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이것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다. 몇 년간 고립되었고, 사회 참여가 없었는데, 공감인의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서 조금씩 활동을 넓혀가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한다. 물론 모두에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람이 예전과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고, 감동이었다.

Q.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하고, 치유활동가에게는 소정의 참여비를 지급한다. 운영 자금은 어떻게 확보하나?

A. 외부 사업비로 운영되는 부분이 크다. 그동안 서울시, 청년재단 등 크고 작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속마음 버스의 경우 카카오 임팩트의 후원이 있었다. 작년부터 조직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자체 유료 프로그램을 조금씩 시작하는 단계다. 좀 더 안정적으로, 상시적인 구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마음:온 - 나편’ 의 경우 5주 운영되고, 속마음 산책은 단회기 프로그램으로 각각 회당 3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프로그램을 중간 공백기 없이 상시 운영하고 싶다. 언제든지 내가 참여하고 싶을 때 신청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프로그램 진행 모습 ⓒ공감인

Q.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비대면) 방식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례가 있는가? 치유 과정에 있어서 온라인, 오프라인 과정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위기의식이 있었다. 공감인의 모든 프로그램은 대면에서의 만남, 대화, 공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끝날 때는 끝나더라도 한 번 시도는 해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예컨대, ‘마음:온 - 나편’의 경우 ‘마음:온라인’으로 전환 후 현재도 운영 중이다. 지금은 굉장히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온/오프라인별 개인 차이는 있다. 내향적인 성격의 참여자는 집에서의 온라인 접속을 더 편안하게 여기고 효과도 높다. 반면, 운영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대화 상황에서는 비언어적 요소가 중요하다. 그런데 텍스트/말을 통해서 사람의 감정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다. 온라인 대화 시에는 정제된 언어로만 표현되는 단점도 있다. 표정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표정만 짓는다. 이런 부분이 솔직한 표현과 대화를 어렵게 한다. 

온라인 방식이 맞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속마음 산책’은 여기(헤이그라운드)에서 모인 후, 서울숲을 산책하는 코스다. 온라인 전환 후, 줌 도구를 이용하여 모바일 접속 후 각자의 공간에서 산책로를 걷는 형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참여자의 데이터 용량, 접속 환경의 문제로 연결이 원활하지 않았다.

프로그램 소품_감정카드 ⓒ공감인

Q. 단체가 설립된 지 10년이 되어간다. 체감하는 환경 변화는 무엇인가?

A. 심리건강 분야의 서비스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낙인찍힐까 봐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의 힘듦을 좀 더 쉽게 고백할 수 있다.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하는 프로그램 참여자도 늘었다. 바람직한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2013년, 사업 초기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때에는 사업의 이름에 깊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회의식이 변함에 따라서 ‘왜 엄마가 누구를 계속 돌봐야 하죠’, ‘엄마는 누가 돌보죠’, ‘엄마랑 사이가 불편한 사람도 있지 않나요?’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이름이 아닐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온’ 이라는 브랜드로 바꾸게 된 계기다.

한편, 현재의 사회 분위기가 정말 좋은 건지 되묻기도 한다. 서비스의 양은 늘었으나, 질이 낮은 서비스도 많고, 관리가 부실한 서비스도 많다. 서비스의 제공 대상도 일부 계층에 집중된다. 온라인 기반으로 신청이 이뤄지고, 20~30대 청년에게 집중되어 있고, 앱을 통한 서비스도 활성화되었다. 20~30대 중 사회생활이 어느 정도 원활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는 많다. 그러나 정작 서비스가 절실한 사람에게는 닿지 못한다.

Q. 최근 유행하는 전문가 중심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우선 반갑다. 의사를 만나고, 상담실에 찾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낮춰준다. ‘마음의 어려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위험한 측면도 있다. 심리적 어려움이 MBTI처럼 분류되고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아동/청소년 어려움의 원인을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출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쉬운 스토리와 짧은 방송 시간을 염두하니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Q. 마음의 치유가 절실히 필요하나, 생활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방안은 없는가?

A. 쪽방촌 거주자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다수는 저희가 제공하는 ‘치유 밥상’ 때문에 프로그램을 참여했었다.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좀 더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이었고, 다음 우선 순위는 일자리였다. 저희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 활동이 다른 경제적 활동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더 시급한 현실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의 시도가 이분들에게는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의 마음, 지금의 경험이 필요할 때 기억하며, 행복을 느끼고, 회복하는 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심리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 활동 등의 요소도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 예컨대 경제적 지원, 일자리 교육, 심리 치유를 병행하는 운영이 필요하다. 

글ㅣ최성욱